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운 생활 : 펑크록 (2)
오늘은 정말 날것 그대로의 자유로움을 간직한 놀라운 인디 밴드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아마 이름도 못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관객들을 '낚아버리겠다'는 의미라는데, 어떤 기획사나 상업자본의 힘도 빌리지 않고 자체 결성한 '여성 펑크록 밴드'다. 한국 인디씬에서도 이런 조합은 매우 드문 케이스인 것 같다. 음악 앱에서 '피싱걸스'로 검색하면 2019년 정규 1집 <Fishing Queen>을 포함해 10여 개의 EP가 조회된다. 은근히 많은 곡을 창작하며 꾸준히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 글 <크라잉넛, 저항정신에 저항하기>에서 소개한 '크라잉넛(Crying Nut)'이 한국 펑크록의 시조새라면 '피싱걸스'는 자라나는 새싹이다. 크라잉넛 팬이었던 덕분에 이 숨은 보석 같은 밴드를 알게 되었다.
펑크록(Punk Rock) 1세대인 크라잉넛이 그랬듯이, 한국의 펑크록은 형식적 장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장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피싱걸스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펑크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다.
펑크란 현재의 규율에 저항하고 미래의 자유로움을 노래하는 음악이다.
그 미래도 시대가 변하면 과거가 된다. 새로운 세대는 늘 과거 세대와 기성 사회에 억압을 느끼고 저항한다.
'MZ세대'가 화두다. 사실 그 MZ세대에서 M의 첫머리에 간신히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MZ세대라는 단일한 가치관을 가진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유사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단일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다만, 시대가 변하고 물질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변화하는 가치관의 경향성(트렌드) 혹은 방향성은 추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향성이라는 의미에서 MZ세대의 세대정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피싱걸스'가 노래하는 것은 바로 MZ세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이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어떤 필터도 없이 날것 그대로 가사에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피싱걸스'의 매력이다.
'말 달리자'의 날것이 좋아 펑크록에 입문했듯이 이들의 날것에 매료되어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딱 세 곡만 만나보자.
사실 피싱걸스의 모든 곡을 소개하고 싶으나 고심 끝에 입문용으로 엄선했다.
응 니 얼굴?
제목부터 신선한 '응 니 얼굴'!
첫 소절은 이렇다.
오늘도 남 걱정에 열일하는 대한민국 안녕하세요?
내가 해봐서 다 아는데 무시하는 것 같아 언짢나요?
그러니까 "오늘도 남 걱정에 열일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격의 노래다.
뭐가 남 걱정이라는 걸까? 바로 기성세대의 멘트들이다.
"정신 좀 차리고 좋은 사람 만나 시집 장가 가야지"
"살을 좀 빼면 나을 텐데 자기 관리도 좀 하고 그래라"
"나 때는 말이야, 노오력"
"눈을 좀 낮추면 취업"
듣기 싫었던 멘트들을 가사에 그대로 옮겨두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이렇게 대꾸한다.
"남 걱정할 시간에 니 얼굴이나 걱정하지 그래"
마치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은 직설적인 가사도 당돌한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보는 내가 다 민망해. 평범하게 좀 다니지 그러니?" 라고 하면
"너나 그만 보지 그래?" 라고 응수하고
"내 동생 같아서 내 딸 같아서 하는 말이야" 라고 하면
"저기요, 집에 있는 진짜 우리 엄만 괜찮대요. 신경 끄고 저리로 좀 가줄래요?" 라고 응수하는 부분이 백미.
요즘 초등학생 희망 직업 1순위가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SNS를 하는 어린 아이들의 적나라한 심리를 솔직하고 다소 해학적으로 담은 노래.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함께 귀엽게 봐줄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노래인 것 같다.
다들 나보다 잘살아, 멋져, 행복해 보여.
질 수 없다! 오늘도 핫한 장소를 골라 신상 필터 걸고 찰칵!
찬양하라, 팔로워들이여!
백미는 친구와 엄마에 대한 귀여운 항변이 담겨 있는 가사인 것 같다.
이게 얼마나 센스있고 부지런해야 하는데
친군 그것도 모르고 맨날 "혹시 관종 아니세요?" 놀리기만 하고.
이게 얼마나 성실하고 트렌디해야 하는데
엄만 그것도 모르고 맨날 핸드폰만 만진다고 뭐라고나 하고.
한 번 들으면 '쌍둥이를 낳을 거야'라는 엄청난 가사에 후킹당하는 후킹송.
남진의 '님과 함께'가 '승민 씨와 함께'로 재해석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
- 남진, <님과 함께>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비교해 보자.
저 회색 빛 아스팔트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나의 님과 쌍둥이를 낳을 거야.
저 회색 빛 한강이 보이는 48평 아파트를
월세 아닌 전세 살며 쌍둥이를 낳을 거야.
-피싱걸스, <승민 씨와 함께>
대체 승민 씨가 누구냐? 사실 이 곡의 화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가사에서 나오듯이 "왠지 이름만 들어도 잘 생긴" 사람일 뿐이고, "비록 이름밖에 모르는 사이지만 결혼하게 될 거야"라는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결혼에 대한 판타지인데 왜 굳이 매수도 아닌 전세를 살면서 쌍둥이를 낳겠다는 걸까?
현재 한강이 보이는 48평 아파트의 전세가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력으로 매수는커녕 전세금을 모으기도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노래는 2017년에 나왔다. 그 뒤로 더욱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MZ세대에게 얼마나 절망적이고 충격적인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출산 시대에 '쌍둥이를 낳을 거야'라고 선포하는 가사는 위의 '월세 아닌 전세 살며'라는 가사와 충돌하면서 모순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똥꼬발랄, 비글비글, 펑크락퀸, 피싱걸스! 낚앤놀! 예이~예이"
피싱걸스의 소개 멘트다.
아직 미약하지만 언젠가 이 시대를 노래하는 발랄한 펑크락 퀸이 되길 기대하며 좀 더 많은 이들이 피싱걸스에게 낚이길 바라본다. 낚앤놀!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