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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Jan 05. 2023

잠자는 숲속의 대리님을 보내며(후기)

잠숲 완결 후기



 어둡고 추상적인 세계, 어쩐지 우리 집 같기도 하고 지하주차장이나 잃어버린 숲속 같기도 한 그곳에서 무언가 음습한 것이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피해 도망갑니다. 때로는 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숨기도 합니다. 그러다 제가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면 하늘을 날거나 칼과 마법을 이용해 맞서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어릴 적 종종 이런 판타지 같은 꿈을 꾸곤 했습니다. 심지어 어른이 된 지금도 아주 가끔 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제가 꿈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이야기가 <잠자는 숲속의 대리님>입니다.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이 이야기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혹시 이 동화 속 공주의 이름을 아시나요?

 정답은 오로라 공주입니다. 아마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동화 속 공주님 중에는 가장 인기 없는 공주님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녀의 저주에 걸려 이야기 내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가 왕자가 키스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라니, 도저히 인기가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죠.


 이 소설은 그 동화 속 이야기를 거꾸로 뒤집어 보았습니다. 먼저 이야기의 중심 무대를 비루한 현실이 아닌 화려한 꿈속 세계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 꿈속 세계에서 공주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정의하고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왕자를 리드하는 영웅이 됩니다. 마지막엔 잠이 든 왕자를 공주가 키스해 깨우는 것으로 결말도 반전시켰죠.


 이 이야기는 물론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잘 들리지 않는 어떤 절박한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는 언제라도 권력관계에 따라 상대적인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해자임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려 합니다. 권력관계 하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숨겨지거나 은폐되기 십상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침묵의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어두운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늘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늑대의 탈을 쓴 드래곤, 거울의 방패와 불사조의 활, 잃어버린 동굴과 안개의 계곡, 시간의 오두막과 부활의 샘물, 그리고 태초의 바위와 최후의 불꽃까지. 선 대리와 함께 이야기 속 언어를 창조하는 과정이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과도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요.


 또 언젠가 다음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읽고 공감해주신 독자님들을 비롯해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 소설을 쓰는 내내 마음속 OST가 되어준 10CM의 ‘그라데이션’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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