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어느 여자에 대한 이야기

눈내리는 정거장

by 사라영


내가 아는 그 여자를

나는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여자에게 관심이 좀 있을 뿐입니다.

평소에는 거의 생각나지 않다가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귀가하는 길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할 때

문득 생각이 나는데 그 생각이 떠오르게 된 경로를 나는 유추할 수 없습니다.



그 여자는 하는 일에 비해서는 고고한 취향을 가졌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가끔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다닙니다.

조금만 깊이 얘기를 해보아도, 그 여자가 나름 똑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정거장에 서있는 우리가,

누가 더 나은 사람이라 말하는 건 큰 의미는 없지만

나는 그 여자가 나보다 좋은 곳에 가기 위해 멈춰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는 것이 많아 보여도

요즘 세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나 프로그램은 잘 모르는 그 여자와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나와 너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그 나른한 눈빛에 나는 마음을 너무 열어보이기도 하고,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후회를 합니다.

내가 그 여자에 대해 아는 것에 비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고야 만다는...



우리가 멈춰 있는 눈 내린 정거장은,

단순히 함께 일하고 있는 직장에 대한 비유일 뿐이지만

나는 그 여자와 함께 있는 순간순간에

낯선 곳을 여행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낍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 향하는 기차를 탈 것인지,

그 여자는 자세히 말해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자가 어디론가는 떠날 것이고,

우리가 나눈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기다리는 기차가 당도하는 순간, 무참히 뒤로해버릴 것을 압니다.



내가 아는 그 여자를

나는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여자를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기는 했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거나,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귀가하다가도 밀려드는 그 우울함은

그 여자가 뒤로해버린 순간들이 남긴 유산입니다.

내가 멈춰있는 눈 내린 정거장은 아름답고 조용하지만

나는 언젠가 떠나야 할 것을 알고

그래서 그 여자를 조금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Photo by James Lew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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