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indsbird
Oct 06. 2023
한국인이라면 라면에 대한 추억은 적어도 한두 개는 꼭 가지고 있을 것이다.
3분이면 완성되는 간단함과 얼큰하고 개운한 맛은 한국인 정서에 제격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영국에서 보낸 나 또한 라면에 대한 추억은 각별하다.
아주 어렸을 땐 매운맛을 희석 시려고 친구들과 함께 라면에 우유를 타 먹었다. 지금은 히끄무리한 라면 국물 생각만 해도 속이 니글거리는데, 그땐 우유가 주는 크리미한 맛이 좋았다.
10대.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친구 엄마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주셨다. 친구 것 내 것, 이렇게 두 사발을 가져다주시면서 친구에게 '니가 꼭 이거 먹어'라고 당부를 하셨다. 보니 친구 앞에 놓인 사발에만 라면 수프 건더기가 다 모여있었고 내 그릇엔 국물에 면만 허전하게 들어있었다.
까짓 라면 건더기가 뭐라고. 다 큰 어른이 보인 치사한 편애에 더 이상 그 친구랑 놀고 싶지 않았다.
그 아줌만, 지금 생각해도 흥칫뽕이다.
20대. 대학교 졸업하고 첫 취업을 방송사에 했다. 워낙 유럽 출장을 자주 다녔는데 팀이 먹을 비상식품인 컵라면을 챙기는 건 막내인 내 몫이었다. 오슬로 출장 갔더니 한식당은커녕 그 흔한 중•일식당도 없어 며칠을 샌드위치와 서양식으로 때웠다. 3일 정도 지나자 우린 한국맛이 그리워 미쳐버릴 것 같았고 결국 호텔방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끓여 허겁지겁 먹어댔다. 오슬로란 대도시에 즐비한 좋은 레스토랑 다 놔두고 호텔방에서 저녁을 먹은 우리 모습이 너무 웃겨 낄낄대던 13년 전의 기억이 참 정겹다.
30대. 다이어트한답시고 일부러 라면과는 이별했다. 자주 먹지 못하니 라면은 이제 내게 특별식이 돼버렸다. 가끔 아주 열받는 일이 있는 날에 찾는 음식은 역시나 라면이다. 그냥 라면은 성에 안 차 고추도 몇 개 더 썰어 넣고 소시지와 버섯도 송송 썰어 넣는다. 김치가 없으면 아랍 슈퍼에서 사둔 고추 피클을 곁들인다. 그렇게 먹고 나면 마음도 조금 풀린다.
40대, 50대의 라면은 내게 어떻게 다가올까.
라면. 니가 바로 내 인생의 동반자였구나.
#글루틴 #팀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