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수많은 물건들
갑자기 네덜란드와 덴마크로 2주 해외 출장이 잡혔다.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긴다고 했는데도 짐이 한가득이다. 커다란 대형 슈트케이스에 절반은 옷가지, 4분의 1은 화장품과 세면도구 등. 여행가방에 바퀴가 달려있는데도 너무 무거워 끄는 것도 힘겹다.
난 짐을 싸면 항상 넘쳐나게 싸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뭐가 들었는데 이렇게 무겁냐는 소리를 거의 매번 듣는다. 여행 짐뿐만 아니라 평상시 들고 다니는 핸드백도 어깨가 아플 정도로 무겁다. 들고 다니는 물건이 워낙 많다 보니 가방을 바꿔 드는 날엔 물건을 꺼내고 정리해서 새로운 가방에 넣는 것도 일이다.
내 가방은 왜 이리 항상 무거울까? 수년을 나 자신에게 던져온 질문에, 짝꿍과 대화하다가 그 답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짝꿍의 어머닌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물건을 모으신다. 짝꿍이 십 대 때 샀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조각상에서부터 곰돌이 인형, 골동품 등등, 온갖 실용성 없는 물건들이 벽과 가구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아니, '도배'를 하고 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널브러진 물건들 때문에 6인용 식탁에 두 명이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을 정도다. 몇 달 전 부모님 댁을 방문했는데 오래된 변기대 속에까지 식물을 심어둔 모습을 보고 짝꿍이 엄청 화를 냈던 적도 있었다. 어머닌 정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사소하고 정말 쓸모없는 물건도 버리는 걸 힘들어하신다고 했다.
나도 물건에서 안정감을 찾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면상으론 필요하다고 느끼는 물건이지만, 한 꺼풀 들쳐보면 그 물건이 없을 때 느끼는 아쉬움을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같은 맥락에서, 난 먹을 기회가 생기는 데로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먹는 버릇이 있는데, 그것 또한 나중에 배고플까 봐 미리 먹어두는 심리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힘들어 본 적도, 먹을 게 없어서 굶은 적도 없는데 난 왜 뭐든 걸 쟁여두려고 하는 걸까? 소지한 물건이 너무 많아 정리하는 것도 힘들고 짜증만 불러일으키는데도 말이다.
불안감이란 유령과 같아서 보이진 않지만 나의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 내 핸드백 사이즈에서 어깨 건강 상태까지 불안감이란 환영으로부터 시작됐다. 과감하게 큰 마음먹고 물건들을 버려보고 싶지만 아직까진 그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 내 불안감의 뿌리가 보이는 날이 오면 내 가방의 무게도 가벼워지겠지. 그날이 오면 인생의 무게도 가벼워지려나.
출장 가는 길, 유로스타 안에서 버겁도록 무거운 여행짐을 옆에 두고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