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질문육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혜로운보라 Mar 03. 2020

엄마는 왜 아이 때문에 화가 날까?

정말 아이 때문일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내가 신랑에게 투정을 부릴 때 하곤 하는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때론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나를 괴롭히려고 태어났나?’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나를 괴롭히려고 태어났다’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마치 진실인 양.... 나는 왜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걸까? 정말 아이 때문일까?    

육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좋은 엄마는 ‘~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으로 나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고정관념들이란 이런 것이다.    

아기 울음에 바로 반응하기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 걸기

아기 두고 외출하지 않기

낮잠 자지 않기

술 마시지 않기

TV 보여주지 않기

짠 음식 먹이지 않기

인스턴트식품 먹이지 않기

엄마표 놀이해주기

좋은 경험 만들어주기

특히, 화내지 않기    

대부분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내지 않기는 도무지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아기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는 여지없이 화가 났다. 그 화를 내면 안 된다고, 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아냈다. 꾹꾹 참아낸 화는 어디에 가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참아낸 화는 결국, 내 몸이 아프고 체력이 바닥난 시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에게 후회할 말들을 쏟아냈다. 미친년처럼 말이다.(아마도 육아맘이라면 미친년같이 화를 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라 믿는다.)

“대체 왜 자꾸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거야? 엄마도 힘들다고, 진짜 이러면 네 엄마 안 할 거야. 다른 엄마 찾아봐, 왜 자꾸 엄마를 화나게 하는 거야? 이러면 엄마 하기 싫다고!!” 눈빛과 표정, 몸짓으로 아이를 밀어낸다.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why를 쓰면서 뒤늦게 찾아낸 것이 있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는 사실이다. “사랑해.” 보다 “엄마 힘들어.”를 더 많이 듣고 자랐기에 그 말들이 몸에 배어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슬픈 말들을 내가 사랑하는 아기에게 했다니 참 못났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 화를 내면 나쁜 엄마야. 엄마처럼은 안 살고 싶어.’ 

아이를 재우면 여지없이 죄책감이 밀려왔다.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배려 깊은 사랑은 대체 어디에서 생긴단 말인가?! 내가 못 배워서 그랬다면 나는 책을 읽어야 했다. 28살, 엄마 나이 1살 나는 책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육아서를 읽으면 그때뿐, 여지없이 화가 났다. 내가 언제 화가 나는지도 모르고 화를 내고, 자책하고, 아이랑 함께 우는 날도, 혼자 우는 날도 있었다.    

큰 아이가 6살이 되자 유치원에 입학을 했다. 6살, 3살 두 아이를 키우느라 온 에너지를 쓰고 있을 때 유치원에서 부모교육이 있었다. 부모교육을 들으면서 본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미경 강사님의 책에서 독서모임을 가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대전에도 독서모임이 있을까?’ 검색을 했더니 가까운 곳이었다. 버스를 한 번만 타면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카페 허밍’이었다. 사장님은 독서모임에서 작가를 초대한다면서 카페 허밍 저자 특강이 열린다는 것이다. 기적처럼 나는 ‘why노트’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정찬근 강사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매일 why 5개를 던지면 한계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말이었다.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말에 질문을 매일 쓰고 싶어 졌다. 매일 why를 5개씩 적기를 시작했다. 새털같이 매일 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하셨다. 강사님은 학습자의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라고 하시면서 why 5개를 보내면 피드백을 주셨다. 아줌마, 육아맘이 되고 타인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답장을 보내주는 놀라운 경험 덕분에 빼먹지 않고 매일 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언제 화가 나고, 그 화가 아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내 문제라는 것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화의 패턴을 찾아냈다. 화를 언제 낸다는 것을 알게 되자 미친년 같이 화를 내는 상황들을 피할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말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는 지금 유치원 버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마음이 급해. 서두르자. 이제 5분 뒤에 나갈 거야. 시계 봐봐 긴 바늘이 12에 가면 나갈 거야.” 매일 평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화를 언제 내는지 알아채기 시작하자 화의 게이지는 줄어들었다.     

매일 던진 why를 통해서 화가 난 이유가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다만 엄마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엄마 울어도 안전해.’ 울면 안 된다고, 바보나 우는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에게 눈물을 흘려도 된다고, 아이는 울어댄 것이다. ‘엄마 떼써도 괜찮아,’ 엄마는 떼를 쓰는 아이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말이다. ‘엄마 그냥 사랑받아도 돼.’ 엄마도 좋은 엄마, 착한 엄마가 아니어도 사랑받아도 된다는 것을 아이가 알려주려고!     

모든 화는 내 안에 있는 상처 받은 내면 아이로 인한 것이었다. 아이 때문이 아니고, ‘내 안의 또 다른 나’ 때문이었다. 내가 한 번도 들여다봐주지 않으니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 때문에’가 ‘덕분에’로 바뀌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고, 아이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고, 아이 때문에 꼼짝도 못 한다. 

대신에 아이 덕분에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이 덕분에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고, 아이 덕분에 아이와의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확실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내 화는 천천히 줄어들었다. 물론 지금도 화나는 상황을 직면하곤 한다. 하지만 why를 쓰기 전, 미친년처럼 변신하는 일은 없어졌다. 아이들은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성장시켜 주러 온 선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