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한 지 2주 만에,
밤 11시, 프로그램의 총 회 차를 결정지을 출연자 섭외를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온 다음 날 밤에,
꿈을 꾸었다.
조각조각 기억나는 이미지와 달리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속의 감정들.
잠들기 전, 노래방이 여러 번 나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봐서 그런지, 꿈속의 배경은 노래방이었다.
상황은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평가하는 자리.
내 차례가 되었는데 아는 노래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동안 뭘 했는지, 노래 연습을 하나도 안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느껴졌던 당혹감과 후회, 그리고 낭패감. 꿈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심지어 목 관리도 제대로 안 해, 목소리마저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어찌어찌 끝까지 노래를 다 부르기는 했다. 하지만 결과는 꼴찌.
총 5명이 경연을 했는지 5라는 숫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5등, 꼴찌가 확정되는 순간, 사람들이 내게 걸고 있는 기대를 저버렸다는 생각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꿈속 사람들도 내가 이렇게까지 못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망감과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자책감이 뒤섞여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곧,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cp가 면담을 요청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라도 된 양, cp의 뒤를 따라가는데, 잠시 후 듣게 될, 가슴 아프지만 냉정한 평가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두려움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멘탈은 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다행히 꿈은 거기서 깼다.
내 꿈 얘기를 들은 남편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의 발현'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빙고.
못하면 어때, 최선을 다 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지,
지난 2주 동안 끊임없이 자기 암시를 했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뛰어든 현장은 나에게 무서움 그 자체였다.
과정은 과정일 뿐,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고 말해지는 이 바닥에
나는 왜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해 그토록 안달을 부렸던 걸까.
신기한 건, 이런 기분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지, 하고 발을 뺐다가도
금세 또 그리워하고, 결국엔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정말 알 수 없는 일. 방송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