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돈이 되진 않지만, 인생을 빛나게 하는 취미에 대하여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 혹은 사이드 잡(side job)을 소개하는 책이나 기사가 부쩍 늘었다.
'부캐(부캐릭터)' 열풍은 기존의 본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본업을 유지하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추가 수입을 창출해 보라고 유혹한다.
하고 싶지만 여러 현실적 사정으로 미뤄둔 일이 많은 우리들에게, 자아도 실현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쩌면 안정된 직장 혹은 사업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 여가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탐색해보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결론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시대니까. 뭘 하든 돈을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제가 있다.
돈이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이다. 간혹 인생에서 수단과 목적이 헷갈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면서 한 번씩 삶의 목적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있는지, 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기 위해 돈이라는 수단을 축적하고 있는지 말이다.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써야 할 여가시간조차 돈을 벌기 위해 산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오직 돈을 위해 바친 셈이 된다. 나중에 죽으면 가져가지도 못할 돈을 위해 말이다. 더 슬픈 것은 그렇게 열심히 돈만 번다고 해서 꼭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돈이 되는 취미생활이 유행하고 있는 시대에, 오히려 돈이 되지 않는 취미생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즉, 돈이 되진 않지만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취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즐겁게 취미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좋은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좋은 거 맞다.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취미와 섞여버리면 온전히 즐겁기 위한 목적으로 취미생활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돈벌이와 즐거움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본말이 전도되고 무얼 위해 이 취미를 시작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땐 취미가 아니라 부업이 된다.
그렇다. 결국 '무얼 위해' 취미생활을 하는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절대 취미로 돈을 벌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취미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기본적으로 수단과 목적은 섞이면 안 된다. 심지어 온전히 즐겁기 위해 시작한 취미생활 덕분에 돈을 벌게 된 경우조차도 목적은 즐거움, 돈은 부산물이라는 무게중심이 분명히 잡혀 있어야 사전적 의미에서도 '취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여기서는 취미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목적으로서의 취미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슬기롭고 풍요롭게 취미생활을 하자는 의미로 <취미로운 생활>이란 테마 아래 연재를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취미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도 취미이긴 하지만 판타지 소설, 만화, 펑크록, 공룡 등 뭐 하나에 꽂히면 깊게 빠지는 편이었다. 커서는 철학, 미학, 중남미 문학에서부터 주성치, 기타, 에스프레소, 평양냉면 등 뭔가 신기한 걸 만났다 하면 바로 꽂혔다. 그야말로 취미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가 따로 없다. 심지어 회사 업무에까지 꽂히곤 하는데(이 몹쓸 병!), 모 회사 홍보팀에 근무하면서 DSLR, 포토샵에 빠져 무수한 개인 장비를 사들이는가 하면, 최근 온라인 광고 업무를 맡으면서는 광고분석 플랫폼과 퍼포먼스 마케팅에 푹 빠져버리기까지 했다.
소위 일상을 '덕질'하듯 살고 있는 셈인데 심심할 일이 없어 좋긴 하지만, 이렇게 넓고 얕게 이것저것 손대는 스타일이란 것은 결국 어느 것 하나 깊게 파고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잘 하긴 하겠지만, 결코 전문가는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 어쩌면 내 삶에 치열함이 없었던 건 아닐까.
아닌데? 그렇게 평범하진 않은데? 다만 비범하지도 않을 뿐인데?
그렇다. 결코 '회사원'이나 '직장인' 같은 보통명사로 정의될 수 없는 존재가 '나'다. 한 소설가가 얘기한 것처럼 이 세상에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린 누구나 조금은 평범하고 조금은 비범하다.
결국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사랑했던 그 무수한 취미들이 곧 나다. 그 어느 것 하나 전문가처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 무수한 취미들이 내 인생에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쩌면 취미만 많고 뭐 하나 전문적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도, 역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취미를 가지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어떤 것에 금방 꽂히는 것 또한 나의 재능이 아닐까?
같은 무지개를 보아도 어떤 이는 두 가지 색깔로밖에 보지 하지만, 어떤 이는 207가지 색깔까지도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같은 인생과 같은 지구를 살면서도 더 많은 색깔을 발견하며 살 수 있는 재능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습게도 이런 발상의 전환이 코페르니쿠스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그래서 천일야화처럼 내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그 모든 취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 나가려 한다. 이 글을 만나게 된 독자들이 내가 사랑하고 꽂혔던 것들에 굳이 함께 꽂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취미와 자기만의 비범함을 찾으면 되고, 다만 나의 것이 힌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취미들의 이야기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삶의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취미로운 생활의 시작!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거진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