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할 게 뭐 있나. 다 하는 거지.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중략) 일이라는 건 끔찍하도록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노하우를 익히고 실력을 늘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됐다. 그게 무슨 일인지, 어떤 일인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9번의 일> 김혜진
올해 제 목표 중 하나는 '고립되지 말자'였어요.
지난해에는 자의 반, 타의 반, 대인기피증 프리랜서 작가로 살았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고, 올해까지 그 역할에 충실하다가는 진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경단녀의 길을 걷게 될까 봐 과감히 탈출을 결심했지요.
그러나.
'나 오늘부터 다시 일하기로 했어!'라고 외친 들 갑자기 하늘에서 일자리가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연차의 적당한 페이를 받는 작가들이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데 20년 동안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나이 많은 작가를 굳이 쓰겠다고 나서는 고용주가 있을 리가... 요.
아니나 다를까.
야심 차게 컴백을 외친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저는 이력서를 내는 족족 퇴짜를 맞았어요.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그나마도 무릎 정도밖에 안 닿아 있던 자존감이 금세 발바닥까지 내려가 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땅속까지 스며드는 자존감을 바라보며 저는 마흔셋을 인생 후반전의 시작이라고 했던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못할 게 뭐 있나. 다 하는 거지.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때로는 아주 단순하고 짧은 한 마디가 쓰러져 죽기 직전의 사람을 구하기도 하잖아요.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구직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방송작가 전용 구인, 구직 사이트만 살펴봤는데 범위를 확장해 글쓰기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가 생각보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20년 간, 방송국 안에서는 비싸게 팔리던 글이 안정된 테두리를 벗어나자 많아야 1만 원 정도의 값밖에 쳐주지 않는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저는 몇 번의 이력서를 넣은 끝에 겨우, 자기소개서 항목에 따라 내용을 작성하는 글쓰기 아르바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한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반까지 출근해 8시 반에 끝나는 생방송을 보조하는 일이었는데, 4시부터 다니는 첫차를 타려면 적어도 3시에는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 생활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없이 1년 반을 했더니 졸업과 동시에 작가 입봉이라는 부상이 주어졌습니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방송 작가는 작가 입봉 전에 막내 작가 생활을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거치게 되는데 저는 새벽 출근과 그 시간을 맞바꾼 셈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그 흔한 토익이나 토플 시험 한번 보지 않고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사람이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저는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면접 후, 간단한 글 쓰기 테스트를 통과한 뒤, 저는 정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한 자기소개서는 성장 배경이나 성격의 장단점 정도를 쓰는 거였는데 기업의 부서마다 요구하는 항목이 꽤 구체적이고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경력직의 경우,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 중, 자신의 기여도가 얼마인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역량을 발휘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고 부서인데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쓰라니... 소설 쓰기보다 더 어려운 창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계약서에 싸인을 한 상황. 저는 실제 그 분야의 경력직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인터넷으로는 한계가 있어,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들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살면서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했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그러나 '조직 및 단체 활동을 하면서 서로 간 입장 차가 있는 의견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에 대해 기술하시오'나 '회사의 인재상 <변화>, <혁신>, <고객 가치 창조> 중 본인이 경험한 것 한 가지를 기술하시오'와 같은 항목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질문을 위한 질문을 일부러 만든 것처럼 '어디, 얼마나 쓰는지 구경 한 번 해볼까', 하고 누군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담당자는 어차피 지원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그럴 때는 그냥 두리뭉실하게 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말이 잠깐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대충도 뭘 알아야 쓰지. 아무리 건당 2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지만, '저는 0남 0녀의 0째로 태어나...'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만큼은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면접관이라면 이렇게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는 두 줄 이상 읽고 싶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본격 직업 탐구에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캐피털 회사에 여신감리라는, 이름은 아름답지만 하는 일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부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은행에 고객 행동을 분석하는 팀이 따로 있어 심리학 전공자들을 뽑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읽은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저마다의 성격과 성장배경이 있잖아요. 그 인물들을 개인정보보보 컨설팅 회사의 서버 개발자로, 공사 현장의 품질관리자로, 리테일 회사의 투자 개발자로 재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매 건을 다 이렇게 공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는 일하는 시간에 비해 페이가 턱없이 낮은,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일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호기심과 흥미가 있어도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일에, 더는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상반기 기업 공채 자기소개서를 끝으로 그 일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담당자는 곧 시작되는 대학 수시 모집 이력서 작업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저는 조금 더 제 노력의 대가를 인정받는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을 곧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결론적으로 20년 차 방송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저는 한 달째 백수 생활 중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문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절대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움직이리라는 것을. 그러면 문은 천천히 열릴 것이다.'
- <위기의 여자> 시몬느 보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