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경매장, 내셔널 오페라 센터, 줄리아드 학교 피아노 공연
가로등 빛 비추는 가을밤은 깊어가고 달님은 어디로 숨은 거니, 요즘 안 보여. 멀리 가을 여행 갔나. 풀벌레 소리도 안 들려. 이상해. 엊그제 마법의 성 맨해튼 가먼트 디스트릭트 아트 축제 오픈 스튜디오 보러 갔다 가져온 캔 맥주 하나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날 와인과 맥주와 치즈와 포도 등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 와인과 일본 술 사케까지 마셔 캔맥주는 집에 가져와 냉장고에 두었지. 타임 스퀘어 근처 그렇게 많은 아트 스튜디오가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
토요일 오전 서둘러 즉석 메모를 마치고 아들과 함께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지. 백만 불 가을 햇살을 맞으며 가을 향기를 느끼며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아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걸었다. 김치, 쌀, 감자, 양파, 고등어, 동태, 삼겹살, 파, 버터링 쿠키와 에이스 비스킷을 구입했는데 한바탕 소동을 피웠지. 계산서 보니 양파값이 엄청 비싸 놀라 직원에게 왜 이리 비싸냐 물으니 유기농 양파라고 세상에, 내 형편에 유기농 양파 먹을 수 있니. 유기농 양파 대신 평소 먹는 양파로 바꿨다. 정말 토요일 아침부터 대소동이었지. 다시는 토요일 아침에 장 보러 안 갈 거다. 그렇게 손님이 많은 줄 몰랐지. 대개 밤늦은 시각 장을 보는 편인데 요즘 계속 밤늦게 집에 오고 피곤해 바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 다른 거 몰라도 김치와 쌀과 감자가 없으니 당장 달려갔지. 그런데 슬프게 장을 보고 와도 먹을 게 없어.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삼겹살 1팩 제외)도 비싼 편이라 구입을 안 하고 집에 돌아와 버렸어. 한인 택시를 불러 타고 오는 동안 기사에게 가을 여행 다녀왔냐고 물었다.
-여행 좋죠? 여행도 가고 살아야 하는데 여행 가기 어렵네요.
-그래요. 언제 뉴욕에 오셨어요?
-20년 전에 왔어요.
더 이상 묻지는 않고 집에 도착했다. 얼른 짐을 옮기고 식사 준비를 하고 식사를 하고 맨해튼에 갔다. 토요일 오후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곡 감상하려 했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어. 아, 슬퍼. 가을에 듣는 라흐마니노프 곡은 더 아름다운 거 같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달리는 동안 생각에 잠겼지. 어디로 갈까, 하면서. 오후 4시는 정해진 스케줄이 있고 그 사이 약간 여유가 있어서. 고민하다 부자들 잔치하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어. 토요일 오후 방문객이 많을 거라 짐작했는데 정말 조용해. 휠체어에 앉아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눈 방문객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시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라커 펠러 센터 지하철역에 내리니 블랙 앤 화이트 부츠가 보여 문득 메트 뮤지엄 인상파 전시실에서 본 고흐 구두가 생각이 나. 오래되고 낡아빠진 구두를 캔버스에 담은 고흐. 그가 저세상으로 간 지 100년이 지난 후 비로소 세상 사람이 인정해 준 화가 고흐. 아이다호 감자를 구입하면 늘 고흐를 생각하곤 해.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게 아이다호 감자 아닌지. 한 봉지에 약 2.5불 정도. 세상에 있는 물건 전부가 아이다호 감자 가격이라면 다 구입할 텐데. 며칠 전 플라자 호텔 부근에서 본 빨간색 페라리 스포츠카를 얼른 사야지. 플라자 호텔도 2.5불이라면 구입해야지. 링컨 센터도 구입하고. 잠시 상상을 해 본거지. 2.5불을 주고 어찌 세계적인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 있겠니.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도 가끔 생각이 나지. 정말 어렵고 힘든 환경에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갔으니 오늘날 위대한 화가로 명성 높으나 왜 당시 사람들은 고흐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모마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도 문득 떠올라.
암튼 부츠 보고 고흐가 생각났는데 크리스티 경매장 가니 고흐 그림이 걸려 있어. 난 고흐가 그린 줄 짐작도 못하겠고. 모네 작품도 다시 보고 역시 다시 봐도 100여 년 그린 작품이라 믿기는 어려워. 툴루즈 로트레크 작품도 보고. 오래전 모 마에서 열렸던 로트레크 전시회는 정말 좋았지. 그 전시회만큼은 아니야. 지난번 유대인 박물관에서 본 Florine Stettheimer 전시회에서 본 작품이 경매장에 나왔어.
그녀 작품도 사후 명성이 높아갔다고 하고. 그녀가 그린 마르셀 뒤샹이 나온 작품도 다시 보고. 지금 모 마에서 특별전이 열리는 루이스 부르주아가 오선지 위에 그린 빨간색 손도 보고. 이집트와 로마 작품도 보고 프랑크 스텔라, 앤디 워홀 작품도 다시 보고 전시회를 보고 크리스티 카페에서 바리스타가 만들어 준 라테 커피도 마시며 휴식을 했다. 멋진 외모의 바리스타는 내게 한잔 더 마실 거냐 물어. 토요일 손님이 별로 없어 정말 조용해 좋았지. 분명 메트 뮤지엄에는 방문객이 아주 많았을 텐데.
크리스티 경매장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근처에서 거리 축제를 열고 있어. 세계 부자들이 모여 사는 맨해튼에서 서민들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축제가 바로 거리 축제. 핫도그, 소시지, 주스 등 먹을 것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지. 겨울이 다가오니 스카프와 모자도 팔더라. 링컨 스퀘어 부근 거리에서 그림 파는 젊은 뉴요커도 왔더라. 같은 사진 작품 거리에서 팔아. 센트럴파크 사진도 보이고 바닷가 사진도 보이고. 사랑하는 롱아일랜드 파이어 아일랜드가 떠올라.
다시 지하철역으로 가다 뜻하지 않게 내 발걸음은 타임스퀘어로 가지 뭐니. 관광객 많은 타임 스퀘어 걷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그곳으로 가. 라커 펠러 센터 탑 오브 더 락에서 본 사진 조각이 자동차에 보여. 그 사진을 보고 이상해 했는데 알고 보니 라커 펠러 센터가 대공황 시절 지어진 빌딩이고 당시 일자리가 정말 없었다고 해. 빌딩 지으니 일꾼이 많이 필요했겠지. 타임 스퀘어 경찰서 바로 옆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데 하필 문이 닫혀 다른 지하철역 통로를 찾았지.
1호선을 타고 달려 내린 곳은 오페라 공연을 하는 곳. 매디슨 스퀘어 가든 부근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 The National Opera America Center에 처음으로 찾아갔다. 토요일 오후 4시 오페라 공연 보기 위해. 난 4시 즈음 도착했는데 이미 홀은 만 원. 완전 컨템퍼러리 오페라 곡 부르고 플루트와 피아노와 호른 소리도 정말 아름답고. 오늘도 새로운 문 하나 열었지. 오페라 곡도 아름다워 놀랐지만 더 멋진 풍경은 내 옆 노부부. 지팡이를 들고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페라를 정답게 보셔. 할머니 몸매는 평범한 스타일인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아주 자상하고 친절해 놀랐지. 이상적인 부부 모습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외모보다 취미 활동을 하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부. 서로서로 존중하는 부부가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오페라 공연이 막을 내리고 리셉션이 열렸지. 치즈, 와인, 올리브, 샌드위치, 쿠키, 빵과 과일 등을 먹을 수 있었지.
멋진 토요일 오후를 보냈지. 크리스티 경매장 가서 무료로 라테 마시고 멋진 작품 보고 오페라 보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도 마시고. 저녁 8시 오페라 공연이 또 열리나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내겐 약간 무리라 그냥 포기했지. 바로 집에 오기는 아쉬워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토요일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이 열리고 지하철이 말썽을 부려 늦게 도착하니 폴 홀에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렸지. 바흐 파르티타 대신 소음만 들었어. 리스트 소나타 연주할 때 들어가서 들었다. 예비학교 학생 리스트 연주도 좋았지. 객석에 앉은 분이 "브라보 브라보" 해. 내 인생도 "브라보 브라보" 하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뉴욕에 와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 운명이 부르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는 뉴욕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 상상의 세계를 벗어나 거꾸로 가는 내 인생이지만 천천히 가도 괜찮아. 천천히 내 속도로 가자. 천천히 가자꾸나.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