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하면, 강연의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물론 강연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잘 준비해놓고 긴장해서 강연을 망치지 않기 위해
1. 못해도 괜찮다
2. 안 들으면 니 손해다(학 마!)
3. 다 좆밥이다
4. 유명인도 아무 말을 한다
등등을 새기며 긴장을 풀어보자.' (P.91)
김하나 작가가 망한 강연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아직까지는) 나의 강연이 떠올랐다.
아이들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하다 그만 둔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방송작가를 하다 교육 분야로 진로를 옮긴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부모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는 친한 언니가 수강생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는 쓰는 사람이었지만, 앞으로는 말하는 사람이 한 번 돼 보고 싶다는 욕심에, 몇 번 망설이는 척 끝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러나.
그날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고, 지금도 언니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절대 대화 주제로 올리지 않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정규 방송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나의 30대 후반을 뼈 째 갈아 넣었던 프로그램은 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강연 결정을 망설일 때, 언니는 어차피 몇 명밖에 신청 안 할 테니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지만,신청자는 수 십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이 꽉 차고도 남았다.
그러나.
참여 열기와 별개로 그동안 프로그램 뒤에서 묵묵히 일만 할 줄 알았지 한 번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는 나는, 강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언니가 PPT를 활용하면 편하다고 했지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졸업하기도 전에 작가로 취업한 나는, 창피하지만 그 흔한 PPT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조별 과제를 할 때도 PPT 같은 기술적인 건 다른 사람이 맡았다.)
결국 나는 방송 내레이션을 쓰듯, 강연에서 할 말을 정리했다. 그러나 강연은 방송과 달랐다.
한 번 대본 내용을 놓치자 머릿속은 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했다.
방송 경험이 없는 초보 리포터나 연예인들이 짜인 대본대로 진행이 안 됐을 때,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날 이후 다시는 그들을 비난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나는 보기 좋게 강연을 망쳤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빽빽하게 대본을 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키워드로만 간략하게 정리해 자유롭게 말할 걸. 전문가도 아닌데 어설프게 전문가 흉내를 내느라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죄다 끌어다 쓸게 아니라 방송에 출연한 아이들의 못 다 한 이야기나 비하인드 같은 내용을 재미있게 이야기할 걸.
후회가 막심하지만, 한편으로는 방법을 모른 채 열심히만 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럴 때만 나오는 긍정마인드~)
그때 만약 김하나 작가의 책을 알았더라면(그때는 이 책이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못해도 괜찮다, 안 들으면 니 손해지, 다 좆밥이다, 유명인도 아무 말을 말 하는데 나라고.
라며 자신 있게 했을 텐데.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은 싫어하지만 '하면 는다'는 말은 좋아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해보면 조금은 늘 것이다. 그리고 해봐야만 '아, 이 분야는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하고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레 겁먹기보다는 해보기나 하자 싶었다.' (P.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