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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Jan 21. 2023

나도 워킹맘의 자녀였다 7

아빠가 채워준 것 - 성실한 표현

아빠는 엄마와 성격이 많이 달랐고, 그래서 일정 부분 엄마의 부족함을 채웠다.


엄마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아빠는 표현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육성으로 들은 기억이 없고, 엄마랑 손을 잡거나 안긴 기억도 평생 한 손에 꼽는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수시로 "딸,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건조하게 "어 그래"라고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꽉 끌어안아주고 내 손을 잡고 싶어 했다 (나는 밀어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빠는 손자에겐 관심이 없고 우리 딸 몸은 괜찮냐고 늘 물었다 (나는 그만 좀 물어보라고 했다)


아빠는 융통성이 없을 정도로 근면성실한 사람이었다. 자식사랑도 성실하게 했다.

나에겐 '아빠의 사랑'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두가지 있다.


1.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자식을 위한 기도

아침 6시쯤, 띠띠띠띠 비밀번호를 누르고 새벽예배를 갔다 온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 내 머리나 손 위에 손을 얹고 날 위해 기도한다. 나는 거의 자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 아이에게 건강과 지혜를 주시고, 믿음 안에 자라게 하시고, 오늘도 이 아이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다. 그냥 주절주절 하는 습관적 혼잣말이 아닌, 절대자를 향한 경외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긴 기도다. 그렇게 나를 위한 기도가 끝나면 아빠는 1층 침대에서 자는 동생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아빠는 나가서 출근 준비를 한다. 나는 다시 잠에 빠지고 아침 8시 즈음 일어난다.

이게 매일 반복되었다.

나는 과연 내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2. 결혼식 축사에서의 말실수

내 결혼식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었다. 주례가 없는 대신 신부의 아빠가 편지를 읽어주기로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울면 어떡하냐고 했으나 정작 나는 편지를 듣는 내내 아주 평온했다. 긴장해서 덜덜 떠는 아빠의 모습이 낯설긴 했으나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편지 내용은 이미 같이 여러번 수정하면서 알고 있었기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예기치 않게 정말 펑펑 울 뻔했다.

뻔한 문장이었다. "바쁘신 중에 멀리까지 와주신 하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는 실수로 "하객"을 "고객"으로 말했다. 그래서 축사 마지막이 "바쁘신 중에 멀리까지 와주신 고객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가 되었다. 아빠만 본인의 실수를 모르는 듯 했다.


울컥했다.

30년 넘게 일하면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 "고객"님께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였을까. 그래서 비슷한 단어만 보면 "고객"이 먼저 튀어나왔던 걸까.

없는 집에 장남으로 태어나 학교를 포기하고 일해야했던 삶의 무게와,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어 참고 버텨야했던 모든 시간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서 아빠의 말실수는 지금까지 아빠에게 들었던 모든  중에서 가장 묵직한 사랑 표현이었다.




사실 아빠도 바빴다. 막내가 태어나고 아이가 셋이 되자 돈을 더 벌기 위해 추가 교대근무를 했다. 그래도 아빠는 성실하게 사랑을 표현했고, 나는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노력했다고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정부분 채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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