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운 생활 : 독서
그 어떤 지적 허영심과 호기심이 뒤범벅이던 대학시절, 새해만 되면 저런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곤 했다. 한두 해로 끝난 게 아니라 연례행사처럼 이어져서 군대를 다녀오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몇 해간 계속되었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려면 1년에 100권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약간의 허세와, 언젠가 작가가 되려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섭렵해야만 한다는 강박 같은 목적의식이 교묘하게 결합된 결과였다.
그래서 100권을 읽은 적이 있었느냐고?
실제로 100권을 채운 건 단 한 번, 군대에서 목표를 달성했다. 그땐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대개의 경우 50-60권 정도가 평균이고 70-80권 읽은 해는 많이 읽은 축에 속했다.
솔직히 100권은 학자도 작가도 아닌 보통 사람에겐 지나치게 무리한 숫자다. 산술적으로 따져봐도 3~4일에 1권씩은 꾸준히 읽어나가야 하는 양이다. 학교를 다닐 땐 그나마 수업으로 읽는 책도 있었지만, 회사를 다니며 100권을 달성하려면 별 짓을 다 해야 했다. 특히 야근까지 잦던 시절엔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를 가지고 해야만 했던 일이다. 그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부러 짧은 에세이나 시집을 대량으로 몰아서 읽는다거나, 만화책을 읽어 카운트에 포함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지금도 100권 읽기를 도전하고 있었다면, 아이에게 읽어준 동화책은 물론 웹툰까지 권수로 환산해 카운트했을지도 모르겠다. 목표량 자체에만 집착한 결과였다.
물론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에는 양을 늘리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아직 익숙지 않다면 양적 목표를 세울 필요도 있다.
1년에 100권을 달성하기 위해 정말 빠르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읽는 기술이 늘어났다. 마치 독서 알고리즘이 장착된 한 마리의 AI가 된 것처럼 책의 개요를 최대한 빠르게 파악하여 내 머릿속 위키백과에 효율적으로 집어넣는 일에 주력하게 된다. '속독법'이라고 들어봤는가? 책을 빠르게 읽는 기술을 뜻하는 말로 놀랍게도 이를 가르치는 학원까지 있는데, 그 시절의 나는 마치 속독법 훈련생 같은 꼴이었다.
비판적인 어조로 말하긴 했지만, 사실 빠른 속도의 대량 독서는 장점도 있다.
일단 책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과 안목이 생긴다. 서점에 가면 대략 몇 장만 훌쩍 넘겨봐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아닌지 판단이 선다. (물론 개인적 기준에서의 '내가 읽을 만한 가치'를 말한 것이지, 그 책의 절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31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의 주문대 앞에 서서 3초 만에 내가 먹을 메뉴를 선별하는 능력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불필요한 독서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과감히 포기한 후 다음 책을 집어 들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굳이 생각해 보면 등등의 장점을 좀 더 열거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진심으로 100권 읽기에 도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제 더 이상 책 한 권 읽는 행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졌다.
생각보다 책을 펼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책을 읽고 싶을 때 아무 거리낌 없이 펼치고 덮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많이 읽다 보면 한 권쯤이야 껌 같이 자연스레 씹을 수 있는 것이다. 100권 읽기를 해왔던 과거의 노력이 내 몸에 남긴 감사한 능력이다.
하지만 독서량에만 집중한 책 읽기는 결국 책 자체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험 서적을 읽는 것도 아닌데 독서행위가 즐겁지 않은 의무감에 불과했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으며, 오직 속도만이 중요했기에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책은 읽고 싶어도 섣불리 집어 들지 못했다. 난 무엇에 그리 쫓겨 다닌 것일까. 결국 스스로가 만든 족쇄로 스스로를 구속했던 셈이다.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전도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스스로가 한심해지면서 100권 읽기라는 목표를 중단했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이 책의 주장을 내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하기도 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구절에는 줄을 치거나 따로 메모하는 등 음미하며 읽던 시절이 그리웠다.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였던 그 시절 말이다.
지금의 나는 속도가 아니라 '읽는 순간'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이란 결국 많이 읽는 것보다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쓰여지고 사라져간 책들이 모두 몇 권이나 될지 계산할 방법은 없지만, 계산해 보나 마나다. 어차피 그 모든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에 1권씩 100년간 책을 읽어도 고작 36,500권밖에 못 읽는데, 이는 국립중앙도서관의 1,300만 권(2020년 기준)에 비해서도 0.3% 정도밖에 안 되는 숫자다. 즉, 세상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과 가장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전 지구의 도서관적 관점에서 보면 고작 소수점 몇 째 자리 정도의 차이밖에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맞는 책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책이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책을 꼭 끝까지 다 읽을 필요부터 없다. 책이란 무언가를 느끼고 얻기 위해 읽는 것인데, 어떤 책이 나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된다. 책이란 원래 빌리거나 산 것 중 일부만 읽고 마는 것이라는 편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샀다고 해서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다 써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꼭 종이책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나도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로 독서하기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눈의 피로도가 종이책보다 심해 나에게는 별로 맞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사정이니 이 글을 읽는 당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당신에게 이북이 맞다면 이북으로 읽으면 된다.
책 하나하나에서 일일이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저 세상의 수많은 책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게 두면 된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주변에 많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여행이나 음악, 영화가 취미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이들은 대개 책은 (봐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본다고 답하는 일이 많다. 그런 답변을 들을 때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책’이라는 것에 어떤 의무감 같은 강박을 부여한 사회인지를 생각하곤 한다. 많은 아이들이 도서관을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흔히 아이들이 구석에 앉거나 기대어 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이라는 게 의무가 아닐 때 책을 읽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100권 읽기를 도전했던 적이 있었지만, 우습게도 나는 독서 예찬론자가 아니다.
책을 신비화하거나 독서를 찬양할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가 유튜브와 나무위키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고, 실제로 여행을 가봐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듯이, 오직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100권 읽기라는 강박 같은 목표를 버리고 나니, 서점에 앉은 어린이의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거진 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