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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영 Aug 05. 2021

<눈의 여왕> 파란 눈의 아이를 찾아서

<눈의 여왕> 비하인드 스토리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자 해가 지지 않는 곳, 그곳에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눈의 왕국인 핀마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 후, 그녀는 왕국의 유일한 군주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눈의 여왕이라 불렀다. 길고 긴 겨울, 눈의 여왕은 엄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이들의 꿈에 나타나곤 했다. 어린아이들은 그녀가 다스리는 왕국을 환상의 세계로 생각하며, 축제 기간에는 그녀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부모들은 부드러운 곡조로 이런 자장가를 만들어 아이들의 침대 맡에서 불러주곤 하였다. 


흑야에는 나가지 말아라 집에서 난 발자국 볼 수 없으니

백야에는 나가지 말아라 온통 하얀 세상에 눈이 멀 테니

만약 나가 길을 잃어도 눈의 여왕을 부르면

그녀가 보낸 눈보라를 따라 천천히 돌아오너라


 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사람들은 꽃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즐거워하며 겨울과 눈의 여왕을 잊어버렸다. 눈이 녹아 강물로 흐르고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들 때, 그때는 여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긴 겨울이 오고 사람들이 눈의 여왕을 찾을 때까지.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남자아이가 생기게 되었다. 그 아이의 눈은 별빛처럼 반짝이고 볼은 발그레하며 피부는 유리처럼 맑았다. 여왕이 이성의 거울에 앉아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아이는 그 옆에서 낱말 맞추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니면 유리 연못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작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눈송이를 따라 그리며 이유 없는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마치 옥구슬이 얼음 위를 구르는 듯한 소리였다. 넓은 성의 수많은 방들은 곳곳에서 모인 손님들이 들어차 있었고, 눈의 왕국은 춥고 눈으로 가득했지만 핀마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할 그런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유난히도 추운 날, 하루 종일 싸락눈이 내리는 음울한 날이었다. 씩씩한 남자아이는 눈을 뭉쳐서 놀기 위해 여왕이 이성의 거울에 앉아있는 틈에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왕이 아이를 찾으러 나갔을 때 아이의 작은 발자국은 이미 눈으로 다 덮여 있었다. 여왕이 눈물을 흘리자, 그것은 곧바로 얼음조각이 되어 눈 위로 떨어졌다. 여왕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싸락눈을 몰고 오는 바람에게 물었다. 

"바람아, 나의 아이를 보았니? 네가 몰고 온 눈보라를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을 거야. 아주 작고 눈이 반짝이는 아이란다."

"눈의 여왕, 나는 작은 아이를 봤어. 한데 그 아이는 하얀 북극여우를 따라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여우는 눈처럼 아주 하얀색이라 알아보기 어려울 거야."

"그 아이의 눈은 푸르고 반짝이니, 그 빛을 따라가면 돼."

눈의 여왕은 곧장 성으로 돌아와, 말과 마차와 따뜻한 신발을 신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 


 성에서 나온 지 한참이 되어 전나무숲을 지나가고 있던 눈의 여왕은 갈까마귀 두 마리를 보았다. 

"검은 새야, 작고 파란 눈의 아이를 보았니? 하얀 여우를 따라 성 밖으로 간지 한참이 되었어."

덩치가 큰 까마귀가 말했다.

"아, 작은 아이를 보았지. 그런데 그 여자아이는 빨간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구두코에 달린 반짝이는 것이 무척 예쁘더라고. 나는 그 반짝이는 것을 달라고 아이에게 말했지. 그 아이는 춤을 추면서 멀리 도망가버렸다."

"아니, 나의 아이는 파란 눈의 남자 아이야. 그런 아이는 보지 못했니?"

덩치가 작은 까마귀가 말했다.

"아아, 우리는 작은 아이를 보았지. 남자아이였어. 목소리가 아주 좋고 노래를 정말 잘 부르더군! 아, 눈도 사파이어 같았어. 그 반짝거리는 것이 무척 예쁘더라고. 나는 그 반짝이는 것을 달라고 아이에게 말했지. 그 아이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며 저 멀리 뛰어가버렸어."

까마귀는 어느 방향인지는 얘기하지 않은 채 낄낄거리고 있었다. 눈의 여왕이 간절하게 말했다.

"방향만 알려준다면, 내가 가진 것 중 원하는 것을 주겠다."

"그렇다면... 좋아! 우리는 항상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네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것을 줘.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어줄 거야."

눈의 여왕은 거래를 했고, 그 순간 멀리 성에 있던 이성의 거울 아래 호수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여왕은 까마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마차를 돌렸다. 끝없는 숲과 하얀 눈만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숲의 끝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때, 숲에서 가장 큰 전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의 여왕, 까마귀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작은 아이를 찾고 있다지?"

"그래. 나의 아이야. 그 아이를 본 적 있어?"

"아,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숲의 남쪽 끝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이는 숲을 지나 저 멀리 남쪽 나라로 향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왜 그쪽으로 가고 있는 걸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 먼 곳에 아이들만이 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있다고 하더군. 북극여우를 따라 아마 그곳으로 간 것 같은데 말이야..."

"거기가 어딘지 알려준다면 내가 가진 것 중 원하는 것을 줄게."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지! 네 가슴에 있는 그 따뜻한 것을 줘.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겨울밤, 자신의 아이를 보살펴 달라고 너에게 기도를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눈의 여왕은 거래를 했고, 성에 가득 차 있던 손님들은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며 하나 둘 성을 떠나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그 큰 성의 많은 방들은 모두 텅텅 비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여왕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우리가 알던 그 따뜻한 마음은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축제에서 그녀를 기리지 않았고, 아이들은 눈의 여왕을 겨울밤의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무가 알려준 위치는 핀마크의 국경을 한참이나 벗어난 곳이었다. 사흘 밤낮을 달리던 여왕의 말은 쓰러지고 마차도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이었다. 드디어 북극여우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우야. 나는 파란 눈의 작은 아이를 찾고 있어. 너를 따라서 성 밖으로 나갔다고 하던데. 왜 그 아이를 데리고 간 거니?"

"여왕님. 저는 그 아이를 데리고 간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했을 뿐입니다."

"어디로,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아이는 이미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없고, 한번 가면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결국에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여왕님은 진정으로 그곳을 가길 원하시나요?"

"나는 나의 아이를 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나의 아이를 꼭 만나게 해 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통행료가 필요합니다. 여왕님께 남은 것은 사랑뿐입니다. 그것은 저에게 주신다면 제가 잠깐 들를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눈의 여왕은 거래를 했고, 그러자 그녀에게서 모든 열정과 사랑의 마음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여왕은 마음 깊은 곳까지 차갑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우가 안내해준 동굴을 따라 들어갔을 때, 그곳은 밝은 빛이 내리쬐고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마치 세상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둔 곳 같았다. 그곳에서 눈의 여왕은 유난히 푸른빛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결국 파란 눈의 작은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더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성, 따뜻한 마음, 사랑이 모두 사라진 눈의 여왕에게는 그저 작은 아이일 뿐이었다. 여왕은 아이에게 세 번의 입맞춤을 한 후 놓아주었고, 그 옥구슬 소리로 웃으며 아이는 저 멀리 떠나갔다. 


 눈의 여왕이 그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마차도 말도 그리고 발을 감싸던 따뜻한 신발도. 아마 지나가는 사람이 그녀를 보았을 때 눈의 여왕이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하늘에서 호브고블린의 장난이 시작되고 있었던 때다. 수많은 유리조각이 부서질 때, 유난히 커다란 조각이 그녀의 호흡을 통해 심장에 박히게 되었다. 하지만 눈의 여왕인 그녀에게 그 조각을 빼낼 힘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녀는 단지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었고, 누구보다도 차가운 사람인채로 자신의 얼음 성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여왕은 작은 아이와 꼭 비슷한 남자아이를 성으로 데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그 아이의 친구가 남자아이를 찾으러 왔지만 눈의 여왕이 아이들에게 세 번의 입맞춤을 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무도 남자아이를 찾지 못한 채 아직도 성에 갇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이의 친구가 찾아와 여왕의 마법을 풀고 함께 성을 떠났다고 하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떠난 후 그들이 맞춘 '영원 eternity'라는 단어를 보며 여왕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을 타고 몸속의 유리조각들이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얼음이 된 눈물과 유리조각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반짝거리면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 끝 -







Photo by Ricardo Gomez Ang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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