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닝리 Apr 20. 2021

크라잉넛, 저항정신에 저항하기

취미로운 생활 : 펑크록


"엎드려 비느니 서서 죽는다."



정말이지 파워풀한 문장 아닌가?


내 인생 모토이자 좌우명의 하나인데, 특히 나 같은 회사원에겐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문장이다.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이어오는 지금까지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저 문장을 떠올리며 ‘내 삶의 주인은 나이며 권력과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락앤롤(Rock&Roll)' 정신이니까! (놀랍게도 국어사전에는 '록 앤드 롤'이 맞다고 나오지만 어감을 살리기 위함이니 양해 바란다.)


저 문장은 다름 아닌 크라잉넛의 <파랑새>에 나오는 가사다.

'말 달리자', '밤이 깊었네', '룩셈부르크' 등 펑크를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노래로 한국 인디신을 이끌었던 그 크라잉넛 말이다.



이들이 하는 음악이 바로 펑크록(Punk Rock)이다. 펑크록은 거칠게 저항정신을 드러내는 록(rock) 음악이 번성하던 1970년대 영미권에서 기존 ‘제도권 록’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응? 저항의 상징인 록 음악이 제도권이고,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 펑크록을 만들었다고?

그렇다. 그러니까 펑크록은 기성세대와 제도권에 저항하면서 탄생한 록이 또 다른 제도권으로 자리 잡는 것에 반발하며 탄생한 음악이다. 그러니까 오롯이 팬의 주관적 입장에서 '펑크'를 예찬하자면 펑크야말로 진정한 자유와 저항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저항 정신 자체가 또 다른 권력이 되면 안 되는 것이며, 저항 정신은 자유로움과 민주성을 유지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이유로 기존 록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록 음악을 원했다.


펑크록이란 쉽게 말해 무게나 폼을 잡지 않는 가볍고 거칠고 쉬운 록이다. 노래를 다소 못 부르고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소리 지르고 형식 없이 난동을 피우며 부를 수 있는 록으로 만들어졌다. 단 3개의 코드만 있으면 연주할 수 있다는 쓰리 코드(three code)와 무대와 객석을 구분 않고 형식 없이 뛰어다니는 자유로움, 그리고 제작사나 음반산업에 종속되지 않는 DIY(Do it yourself) 정신이 펑크의 상징이다.


보통 펑크록이라 하면 섹스피스톨즈, 그린데이 같은 영미권 밴드들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학창시절 크라잉넛, 노브레인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 한국의 홍대 앞 인디밴드의 음악을 듣고 자라며 펑크록에 빠졌다.


크라잉넛이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당시 펑크를 좀 안다는 평론가들이 펑크란 어쩌고 하며 훈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그들에게 “닥쳐!”를 외치면서 탄생한 곡이 전설의 <말 달리자>이니 펑크마저 영미권을 기준 삼아 제도권으로 길들이려는 풍토에 처음부터 저항하며 탄생한 밴드라 할 수 있다. 기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곡을 많이 내다 보니 그 음악적 스펙트럼이 무척 넓어서 일종의 장르라기보다는 펑크 정신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말 달리자>를 처음 들었을 때도 충격이었지만, 그 <말 달리자>의 밴드가 새 앨범을 냈다며 친구가 권해준 <서커스 매직 유랑단>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강렬하고 신나면서도 구슬픈 그 노래는 정말이지 내가 가진 기존의 음악에 대한 관념을 모두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우울하거나 삶이 흔들려서 매우 강력한 음악이 필요할 때면 이들의 음악을 듣는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 군대, 직장생활을 하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크라잉넛은 나에게 펑크록의 상징이자 현재진행형의 역사다.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밴드가, 그것도 인디 밴드가 이렇게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준다는 것은 팬의 입장에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사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처음 크라잉넛에 빠져들던 당시의 나는 내심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펑크록과 크라잉넛이 나중에는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최소한 팬의 입장에서 크라잉넛만큼은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자본주의 록의 플렉스를 보여주길 원했다. 한창 인기가 상승할 때는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상업주의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5주년을 넘어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인디다.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제도권에 결코 포섭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자유로움이 바로 펑크록과 크라잉넛의 매력이었던 것을.


당신에겐 전주만 들어도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음악이 있는가? 오늘이 힘겨운 당신에게 내일은 없다며 마구 소리 지르는 펑크록의 해방감과 그 자유로움을 선물하고 싶다.


울적할 땐 함께 외쳐보자! Rock&Roll!! 롸캔롤!!

↓그리고 이곳엔 한국 펑크의 새싹이자 미래가!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거진 보기(클릭)

매거진의 이전글 1년에 책 100권 읽기, 가능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