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아들과 함께 링컨 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에 가서 공연을 볼 거라 착각을 했다. 오늘 공연이 아니라 다음 주 일요일 공연이었다. 아들에게 엄마랑 같이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는데 실수였다. 수년 전 링컨 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픈 리허설 공연을 봤고 요요 마가 첼로 협주를 했다. 그 공연을 보기 위해 플러싱에 사는 난 새벽 일찍 출발해 링컨 센터에 아침 6시경 도착해 기다렸다. 빨리 도착한 순서대로 무료 공연표를 받는 거라서 서둘렀다. 조금만 늦으면 안타깝게 받지 못할 수 있으니. 그날 무사히 공연 표를 받았고 아침 9시가 지나 뉴욕 필하모닉 오픈 리허설이 시작됐다.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요요 마를 만난 날이었다. 무료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새벽에 일찍 출발해 기다리는 것은 상당히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러시 티켓도 마찬가지다. 아침 일찍 극장 앞에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운이 좋으면 오전 10시경 러시 티켓을 구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 오래 기다림과 상관없이 러시 티켓을 사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시간당 보수가 많은 경우는 결코 러시 티켓을 탐내지 않으리라.
백만 불 가을 햇살 멜로디가 들려오는 날 난 종일 집에서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는 이웃집 가로수를 보았다. 가을 햇살 강도에 따라 빨간색은 한층 더 예뻐 보였다.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면 나뭇잎은 더 예뻤다. 가끔 파란 하늘도 봤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더라.
보스턴 여행 문제로 딸에게 언제 통화 가능한지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일에 무척 바쁜 딸에게 연락할 경우는 미리 메시지를 보내고 언제가 좋으냐고 묻는 편이다. 하필 곧 앙상블 연주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늦은 오후 하버드 대학 교정에서 앙상블 연주를 했다는 연락을 받고 여행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딸과 통화를 하고 플러싱 처갓집 통닭집에 전화를 걸어 양념 통닭을 주문하고 아들과 함께 치킨을 찾으러 갔다. 차가 있다면 5분 정도 내 거리일 텐데 우린 걸어서 가니 왕복 1시간 정도 걸렸다. 주택가에 핀 장미꽃과 국화꽃 향기도 맡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로수도 보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도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운 가을. 노란 숲 속 두 갈래 길 가운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훗날 인생이 달라졌다는 내용의 프로스트의 시처럼 어느 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고 그 후 두 자녀와 함께 뉴욕에 오게 되었다. 우리가 초기 정착한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 최우수 해프 할로우 학군이 있고 딸이 다닌 해프 할로우 힐스 웨스트 고등학교에 데려다 줄 무렵 노란 숲 속을 지나갔다. 가지 않은 길에 적힌 노란 숲을 보았고 노랗게 물든 가을 숲은 아직도 그대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캔 맥주를 꺼내 양념 통닭을 맛있게 먹었다.
일요일 링컨 센터 아니더라도 니콜라스 료리히 뮤지엄에서 피아노 공연을 볼 수 있고 메트 뮤지엄에 갈 수도 있고 북 카페에 갈 수도 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갈 수도 있었으나 조용히 휴식을 하며 보냈다. 아파트 슈퍼는 요즘 제초 작업을 하지 않아 아파트 뜰은 작은 강아지풀로 뒤덮여 있고 강아지풀도 초록색이 아니라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며 제법 짙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라커 펠러 센터 거리 화분에 핀 노란색 국화가 떠올라. 정말 사랑스러운 국화꽃 향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시월. 시월의 강은 흘러가고 시월의 빛은 지상을 덮으나 복잡하고 이리저리 얽힌 일은 언제 막이 내릴지 모르겠다. 생은 알 수 없는 게 참 많아.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오게 된 것도 우리의 상상 밖 세상이었고 생이 어디로 열릴지 우린 아무것도 몰라. 오랜만에 긴 휴식을 했다.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