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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Apr 29. 2021

커피, 살면서 한 번쯤 에스프레소

취미로운 생활 : 커피



"로스팅은 뺄셈이다."



커피 로스팅(Roasting)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로스팅은 커피 생두를 볶는 과정인데, 물론 생두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로스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풍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왜 뺄셈이라는 걸까?


커피 향미표(Flavor Wheel)라는 게 있다. 커피로 낼 수 있는 맛과 향의 리스트다.(↓아래 이미지 참고)

출처 : https://crema.co/guides/coffee-flavor-profiles


자세히 보면 곡물(grain), 연기(smoky), 나무(woody), 초콜릿(chocolate), 레몬(lemon)에서부터 장미(rose), 고무(rubber), 심지어 석유(petroleum)에 이르기까지 없는 맛이 없다.


그러니까 커피콩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엄청난 존재였던 것이다.

커피콩은 모든 맛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어떤 맛을 뺄 것인지를 선별하는 것이 바로 로스팅이다. 커피콩을 볶으면서 필요한 맛들만 남기고, 불필요하거나 나쁜 맛들을 없애는 것이 로스팅의 기술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빼는 것이 기술이다.

글도 그렇다. 쓰는 것보다 덜어내기가 더 어렵다.




에스프레소, 모든 것의 시작


인류 역사에서 커피를 발견한 이후, 여러 문화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즐겨 왔다. 가루를 내서 타 먹기도 하고, 드립(drip) 방식으로 필터에 걸러 먹기도 하고, 찬 물을 장시간 흘려 콜드 브루(cold brew)로 먹기도 하지만,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단연 에스프레소(espresso)라고 할 수 있다.


길거리에 이렇게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의 커피 매장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모든 것은 에스프레소 샷(shot)에서 시작된다. 샷이라는 용어도 에스프레소 머신의 레버를 당기는 방식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만 '샷'이라고 부른다. 샷에 물을 타면 아메리카노(americano), 우유를 타면 카페라떼(caffè latte), 우유 거품을 타면 카푸치노(cappuccino).


어라? 모두 이탈리아어다. 애초에 에스프레소 자체가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것이라서 그렇다.

성질이 급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인들이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주며 인내해야 하는 기존의 커피 내리는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고온 고압의 물을 한 번에 화끈하게 내리는 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애초에 에스프레소 자체가 영어로 치면 express, 즉 '고속'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이탈리아어를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린 것은 다름 아닌 미국 기업이다. 바로 스타벅스다. 이탈리아에서 커피에 물을 타 먹는다며 비웃었던 '아메리카노(미국인)'들이 역설적으로 전 세계에 에스프레소 기반의 카페라떼와 카푸치노를 보급했다.


최근 산미(신맛)를 가진 커피들이 유행하는데, 커피의 산미는 흔히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압력을 저압으로 맞춰 커피를 추출했더니 커피에서 산미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오늘날 커피의 맛은 로스팅으로만 좌우되지 않는다. 마지막의 에스프레소. 거기서 최후의 뺄셈이 시작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한 번 마셔볼까?


그러니까 커피를 좋아한다면 에스프레소 맛을 한 번은 봐야 한다.

응축된 에스프레소, 거기서 모든 커피 맛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셔본 것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였다. 현지 커피 가게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관광책자에도 현지인들은 커피 가게에서 아메리카노를 찾는 관광객과, 피자 가게에서 콜라를 찾는 관광객들을 싫어한다는 식의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치를 보며 물을 타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을 딱 감고 처음 먹어본 에스프레소는.. 엄청 썼다. 그렇다. 당시에는 그냥 쓰기만 했다. 각설탕을 아무리 타도 입에서 쓴 맛이 가시질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 돌아와서 발생했다. 한국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너무 싱거웠다. 묽게 희석한 것 같은 그 느낌이 마치 소주나 맥주에 물을 타 마신 것 같은 충격이었다. (별로였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다시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신다. 정확히는 샷을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얼음이 채 녹기 전에 마시는 걸 좋아한다.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 에스프레소 샷의 진한 맛이 남아 있을 때 마시려는 것이다. 좋은 커피일수록, 훌륭한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일수록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하게 마셔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훨씬 더 강하고 풍부한 풍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 '나도 한 번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기를 바라며 썼는데..

과연 성공했을까?



※ 이 글은 커피 전문가가 아닌 그냥 커피를 좋아하는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작성되었습니다. 혹시 전문가분들이 보시기에 내용상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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