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운 생활 : 로또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인 정세랑 작가의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으려 책을 펼쳤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소설의 첫 문장조차 시작되기 전이었다.
작가님도 열심히 사셨구나.
그러니까 인생 얘기가 아니라 로또 말이다. 로또를 열심히 사셨구나.
물론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났다는 커다란 행운을 누린 덕분에 로또가 안 되는 것 같다는 위트 있는 감사의 표현이었겠지만, 아무리 해도 로또가 안 된 건 사실이다.
물론 아무리 해도 당첨이 안 되었으니 여기 로또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당첨후기가 아닌 일종의 낙첨후기다. 5천 원은 몇 번 당첨된 적 있지만, 그 다음 주 로또로 바꾸면 다시 종이조각으로 변신하곤 했다. 무려 숫자를 세 개나 맞췄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또 로또를 사곤 했다.
일단 무슨무슨 꿈을 꾸고 샀더니 당첨되었다는 말은 안 믿는다. 나도 돌아가신 할머니 꿈에서부터 최근 코로나 백신을 맞는 꿈까지 뭔가 생생한 꿈을 꾼 날마다 로또를 사봤지만 대부분 개꿈으로 판정되었다.
동네에 로또 명당이 하나 있는데 명당 같은 것도 안 믿는다. 어차피 확률 게임이다. 무려 1등이 15번이나 당첨되었다는 그곳은 매일 아래 사진처럼 줄을 선다. 그러니까 아마 1등이 1번 당첨된 가게보다 15배 많은 복권을 팔았을 뿐일 것이다.
당첨 번호를 추천해준다는 광고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가능한 번호 조합 전체를 회원들한테 모두 돌리기만 하면 매주 1등 당첨번호가 나오게 할 수 있다. 가령 1등 당첨 확률은 약 800만 분의 1인데 1명에게 번호를 10개씩 추천한다고 하면 회원을 80만 명만 확보하면 매주 1등 당첨자를 배출했다고 광고할 수 있다.
아니. 아무것도 안 믿는다면서!
그건 로또를 산 그 순간부터 설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똑같은 당첨확률이 있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제공되는 8,145,060 분의 1의 확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또를 살 때 이번 주에 당첨되면 무얼 할 것인지 상상하기 시작한다. 일단 차부터 살까? 아님 부동산을? 주식에는 얼마나 넣어야 하지? 등등. 그 주에 회사에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음 주에 제가 안 나오면 로또 된 줄 아세요."라고 얘기하는 순간이 즐겁다. 말 그대로 5천 원의 행복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로또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월요일에 살 것을 추천한다. 매주 토요일이 당첨번호 발표이기 때문에 너무 임박해서 사면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매주 한 치의 오차 없이 튀어 오르는 이 그래프는 우리의 심장박동(?!)이 아니라 네이버 검색창에서 '로또'라는 키워드를 검색한 검색량이다. 검색량 그래프만으로도 로또인들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느껴지지 않는가?
유감스럽게도 회사 내에도 나의 로또 사랑은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사내방송 PD와 친분이 있어 송년 특집 방송으로 새해 소망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점검하는 프로그램에 양념 역할로 출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새해 소망을 로또 당첨으로 제출했는데 실제로 당첨되었는지를 가지고 방송을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여 출연하게 되었다. 물론 방송이 나간 이후 한동안 로또 중독자로 놀림당하는 일을 감내해야 했다. 이제 진짜 1등이 당첨되면 회사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거지? 아무튼 지루한 회사생활에서 잠깐이나마 직원들에게 웃음을 줬으면 그걸로 족한 걸로.
이런 유머가 있다.
누군가 "신이시여, 제발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고 평생 빌었지만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이 사람이 죽어서 신을 만나 왜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눔아, 로또를 사고 빌었어야지."라고 답했다는 식의 이야기다.
※ 참, 타이틀에 촬영한 로또 사진은 아직 이 글을 작성한 시점 기준으로 발표 전이다. 번호는 노골적으로 공개해 두었다. 두둥! 과연 당첨될 것인가? 당첨되고 성지 가즈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낙첨이네요. 열심히 살겠습니다.ㅎㅎ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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