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다가 한 구절에서 머물렀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p.380
동생이 얼마 전 내가 써준 카드를 사진 찍어서 보내줬다. 내가 고등학생 때 중학생인 동생에게 쓴 글이었다.
엄마를 기쁘게 하자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 아이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짧은 글에서 내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할 때 기쁜지는
생각도 못하는 내가 있다.
엄마는 항상 억울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시댁 식구가 뺐어가서.
엄마의 억울함은 어느새 내 것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괴로웠던 것은 엄마를 보고 자란 내 안에도 엄마의 억울함이 그대로 있어서, 아이들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사랑하고 싶어서,
아이와 함께 경험하고 싶어서,
나랑 남편이 사랑으로 낳았는데
어느새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면 무표정 엄마가 되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엄마 화났어?”
“아니. 화 안 났어.”
“그러면 나보고 한 번 웃어봐.”
아이는 알았고,
내 표정을 본 적 없는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엄마 마음. 그녀가 몇 살 때 알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는 아니었다.
자기를 위한 밤시간, 글을 써 내려가는 그녀만의 공간에서 ‘나’를 지켰으리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초보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 ‘사랑’을 배웠다.
내가 원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이다.
어릴 적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작은 나를 위해,
나를 다시 기르는 시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억울함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나는 이미 아이들을 키우면서 모든 사랑을 받았다.
내가 아이를 사랑한 줄 알았더니, 아이가 나를 더 많이 사랑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아이는 ‘미안해‘라는 말을 쿨하게 받아 주었다.
내가 어떤 엄마였어도 아이는 나를 사랑했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이젠 아이가 세상으로 나서기를 응원할 뿐이다.
엄마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기를.
사랑하는 내 딸아,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너 자신이 되기를....
엄마가 기도할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