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운 생활 : 사진
사진은 찰나의 미학이다.
처음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촬영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말이다.
움직이는 영상보다도 한 장의 사진으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스냅샷을 찍는 것도 좋지만, 굳이 번거롭게 렌즈 교환식 카메라나 삼각대, 스트로보를 챙겨 다니며 찍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가족들은 대체 SNS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도 올리지 않을 사진을 왜 매번 그렇게 열심히 찍느냐 힐난하기도 하지만 늘 사진 촬영에 진심인 편이다. (다행히 몇 장의 사진들은 이 브런치에서 드디어 용도를 찾았다!)
여전히 사진을 촬영할 때면 어떤 설렘이 있다.
액정이나 뷰파인더(viewfinder)를 통해 프레임 속에 어떤 피사체를 담고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좋다.
초등학교 시절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 그때는 아직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 시대였다. 오직 뷰파인더 너머로 어떤 것을 찍을지 결정해야 했고,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하는 필름 한 통당 촬영 가능한 장수가 제한되어 있어 쉽게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좀 더 고민해서 찍어야만 했고 결과물도 24장을 모두 찍은 후 사진관에 인화를 맡겨서 나중에 찾으러 가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떤 순간을 잡는다는 것, 특정한 시공간을 시각적으로 고정한다는 것. 필름 카메라는 그 찰나의 미학이라는 의미에 더 충실했던 촬영이었다.
여전히 디지털 셔터보다도 기계식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그 소리를 좋아한다.
내가 설정한 셔터스피드의 시간만큼 셔터가 열려 있고, 60분의 1초보다 짧은 그 순간 동안 주변의 공간에 존재하던 빛이 카메라에 들어와 형체를 기록한다. 셔터가 닫힌 이후의 세상은 기록되지 않는다.
대체 셔터를 누르는 행위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우리는 4차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다.
점(픽셀)이 모여 선을 만든 1차원, 선이 모여 면을 만든 2차원, 면이 모여 입체를 만든 3차원, 그리고 3차원의 공간이 시간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하는 4차원의 세계.
어제 흐른 강물과 오늘 흐른 강물이 다르고, 우리는 단 한순간도 동일한 실체였던 적이 없다. 나도 그렇고 세계도 그렇다.
3차원의 사물을 2차원으로 그려도 단면밖에 기록하지 못하는데, 무려 3차원의 움직임인 '시간'을 포함한 4차원을 감히 2차원으로 두 차수나 낮춰서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운 미분과 적분, 그중 미분은 바로 이렇게 차수를 내리는 작업이다. 공간을 잘라 면으로 만들고, 면을 잘라 선으로 만드는 것이 미분이다.
미분은 복잡한 차원의 함수를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미분이란 결국 세계에서 복잡한 것들을 걷어내고 단순한 차원으로 변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통찰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사진도 그렇다.
왜 낮은 조리개 수치와 아웃포커싱에 열광하겠는가.
온전히 하나의 피사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그 순간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나의 인생에서도,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나의 시선이 온전히 포착한 것.
그냥 사진이 가진 그 철학적 가치 자체만으로도, 잘 찍고 못 찍고에 상관없이 찍는 순간 자체가 그저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촬영의 결과물보다도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스마트폰 같은 간편함보다 찍는 행위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손맛이 있는 카메라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잘 찍는 사람 같지만. 미안하다. 잘 찍지는 못해서(흑). 하지만 행복은 실력순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늘 어디라도 카메라를 챙겨 떠날 것이다.
일상을 덕질하듯 살아가며 매일 새로운 것에 꽂히는 '취미 작가'가 들려주는 슬기롭고 풍요로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