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마무리 하며
저녁을 먹고 식탁을 치우다가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하늘색 스키니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 그 위에 무심하게 걸친 노란색 후디. 스타일리시 하지도, 그렇다고 후줄근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수수한 옷차림의 한 30대 여성이 서 있었다.
왜 하필 그날 문에 비친 내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을까?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나의 모습'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는 십 대 때부터 보아오던 거울 속 내 모습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춘기가 되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 얼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리저리 꾸며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었다. 여드름 피부 탈출해 보겠다고 없는 지갑을 털어 비싼 스킨케어 제품을 사들였고 뷰티 유투버들의 영상들을 틈만 나면 보았다.
자존감이 무척이도 낮았던 난 거울을 볼 때마다 비취진 모습이 항상 못마땅했다. 한창 거울 앞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코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였다.
십 년 이십 년이 흐른 지금의 나란 사람의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30대로 접어들면서 받은 선물이랄까. 이런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 이런 부질없는 걱정 따윈 하지 않는다. 귀찮으면 쌩얼로 런던 시내 중심을 돌아다니고, 옷은 내가 편하고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소말리아 전통 의상인 바티를 입고 동네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카프탄처럼 느슨한 모양의 순면 드레스라 세상 편한 라운지웨어다!) 집에선 일주일 내내 같은 티셔츠와 추리닝을 걸치고 재택근무를 한다. 무엇을 입고 어떻게 꾸미냐는 철저하게 내 기분에 맞춰 선택을 하지 남이 어떻게 보냐에는 일도 관심도 없다. 매일 보는 내 얼굴이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하도 관심이 없으니, 얼굴에 뾰루지가 났었는지, 화색은 어떤지 얼굴 디테일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날 밤 유리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예전의 나보다 훨씬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그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제 곧 37살을 앞두고 있다. 36살은 그냥 30대 중반으로 다가왔는데, 37은 '중'이 아닌 '후'로 넘어가는 것 같아 부담스러운 숫자다. 20대 때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것과 비해 30대의 나이듬은 더욱더 무겁다.
36에서 37로, 걷고 싶지 않은 묵직한 발걸음을 떼기 앞서 거울 속에 비친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나이란 숫자가 바뀌는 건 정말 싫지만 그 수가 올라갈수록 마음은 더 편안해졌으니, 그 정도면 괜찮은 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