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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A Oct 31. 2022

임신16. 미국 출산이 한국 출산과 다른 점

내가 미국 출산을 선호하는 이유

미국 출산과 한국 출산에는 장단점이 있고, 사람마다 선호하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미국 출산만 경험해보았고 한국 출산에 대해서는 간접경험밖에 없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아래는 내가 생각한 미국 출산과 한국 출산의 다른 점이다.


1. 통증 관리

미국은 pain management (통증관리)에 진심이다. 진통제 오남용은 미국 사회적 문제이고 크게 개선되어야 할 보건이슈임에 분명하지만, 사회현상과 별개로 내 출산에만 국한해 생각해보면 이들의 적극적인 통증관리가 고마웠다. 나는 고통을 참기보단 줄일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3센티가 열렸을 때 바로 에피듀럴(무통주사)을 맞았고 이후로 출산이 끝날 때까지 하체에는 거의 감각이 없었다. 중간에 에피듀럴이 잘 안 들을 때가 있었는데, 말하니까 바로 다른 종류의 진통제를 추가로 넣어주었다(그리고 나는 푸시 전까지 꿀잠). 한국에서는 무통을 일정 시간만 넣어주고 마지막엔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무통을 끊는다고 들었는데, 그랬으면... 너무 지쳤을 것 같다. 나 포함 무통이라 무감각한 와중에도 상상으로 힘을 잘 주어 푸시시간이 짧은 사람도 있었고, 마지막에 무통을 끊었어도 어떻게 힘을 주는 지 몰라 길게 푸시한 사람도 있었다. 정말 무통을 맞으면 힘을 못 줄까? 그래프 보면서 진통 세기 높아질 때 타이밍 맞춰 배부터 쭈욱 밀어내는 힘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힘을 못 주는게 그렇게 걱정 되면 의료진들이 미리 힘 어떻게 주는지 산모에게 알려 주면 되지 왜 무조건 무통을 끊는지 모르겠다.   


2. 간호사의 세심한 케어

분만의사는 마지막 분만 때만 만나고 그 전까지 간호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내가 만난 (그리고 내 주변 미국 출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만난) 간호사들은 정말 친절하고 전문적이었다. 진통부터 분만까지 거의 매 순간을 간호사와 함께하므로 좋은 간호사를 만나는 게 정말 큰 복이 구다 싶다. 하지만 전문성은 몰라도, 간호사의 친절은 1인당 돌봐야 할 환자수가 적고 의료비가 비싼 미국 의료시스템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간호사 업무강도는 살인적이다. 대신 미국은 의료비가 살인적이고...


3. 모유수유 중시

한국 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강조하는 곳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모유수유를 강조한다. 산전관리부터 수유 계획과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담당의와 논의하고, 모유수유 의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일단 초유는 한번 먹여볼게요 등)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한다. 그리고 출산하자마자 락테이션 컨설턴트(수유 전문 컨설턴트)가 병실에 방문해 모유수유를 돕는다. 이들은 출생 직후부터 24시간 내로 바로 모유수유를 시도하는게 모유수유 성공의 중요 열쇠라고 믿는다. 손유축, 마사지, 모유수유 자세 등을 알려주고 모유가 돌 수 있게, 아기가 모유를 한 방울이라도 (정말 방울임) 먹을 수 있게 돕는다. 모유수유 컨설턴트는 입원 기간 내내 수시로 방문하여 수유를 돕고 궁금한 사항들을 1:1로 알려주고, 퇴원 후에도 요청 시 집에 방문해서 모유수유를 돕는다. 한국은 출산 직후 입원기간에는 산모 휴식에 집중하고 조리원에가서 본격적 모유수유 노력이 벌어지는 것 같다. 정말 미국 문화대로 출산 직후 몇 일이 모유수유의 골든타임이라면, 한국 문화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걸까? 아니면 미국문화가 유난인걸까? 모르겠다.

 

4. 일인실

병실은 모두 1인실이고 지정 가족과 의료진만 들어올 수 있다. 방이 정말 넓고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전부 안에 구비되어있다. (그리고 의료비는 엄청나다) 한 방에서 진통부터 출산까지 이루어진다. 출산이 임박하면 산모가 분만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병실로 찾아오고 산모는 진통 때부터 계속 누워있던 그 침대에서 낳는다.


5. 출산을 대하는 분위기: it's party time?!

출산을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이라기 보단 신나고 기대되는 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미국인 특유의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있고, 마지막 푸시할 때도 아이 머리가 보이면 무슨 이제 막 시작하는 불꽃놀이를 보듯이 "이것봐! 머리카락이 보여! 머리카락 좀 만져봐! 다음번 푸시 때 머리를 발사하자!!" 하면서 아직 다 나오지 않은 아기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고 거울로 보며 신기해하고 다 같이 웃는다. 예압 잇츠 파뤼타임?!! 안 그래도 첫 출산이라 잔뜩 긴장한 나에겐 이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좋았다.


6.가족중심/모자동실/스킨투스킨

출산을 산모가 하는 것이 아닌 남편과 함께 하는 일로 느껴지게끔 한다. 물론 출산 과정에서 남편이 얼마나 참여하는지는 부부가 선택할 문제이고 미국에서도 당연히 그 선택을 존중해주지만, 내가 느끼기에 미국에서는 남편의 높은 출산과정 참여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물론 다 나의 동의가 있어서 진행된 건데) 남편도 아기 머리가 보이면 만져보고, 탯줄도 자르고, 엄마-아기의 충분한 (약 1시간) 스킨 투 스킨케어 (캥거루 케어)가 끝나고 나면 아빠와도 30분 이상 스킨 투 스킨케어 시간을 준다. 제왕절개 등의 이유로 엄마와 스킨 투 스킨 케어가 어렵다면 아기는 아빠의 가슴팍에서 충분한 스킨 투 스킨 시간을 갖는다. 이때의 감정을 어찌 말로 표현하리오... 출생 직후 충분한 스킨 투 스킨을 매우 중요시하는 출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아기 태어나자마자 잠깐 안겨주고(?) 바로 데려가는 걸 보고 충격받는다. 의료적으로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생 직후의 황홀한 시간을 가족이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면 좋겠다. 그리고 아기에게 의료적 검사나 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기는 엄마와 같은 방에서 회복한다(모자동실). 대부분 출산 첫 날은 엄마가 바로 아기를 돌보기 힘들기 때문에 간호사 혹은 락테이션 컨설턴트가 수시로 입원실에 와서 산모와 아기 케어를 돕는다. 산모의 선택으로 모자동실이 아닌 nursery room에 아이를 맡길 수도 있다 (따로 돈 내야 된다).


7. 없는 것들: 관장, 제모, 회음부 열상 방지 주사

관장과 제모 없는 건 좋다. 출산 후 오로 배출 시 불편함을 이유로 스스로 출산 전 제모하는 산모들이 있지만 병원에서 시행하진 않는다. 나는 관장, 제모를 누굴 위해 하는지 모르겠다. 출산 시 의료적 이유로 관장, 제모가 필요하다면 왜 미국에선 하지 않는가? 일단 아기를 위한 건 아닌 것 같고, 산모를 위해서인가? 의료진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저 관습에 따른 행위인가? 

태아 머리 크기가 커서 회음부 열상이 잦다는 이유로 한국의 경우 열상 방지 주사를 대부분 놓는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머리 통과를 돕기 위해 하는 회음부 절개도 미국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곤 최소로 시행된다. 나는 첫째 때 회음부 열상 3도(회음부부터 항문 초입까지 찢어진 걸 의미함)였어서 둘째 때 회음부 열상 방지 주사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의사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난색을 표했다. 그거 효과 없다고. 2000년도 전에는 그런 주사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어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예전 방법이라고. 이 사람 말이 정말일까?


8. 자연분만 우선 (특별한 의학적 사유 없인 제왕절개를 할 수 없음)

특별한 의학적 사유 없이 제왕절개를 "하지 않음"이 아니라 "할 수 없음"에 가깝다. 의료비 때문이다.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당연히) 더 비싸고, 이러한 의료행위 들이 보험회사에서 필요한 행위로 인정받아 보험커버를 받으려면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특별한 의학적 이유 (역아 등)가 있지 않는 한 자연분만을 시도하고, 최대한 자연분만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뒤 (2-3일도 기다려줌), 제왕절개 하지 않으면 안 되면 수술한다. 


(소신발언을 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불필요한 제왕절개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제왕절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선택"이지만 의학적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는 의료진의 조언을 무게 있게 들을 수 밖에 없는데 이걸 진정한 의미의 "선택"이라 할 수 있나? 한국 분만의 40% 이상이 제왕절개다. 제왕절개가 자연분만보다 나은 선택지인 상황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제왕절개가 권장되고 있다고 느낀다. 정말 산모와 아이를 위한 것일까? 차라리 산모와 아이를 위한다면 진통과정의 통증을 잘 관리해주고, 불필요한 내진을 줄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분만 과정을 전인격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연분만 보다 제왕절개가 상대적으로 더 돈이 되고 난산에서 오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고 일정 미리 비워두기 편해서인건 아닐까? 사명감으로 일하는 수 많은 의료진들에게 감사하고 의료 수가 문제 많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산모들이 굳이 안해도 되는 수술을 많이 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제왕절개 비율 얘기 할 때마다 빠짐 없이 나오는게 서양과 동양의 골반 차이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나의 경우, 36주 초음파에서 아기 머리 크기와 몸무게가 90 퍼센타일 이상이었기 때문에 한국이었으면 선택제왕절개를 고려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아이 머리가 골반보다 커서 난산 혹은 응급 제왕절개가 예상되는 아두골반불균형의 가능성을 미국 담당의에게 질문했으나, 담당의는 아두골반불균형이 오는 케이스는 정말 드물고, 초음파에서 재는 머리 크기는 오차가 많으며 실제는 이보다 적을 가능성이 높고, 만약 머리가 크더라도 산도에서 나올 때 머리 모양이 변형되어서 나오니 머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오히려 배 둘레가 크면 걱정인데 배 둘레는 90 퍼센타일이 아니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푸시 5번 만에 나왔다. (난 골반이 큰 체형이 아니고 키156이다.) 


9. 산후조리원 없음

입원 1-3일 뒤 (제왕절개 시 3-5일) 집으로 퇴원해서 바로 실전 육아. 한국 조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바로 육아를 하냐고 대단한다. 그건 대단한 일이 맞다. 사실 나는 오히려 조리원이 없던 게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육아를 하는 것이 아닌 남편이 하기 때문 (흐흐).  

퇴원 직후 바로 육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의 휴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 상 남편들은 최소 2-3주 정도 휴가를 내고, 복지가 좋은 곳이면 8주 이상도 유급 출산휴가를 낸다. 출산 후 2-3주는 아직 산모의 몸이 한참 덜 회복된 상태라 어기적 거리면서 걸으며 수도꼭지 물 틀기도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자면, 인간 존재에 측은지심이 있는 남편이라면 응당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경험이 향후 공동육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산후조리 기간 동안 남편은 출산 전과 똑같이 일을 하고 엄마가 조리원/산후도우미/양가 부모님 등 도움을 받아 육아하는 경우, 처음엔 엄마 아빠도 초보라 하나도 몰랐다가, 점점 엄마는 시행착오를 통해 육아 경험치를 쌓게 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나마 육아 스킬이 나은 엄마가 육아를 많이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걸 자주 본다. 하지만 초반 2-3주 아빠의 출산휴가는 이 악순환을 막고 남편의 적극적 육아 & 집안일을 가능케 한다고 느낀다. 


10. 의료비

미국 의료비가 비싼 건 유명한데 실제 금액은 보험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의 경우, 출산 (자연분만, 아기와 산모에 특별한 의학적 문제없음)에 1.5-2천불 정도 (약 2-2.7백만원) 지출한 것 같다. 의료비 때문에 고민이라면 기억해야할 건, 태어난 아이가 미국인이란 사실이다. 아무리 복지에 소극적인 나라라도 자국민의 탄생에는 관대하게 지원해준다. 의료비가 걱정이라면 출산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이 있으니 적극 고려해보자. 일단 medical bill에 financial assistance가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번호가 나와있을 텐데, 거기부터 전화해보자. 유학생이라 소득이 적었던 지인 2명은 0원을 내고 출산했다.




나의 경우, 1,2,4,5,6 때문에 미국 출산을 선호했다 (특히 1번). 미국에 살지만 출산을 위해 한국에 가는 주변 지인들도 여럿 있는  보면 역시 최선의 선택은 각자 다르다


쓰고 나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뭣이 중한디"


어느 국가에서 출산하든

이 글을 보는 모든 부모들과 그 아기들이 건강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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