한국과 호주, 어버이날과 어머니날 그리고 어린이날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쓰려고 날짜를 적다보니 5월 8일.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익숙한 어버이날이다.
소파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하고 말을 건넸다. 어제 전화 통화를 들어서인지 '알지~'한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준다고 설명하고는, '너도 한번 해봐' 하며 기어코 감사인사를 받아냈다. 조금 있으면 호주에서는 어머니 날 (Mother's Day)인데도 굳이.
호주는 어버이날 대신 어머니날(Mother's Day)과 아버지날(Father's Day)이 따로 있다. 어머니날은 5월 둘째 주 일요일, 아버지날은 9월 첫째 주 일요일이라,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아이 학교에서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 해당 주 금요일 아침에 아이들이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셈블리(Assembly) 시간이 있다. 이번주 금요일에 아침 어셈블리 시간에도 잊지말고 꼭 오라고 아이는 신신당부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 있으면 한쪽 부모가 없거나 축하하러 못오는 상황일 때 아이 입장에서는 그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아서, 한국식대로 어버이의 날이라고 뭉뚱그리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뭐든 자기 상황이 되어봐야 역지사지가 되는가보다. 암튼 그런 생각을 아이에게 얘기했더니, 아이에게서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엄마, 그래서 어머니날이라고 안 하고 Mother's and carer's day 라고 하는 거야.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집도 있지만, 할머니나 이모나 다른 가족이 아이를 돌볼 수도 있쟎아.'
아차. 학교에서 오는 모든 공지문에 Mother's and carer's day 라고 써있었지. 그 때는 얼핏 '주 양육자가 엄마가 아닐 수도 있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던 나보다 아이는 더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아이를 통해 내 영어의 부족함을 느끼고 배워가기도 하지만, 이런 문화적인 부분도 아이가 크면 클수록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약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려는 사회의 노력이 이렇듯 작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동네 컬쳐이기도 하다. 부족한 점이 있어도 왠만한 건 괜찮다고 얘기하는 포용적인 분위기. 아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호주는 뭐든 다 괜찮대. 맨날 It's okay.야. ㅋㅋ'
얼마 전에 아이의 시력 검사를 하러 안경점에 갔는데, 우리도 오래 기다렸지만 우리 다음에도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바쁜 날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시력 검사 중에 자꾸 이것저거 궁금한 걸 검안사에게 질문했다. 그게 참 귀찮은 일일 텐데도, 또 다 받아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준다. 좀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목구멍에서 올라오려다 수줍게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검사가 다 끝나갈 즈음에는, 검안사가 아이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집안 보다는 최대한 밖에 나가서 뛰어 놀아야 해. 눈도 가까운 것, 중간, 멀리에 있는것, 하늘 등 여러 가지 다른 거리를 봐야 건강해 지는 거야. 집 안에만 있으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밖에 볼 수가 없으니 눈에 좋지 않아' 라고 말이다.
이런 저런 편의를 봐주느라 모든 게 느려지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답답했던 그 느림이 점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있다.
며칠 전 어린이 날에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온라인으로 주문, 배달된 선물을 받고 신나서 학교 친구들한테도 자랑을 했다. '얘들아, 한국에는 Children's Day 라는게 있어~ 호주에는 없지? 그 날은 어린이들이 장난감 선물받는 날이야.' 했더니, 학교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했다고 나한테 와서 또 자랑질을 했다.
한국식도 챙기고 호주식도 챙기고.. 마냥 들뜬 아들을 보며,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모와 양육자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축하하고 수고한다고 작게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