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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May 11. 2021

내가 오타쿠이던 시절, 만화로 성장한 그 시절

취미로운 생활 : 만화, 애니메이션


그러니까 나는 내가 오타쿠인 줄 알았었다.


한국식 ‘덕후’가 아닌 정통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를 칭할 때 쓰는 그 오타쿠 말이다.


* 오타쿠 :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마니아(mania)들을 일컫던 말. 요즘은 그 의미가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물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당시 오타쿠들은 편견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당당한 오타쿠가 되고자 노력했었다. 그 부당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공부도 직업도 사회성도 별 문제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 숨겨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마 이 오타쿠 시절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는 문화적 취향과 코드가 남들과 조금 달랐던 것이고 그에 따른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대중가요도 들었지만 진짜 좋아하는 음악은 인디 음악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들이었고, TV 드라마나 영화도 보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서른 즈음의 일이다.


성인이 되고 좀 더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접한 나는 일본 만화든 미국 뮤지컬이든 인도 영화든 한국 판타지 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꽂히면 깊이 빠져들어 덕질하는 스타일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형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좋아했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도 나를 덕질하게 만든 무수한 콘텐츠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유년시절을 함께한 추억으로 인해 그것이 이전보다 덜 소중하다는 것을 한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완벽하게 인정하게 된 건 더 이상 만화책을 안 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런데 나는 왜 만화책을 안 보게 되었을까?



지금도 보고자 하면 방법이야 있겠지만, 동네 만화방이나 도서 대여점들이 사라진 것을 보면 일종의 시대적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나만 안 보게 된 게 아니라는 뜻이다.


* 도서 대여점 : 요즘의 도서관 개념이 아니라 만화책, 무협지, 판타지 소설, 비디오 중심의 대여점이었다. 2010년 이후 급격히 몰락했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내 또래들은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당시에는 누구나 읽었던 굵직한 일본 만화책을 접하고 돌려봤다. 나 또한 그랬다. 흑백의 선과 스크린톤으로 구현한 만화 속 세계는 어떤 TV나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매혹적인 세계였다. 당시 한국 만화책은 저변이 워낙 좁았고 너나없이 일본 만화책을 번역하거나 카피하기 바빴다.


청소년기에 접어들 무렵 함께 만화를 보던 친구의 추천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그때까지 애니메이션이라면 TV에서 채널을 돌리면 나오던 어린이용 시리즈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밖에 몰랐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들의 만화 세계를 영상으로 옮겨놓았고 청소년이나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극장판 영화들과 건담 시리즈, 무책임 함장 타일러, 기동전함 나데시코, 카우보이 비밥 등 정신없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들었는데 그중 지극히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에반게리온’과 ‘슬레이어즈’다.

에반게리온이 나의 사춘기를 시작하게 만든 계기였다면, 슬레이어즈는 사춘기를 깔끔하게 끝내준 감사한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과 슬레이어즈, 나에게는 사춘기의 시작과 끝이었던 애니메이션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영화, TV-TOKYO)


상처투성이의 14세 주인공, 소외감과 우울감으로 무장한 세기말 정서로 부모도 세상도 모두 다 없어지면 좋겠다는 중2병 감성 가득한 ‘에반게리온’은 나의 예민한 사춘기 감수성을 자극하고 매혹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에반게리온’의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아마 이때부터 스스로를 오타쿠라 여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중2병 증상이 극에 달했을 무렵 마법처럼 한 애니메이션이 공중파 TV에서 방영되었다. 바로 ‘마법소녀 리나’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슬레이어즈’다. 이 만화는 스토리도 재미있긴 하나 과거 다른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이고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 쇼의 성격이 강했다. 세계 멸망을 앞둔 심각한 상황에서도 강렬한 웃음으로 유쾌하게 돌파하는 주인공들, 특히 자칭 ‘미소녀 천재 마법사’인 주인공 리나 인버스의 매력에 빠지면서 나도 저렇게 스스로 빛이 나는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감과 자기애, 빠른 결단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에 매료되자 중2병이 거짓말처럼 싹 나았다. 리나 인버스는 나의 사춘기에 롤모델이자 멘토가 돼준 셈이다.



만화방에서 웹툰으로, 플랫폼의 변경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하면서 만화방도 자유롭게 다니고 밤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만화방과 도서 대여점이 참 많았다. 원피스, H2, 노다메 칸타빌레, 바람의 검심, 20세기 소년, 베르세르크 등 이때도 내가 좋아했던 만화는 여전히 일본 만화들이었다. 만화방에서야 다들 재미있어 보이는 걸 집어 들지 누가 작가 국적을 따져가며 일부러 일본 만화를 고르겠는가. 그만큼 이 시기까지 일본 만화가 대세였다고 본다.


변화는 완전히 의외의 곳에서 시작됐다.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 혜성 같이 나타나고 나를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줬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이 의도치 않게 한국 만화계의 매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다음과 네이버 등 한국의 웹툰 플랫폼이 강풀, 조석, 김규삼 등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하고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반면 오프라인 플랫폼인 도서 대여점과 만화방은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이미지 출처 : 다음웹툰, 네이버웹툰 화면캡처)

아무리 뛰어난 플랫폼도 그것이 담은 콘텐츠가 별로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의 만화가들은 일본 만화에 묻혀 있던 그 세월 동안 일본 만화와 겨루고도 남을 충분한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웹툰이라는 무대를 키워 나갔다. 우리의 정서와 맞고 문화적 이질감 없는 고퀄리티의 컬러 만화가 무료로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연재되면서, 사람들은 굳이 힘들게 만화방을 찾거나 만화책을 구매해 가며 콘텐츠를 소비할 이유가 점차 없어졌다. 과거 애국심으로 한국 만화를 살리자고 할 땐 그렇게나 안 보던 독자들이 이제 너나없이 한국 만화를 보고 있다. 결국 우리는 콘텐츠의 국적이 아니라 재미와 가치를 보고 고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콘텐츠의 퀄리티가 중요하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CG 기술이 나날이 발달하면서 만화적 세계를 더 이상 만화라는 매체로만 구현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만화만의 장르적 희소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전혀  본다는 얘기는 아니다. 여전히 움직이는 2D 그림은 고유의 매력이 고 나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최근 '귀멸의 칼날' 재미있게 봤는데   사람이 있다면 추천한다.)


만화책이냐 소설이냐, 영화냐 애니메이션이냐, 이런 전통적인 매체 간 경계선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콘텐츠는 시대와 함께 세대와 함께 무한히 변화를 거듭하며 흘러갈 뿐이다. 우리는 그저 흐르는 콘텐츠에 몸을 담그며 마음껏 즐기면 된다.




<취미로운 생활> 시리즈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거진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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