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 Jul 15. 2024

마지막 수업, 마지막 일기

2023.11.24.금요일

오늘이 어학연수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기숙사를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지막 짐정리를 했다. 미국 친구 M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섰다. M과는 인스타, 디스코드 두 가지 채널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기로 했다. 그런데 혼자서 트렁크 2개, 기타 짐 2개를 옮기려니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나마 일찍 출발한 덕분에 한블럭마다 쉬면서 갈 수 있었다. 목적지는 학원 근처의 호텔이다. 낑낑 대면서 짐을 옮기고 맡겼다. 원래 오후 3시가 채크인 시간이지만 짐은 미리 맡아주기로 했다. 방이 준비되면 짐을 옮겨주겠단다. 땡큐다. 짐을 맡기고 나서 학원으로 향했다. 



문법 수업

오늘은 보강교사가 들어왔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교사다. 한국에서 2년 정도 살았던 배우 출신 교사다. 그녀와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다행이다. 연습문제를 풀고 확인했다. 수동태로 표현하기 어색한 것들, 수동태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은 것들을 배웠다. 내가 보기에 이 교사가 원래 교사인 M보다 낫다. 그녀는 학생들의 이해도를 수시로 점검하면서 수업을 한다. 이런저런 문제를 풀었다. 연습 문제 중에 세상의 변화에 대한 것이 있었는데 역시 나이가 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젊은이들이 느끼는 것이 좀 다르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닐까 싶다. 경험의 차이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다들 잘 살아라.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한다.



듣기 수업

드디어 마지막 발표다. 나는 첫 번째로 자원해서 발표했다. 다 까먹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한다. 나는 김밥에 대해 발표했다. 대부분 김밥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서 설명하기 수월했다. 학생들은 각각 자신의 나라에서 유명한 혹은 선호하는 음식을 소개했다. 

일본 고등학생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오코노미야키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데 오코노미야키에 대해 설명을 마치고는 갑자기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므로 자신이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는 일본에서 가져온 오코노미야키를 만드는 밀트키 세트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너무 감동했다. 나는 한국에 가서 이것으로 요리를 한 후에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겠다고 했다. 너무 고마운 선물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

오늘 오후 수업은 희망자만 듣는 특별 수업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수업이 정식으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다. 나의 졸업장, 이번달의 성적표가 교실에 도착해 있다. 감회가 새롭구만. 그런데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다. 이 교사, 오늘이 최악이다. 교사는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던 레벨 테스트의 시험지 종이를 딱 한 장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돌아가 가면서 그 종이를 보고 문제를 풀고 정답을 큰 소리로 읽으란다. 한 사람이 문제를 읽고 푸는 동안 나머지 학생들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답답해서 문제지를 사진으로 찍으려니까 안된단다. 문제가 유포되면 안된단다. 그러면 복사라도 했어야지. 결국 이번 한 시간은 그냥 땜빵하듯이 그렇게 문제지 하나를 돌려가면서 읽으면서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까 이 문제지에 대한 채점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음. 안되겠다. 이따가 학원의 한국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그때 이 교사의 문제점을 짚어주어야 겠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션을 주는구만.



점심시간

학생 라운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평소에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오후 특별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밥을 한입 먹기가 바쁘게 친구들이 와서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들의 깃발 혹은 노트에 인사말을 써주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다. 나의 칠레 친구가 와서 한참 포옹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에게 선물과 편지를 주었다. 어제 이미 울었기 때문에 오늘은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녀에게 내가 꼭 칠레에 여행갈 것이므로 그때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그래. 나는 아무래도 멕시코와 브라질, 칠레를 꼭 가야겠다. 본의 아니게 남미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일본 친구들이 한꺼번에 와서 선물을 주고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었다. 너의 어린 친구들은 한참동안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인사말 노트, 캐나다 깃발 등에 작별의 말을 써주고 간단한 만화도 그려주었다. 나의 또다른 취미가 만화그리기이다. 일부 친구들이 인사를 나누고 갔는데 또 다른 친구들이 온다. 에고, 정이 많은 친구들이다. 

그 와중에 한동안 나에게 말을 걸었던 일본 남학생 친구도 와서 또 특유의 툭 던지는 말로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조금 쭈볏거리면서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그래. 함께 사진도 찍고 인스타그램도 연결했다. 

한참 내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 마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나니까 이번에는 함께 점심을 먹은 일본 친구 A가 자신도 줄 것이 있다면서 편지와 선물을 준다. 에고. 고맙다. 우리는 겨우 2주 정도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정이 많이 들었다. 그녀는 만약 우리가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많이 친해졌을거 같다면서 아쉬워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저렇게 여러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선물도 받았다. 나는 이미 한국갈 짐을 싸 두었지만 호텔에 가서 다시 짐을 정리해야겠다. 선물을 너무 많이 받았다. 정신없이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오후 특별 수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많이 신청해서 분반을 했다. 분반한 수업에는 아침 문법 수업에 보강교사를 했던 그 교사가 들어왔다. 우리는 더 반가워했다. 가볍게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그게 가벼운 게임은 아니었다. 스펠링을 알아서 단어 블럭을 연결해야 한다. 내가 부분이 약한 스펠링이다. 그래도 한참 다들 재밌게 게임을 했다. 여러 게임과 토론을 하는 활동을 한 후 수업이 끝났다. 드디어 정말 이 학원에서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교사는 나에게 항상 건강하고 여행 잘하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정말 안녕이구나.




아까 점심시간에 인스타그램으로 기숙사 친구 중 일본 친구 K가 연락을 해왔다. 아침에 내가 일찍 나가는 바람에 작별 인사를 못했다면서 학원으로 찾아오겠단다. 수업이 끝나는 3시에 2층의 데스크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허겁지겁 그곳으로 가니까 K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간발의 차이로 인사를 못했다면서 나에게 선물을 준다. 그리고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학원의 한국인 어드바이저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학원에서 느낀 점, 교사들에 대한 나의 생각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교사였던 내가 느낀 이곳 교사들에 대한 견해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평소 느꼈던 점을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다시 한번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정말 학원을 떠났다. 



호텔에 와서 채크인을 했다. 방에 가보니까 나의 짐들이 다 올라와있다. 역시 편하군. 이들 중에서 한국짐과 옐로나이프짐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이 짐들을 나의 밴브릿지 사무실로 끌고 갔다. 어제 밤에 이메일로 보낸 출력해야 할 서류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짐을 맡기고 서류를 받았다. 너무나 고마운 밴브릿지! 나는 앞으로 2주간 쿠바 여행을 하고 나서 이 사무실에 와서 맡겼던 짐들 중에서 옐로나이프짐을 찾아서 또다시 여행길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옐로나이프에서 돌아와서 모든 짐을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밴브릿지에서 짐을 맡아준 덕분에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마지막 한국으로 가기 전날에는 내가 너무 늦게 밴쿠버에 도착하게 되는데 밴브릿지 직원분들이 나의 짐을 호텔로 갖다 주시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민폐를 끼쳐서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짐을 맡긴 후 드디어 마지막으로 밋업 영어 회화 모임에 갔다. 그동안 익숙해진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여기서 많이 영어 연습도 했고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초기에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이 오늘 많이 나와서 마지막 인사를 모두에게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지난 주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던 사이프러스 친구가 잠깐이라도 나의 얼굴을 보겠다고 왔다. 그래. 친구. 언젠가 다시 만나자. 어떤 캐나다 친구가 말했다.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가고 또 다시 오는 곳이라고. 인연이 닿으면 아마도 다시 오게 되겠지.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55세 어학연수 도전이 끝났다. 이렇게 특별한 도전, 특별한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 새로운 도전을 하겠지만 이런 경험은 다시 못할 같다. 5개월의 긴 도전을 마치고 나니까 커다란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마음도 들고 허탈한 마음도 든다. 

제일 많이 떠오르는 것은 친구들이다. 나에게 잘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 나의 친구들도 고맙다. 학원에서 나의 베프였던 멕시코 친구 R, 브라질 친구 L, 한국 친구 M, 대만 친구 J가 너무 고맙다. 이들이 있어서 나의 학원 생활이 행복했다. 그리고 밋업이라는 어플을 통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다 고맙다. 한영 언어교환 모임, 영어회화 모임 모두 너무 소중하다. 나는 학원을 통해 영어를 공부했고 밋업을 통해 영어를 익혔다. 밋업의 이 모임들이 없었다면 내 밴쿠버 생활의 절반이 텅 비었을 것 같다. 그리고 밴브릿지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해주는 밴브릿지를 만나서 나는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귀국하고 나서 영어가 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확실히 영어실력이 향상된 것 같다. 밋업 모임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나의 영어가 늘었다고 말해주었고 내가 느끼기에도 처음보다는 그래도 입을 많이 뻥끗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문법은 엉망이고 듣기를 잘 못한다. 남의 나라 말 배우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전보다는 좀더 많이 말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붙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밋업의 온라인 영어모임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아마 어학연수 경험이 없었다면 온라인 영어모임은 도전하지 못했을 것 같다. 

자아, 이제 55세 어학연수 일기는 여기서 종료한다. 이 일기는 그때그때 블로그에 기록해 나갔다. 그리고 귀국한 다음에 이곳 브런치에 일기를 오타나 명확하지 않은 표현만 다듬는 수준으로 다듬어서 올렸다. 다듬으면서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니까 너무 좋았다. 이제 브런치에 연재하는 것을 마무리 한다. 

혹시 나이가 들어서 어학연수를 가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나는 꼭 도전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이는 상관없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생활해보는 것. 그것은 힘들지만 신나고, 어렵지만 즐거운 경험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도 친구들이 보고 싶다. 전세계의 친구들을 가진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덕담 그리고 짐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