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살고 싶었는데

by Windsbird

유난히 바쁜 주말이다. 금요일엔 조카 생일파티, 주일엔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만찬, 월요일엔 짝꿍네 가족과 점심이 잡혀있다.


처음 우리 집에서 여는 디너파티라 메뉴에 조금 욕심을 부렸더니 살 재료들이 넘쳐난다. 조카 줄 레몬 치즈케이크도 구워야 하고, 짝꿍 부모님 드릴 쿠키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주에 마트에만 네다섯 번을 들락날락거렸는데 아직도 한 번 더 가야 한다.


지난 한 달간 가볍게 먹고 식비를 줄이며 냉장고와 찬장을 조금씩 비우고 있었는데 금세 부엌은 가득 차버렸다. 케이크와 여러 종류의 쿠키를 구워야 해 베이킹 도구도 더 구매했다. 베이킹시트와 케이크틴, 대형 스페츄라, 그리고 케이크를 운반해갈 받침대와 캐리어 상자까지.


만찬이 끝나고 남은 식재료야 조금씩 먹어 없애버리면 되지만 새로 구매한 베이킹 도구들은 사실 사는 게 많이 망설여졌다. 일 년에 몇 번 굽지 않을 케이크 때문에 이렇게 부피가 큰 물건들을 집에 들이는 게 싫었다. 그냥 마트에서 파는 케이크로 대신할까? 바구니에 들어있던 베이킹 도구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케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조카 줄 케이크인데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이번엔 케이크를 내려놓고 다시 베이킹 도구들을 집어든다. 이렇게 왔다 갔다 집었다 놨다 하다 보니 마트에서만 한 시간이 훅 훌러가 있었다.


미니멀라이프란 거, 이럴 땐 참 고민된다.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을 연습하면서 덜어내는 삶이란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누군가에게 더 해주고 싶은 '욕심'과 지향하고 싶은 미니멀라이프가 상충할 땐 무엇을 택해야 할까?


답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물건들은 이미 사들였고 가족들은 덕분에 거창한 저녁을 먹게 될 테니, 그날 먹을 메뉴를 보면서 죄책감을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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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미니멀라이프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