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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 Jun 10. 2022

나이 들면 도시보다 시골이 좋은 이유

"요즘 시골에 노는 노인들 있는 줄 아냐."


올해 71살이 된 엄마는 동네에서 노는 사람은 자신과 이웃에 사는 할머니 한 명뿐이라고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들도 매일 아침마다 면사무소에서 나눠주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나와 쓰레기 줍는 공공 근로를 한다고 했다.


"말이 쓰레기지 시골에 쓰레기가 얼마나 . 그냥 조반(아침) 먹고 나왔다 얘기나 하다 들어가는 거지."


평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노인들은 산책하듯 나와서 한 달에 30만 원을 벌어간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꿀알바'가 어딨냐며 본인 먹고 살 양식 나오는 땅만 있으면 나라에서 그냥 가져가라고 주는 돈이나 다름없는 용돈 벌이 하면서 맘 편히 살 수 있는 시골이 도시보다 낫다고 했다.


조반 먹고 3시간만 투자하면 한 달에 30만 원을 벌 수 있는 곳.

그 일 말고도 시골은 노인들에게 열려 있는 일자리가 많다고 했다.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자식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여든 살이 되기 전까지는 1년에 한 번씩 품위 유지비 개념의 바우처도 15만 원씩 나온다고 했다.


"그걸로 머리도 하고 화장품도 사고 그러라는 거지."


시골에서 80살은 품위 유지가 필요한 노동자였다.


엄마는 아직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우두커니 앉아 있고 싶지 않다며 지인에게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읍내에서 옷가게를 하는 지인은 진짜로 엄마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복지관에서 노인들한테 무료로 점심 나눠 주는 거 있잖아. 아줌마 세 명이랑 그거 만드는 거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노인들에게 밥을 해주면 한 달에 7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이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노인 연금 받는 사람들 한테만 주는 일자리지."


노인 연금은 정부에서 알선하는 취업을 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스펙이었다.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는 출근할 때 입을 옷과 신발이 변변치 않다며 쇼핑을 하서울에 왔다. 오랜만에 엄마에게서 기분 좋은 활기와 긴장감이 느껴졌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얼마나 자존감이 떨어지는 줄 아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우울하고 그렇다니까. 돈도 돈이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얘기도 하고. 그래야 사는 거 같지 집에만 있으니까 아주 못 살겠더라고."


70살이 넘은 엄마 입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기분이 이상했다. 평생을 고된 노동에 괴로워했으면서 일을 통해서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믿 있니. 상황이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때 또 다른 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소방관들에게 주말 동안만 점심, 저녁을 해주면 한 달에 90만 원을 준다고 했다.

여러 일자리 플랫폼을 기웃거리고 습관처럼 작가협회 구직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려도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든 나보다 엄마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 나이가 되면 나도 조반 먹고 산책하듯 나와서 한 달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0만 원씩만 버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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