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학교 재즈 공연과 소동들

날마다 소동이 일어나면 어떡해

by 김지수


겨울비 내리는 금요일 아침 창가에 빗물 뚝뚝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유리창에는 빗방울 그림이 그려지고 창으로 이웃집 겨울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나뭇잎은 모두 사라져 이제 봄이 와야 초록 잎새를 볼 수 있지. 아파트 지붕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아직도 들려오고 오후 맨해튼에 도착할 딸을 마중하러 가야 하고 잠깐 빈 시간 동안 밀린 메모 하려고 랩톱을 켰다.




날마다 소동. 오늘 아침도 정신없었어. 세탁물 담고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빈 세탁기 찾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니 기다려야 하고. 딸이 오후 뉴욕에 올 거란 연락을 받아 내 마음은 더 바쁘고 세탁을 하고 브런치를 먹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야 하는데 바로 세탁기 사용할 수 없으니 마음이 답답.




집에 세탁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집에서 세탁기 사용할 수 없으니 불편한 나날들. 아파트 전체 가구가 사용하는 공동 세탁기 6대와 건조기 6대. 지하에 내려가 빈 세탁기 발견하면 그것도 행운이라 생각할 정도로 늘 마음 무거워.




세탁기에 우리 집 세탁물을 넣고 거실로 돌아왔고 빈 시간 동안 오래된 낡은 가방 손세탁하고, 브런치 준비하고, 저녁 식사 준비하고 30분 후 지하에 내려가 세탁물을 꺼내 건조기에 옮겼다. 건조기 3대 전부 사용 중이라 할 수 없이 남은 3대에 세탁물을 나눠 넣고 집에 돌아와 1시간 후 다시 지하에 내려가 건조기 뚜껑을 여니 세탁물은 마르지 않은 채 전원이 나가버렸다.




아파트 나이는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 내 나이에 곱하기 몇을 해야 아파트 나이가 될지 모르겠어. 한국에서 아파트 완공된 지 5년이면 낡고 오래된 거라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도 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뉴욕에 오니 거꾸로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직후 지어진 아파트에 산 사람들도 많다. 보스턴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역사 깊은 아파트에 사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오래전 전기 시스템이라 건조기 6개가 동시 돌아가면 전원이 멈춰버린 사태가 발생. 결국 마음은 급한데 금요일 오전은 정신없었어. 다시 건조기 돌리고 집에 돌아와 식사하고 다시 지하에 내려고 세탁물 가져오고 일부 세탁물은 마르지 않았지만 그냥 집에 가져왔다.




브런치 먹고 설거지하고 커피 끓이고 테이블 앞에 앉아 창가 바라보며 메모를 하는 중. 얼른 마치고 맨해튼에 가야 하니 마음이 더 바빠.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갈비찜 요리 중. 아들이 엄마가 가장 잘하는 요리가 갈비찜이라고 식당 해도 좋을 거 같다고 농담하는데 뉴욕 레스토랑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콜롬비아 대학 졸업 후 친구들끼리 모여 레스토랑 오픈해 망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좋은 직장 구하기 너무 힘든 세상이 되니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 후도 레스토랑 오픈 한 사람들도 많은 뉴욕. 명성 높은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 많지만 뉴욕 모든 레스토랑 장사가 잘 된 것은 아니고 식당 영업이 어렵다는 말을 오래전 들었다.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장 조지 셰프와 다니엘이 연말이라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라고 자주 이메일 보내오나 '레스토랑 위크' 아니면 찾아가기 힘든 뉴욕 레스토랑 식사 비. 식사비도 비싸고 세금과 팁을 줘야 하니 더 부담스럽고 결국 자주 갈 수 없어 집에서 식사 준비해야지.




어제 오전 하얀 냉장고 청소도 하고 하얀 서랍장 정리도 했다. 딸도 크리스마스 휴가 맞아 뉴욕에 오니 매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할 형편이 안되니 미리 장도 봐야 하고. 어제도 겨울비 온다는 소식에 브런치 먹고 아들과 근처 한인 마트에 장 보러 갔다. 생선과 두부와 감자와 고구마와 채소와 닭고기와 갈비 약간과 김치와 사과 등을 구입. 장보기도 겁이 나. 물가가 많이 올랐어. 브롱스에 사는 할머니 친구 집 근처 마트 값보다 한인 마트 과일 값이 훨씬 더 비싸 요즘 사과도 안 사 먹었는데 딸이 오니 후지 사과도 구입했다.




짐이 많아 아들과 내 손으로 들 수 없어 택시를 불러 타고 왔는데 33년 전 뉴욕에 온 택시 기사 억양은 한국인보다 뉴요커 느낌이 더 강했다. 그래서 뉴욕에 온 지 얼마나 되었냐 물으니 오래오래전에 뉴욕에 왔어. 뉴욕 경기 어떠냐 물으니 80년대와 90년대까지는 꽤 좋아 한인들이 많은 돈을 벌었다고. 기사도 돈 많이 버니 술집도 가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세월 보냈는데 영원히 경기가 좋을 거란 생각에 많은 한인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며 집도 구입 안 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너무 안 좋고 렌트비는 한없이 올라가고 결국 요즘 한인들 삶이 많이 어렵다고. 2000년 후 뉴욕 경기가 너무너무 안 좋다고 말하는 한인 택시 기사.




10년 전인가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만난 한인 간호조무사도 생각나.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시민권 있는 한인 교포와 결혼해 바로 뉴욕에 와서 살기 시작. 맨해튼에 있는 델리 가게서 일하며 집과 델리 가게만 다녀 아주 오랜 세월 뉴욕에서 살았지만 뉴욕 지리도 하나도 모른다고. 그때 그분에게 혹시 프린스턴 대학에 간 적이 있냐고 물으니 어디에 그 대학이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델리 가게 장사가 잘 되다 망해버려 결국 먹고살아야 하니 간호조무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뉴욕에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는데 맨해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많이 놀랐어. 그때는 딸과 함께 펜 스테이션에서 기차를 타고 뉴저지 프린스턴 대학에 갔다. 교정이 무척 아름다운 프린스턴 대학 다시 가고 싶은데 세월만 흘러간다. 딸이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방문해 교정을 거닐었어.




어제 오후 장 보고 집에 돌아와 정리하고 저녁 식사 준비해 두고 맨해튼에 갔다.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 재즈 공연 보러 가고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 특별 이벤트에도 미리 예약을 했는데 어제 그만 내 핸드폰이 줄리아드 학교 화장실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바람에 재즈 공연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어.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집에서 맨해튼까지 교통 시간이 많이 들고 그래도 공연 감상해야 하는데 휴대폰 사고가 나의 집중력을 떨어뜨렸어. 인터넷에서 튼튼하고 부서지지 않는다는 브랜드 아이폰 케이스를 구입했지만 허망하게 오래전 부서지고 말았어. 즉시 새로 구입해야 하는데 자꾸 미루다 어제도 다시 휴대폰이 떨어져 불안했어.




어제 재즈 피아니스트 공연은 색소폰과 베이스와 드럼 연주도 함께 하고 꽤 공연이 좋았다. 화려한 조명이 켜진 공연장에서 와인 마시며 재즈 음악 감상했으면 100배 이상 더 좋았을 거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어제 기분이 안 좋아 결국 도서관에서 열리는 아메리칸 작곡가 이벤트에 가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겨울비 내리니 지하철은 자주 멈추고 타임스퀘어 역에서 익스프레스를 탔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어.




이제 조금씩 재즈 음악도 들리기 시작해. 한국에서 대학 시절 재즈 음악 들어보지 않았고 두 자녀 출산 후 아파트 근처에 재즈 바와 레스토랑이 오픈해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했다. 그 무렵 처음으로 재즈 음악에 대해 듣기 시작했고 두 자녀 출산하고 키우는 동안 자유롭던 대학 시절과 달리 책임과 의무가 날 에어 싸니 참 힘든 세월을 오래오래 보냈다. 친구들은 재즈 바에 가고 가족끼리 스키장에 간다고 하나 우리 집은 참 조용히 보냈어. 두 자녀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으니 다른 집 보다 훨씬 더 바쁘기도 했다. 이제 두 자녀 대학 졸업하니 내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주부 역할도 가정마다 다르고 두 자녀 특별 레슨 매니저 역할이 힘들었고, 두 자녀 아빠 뒷바라지도 무척 힘들었다. 무에서 시작한 우리 결혼이 남들이 부러워한 안정기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는 뒷바라지를 했다. 인연이 다 했는지 결국 우린 헤어지고 7천 마일 이상 떨어진 뉴욕에 와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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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에서 7호선 타고 맨해튼 가는 중 석양을 바라보다.









그제 수요일 오후 석양이 지는 무렵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어. 아름다운 석양을 보면 언제나 행복이 밀려오지. 아름다운 음악처럼 행복을 주는 석양. 슬픔도 괴로움도 근심도 잠시 잊게 하는 아름다운 석양. 황홀한 석양을 보며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재즈 공연 보는 중 비상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잠깐 재즈 공연 보는데 피아니스트 연주 혼자 하는 것과 드럼과 베이스 함께 연주하는 것 차이가 참 큼을 느꼈다. 드럼을 멋지게 연주하니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 연주도 함께 하면 하얀 눈 오는 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맨해튼에서 걷는 느낌이랄까. 혼자와 둘과 셋의 차이가 크다. 혼자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뭔가를 만들 수 있는 둘과 셋.




날마다 소동은 일어나고 나의 에너지는 지하로 잠수했어.


비행기 속도만큼 초스피드로 메모 마치고 샤워하고 맨해튼에 딸 마중하러 가야 할 시간.


금요일 오후도 겨울비 내리고 있어.


대학시절 들은 유심초의 '사랑이여' 노래가 떠오른 겨울날 오후.


그때는 내가 뉴욕에 와서 살 거라 미처 몰랐어.


사랑은 저 멀리 가고


고독 가득한 뉴욕.










며칠 전 메트에서 오페라 봤는데 수 십 년 세월이 흐른 거 같아. 오페라 보면 무거운 생은 잠시 잊어버린다. 오늘 밤 오셀로 공연을 하구나. 누가 오페라 보러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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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1 금요일 오후 겨울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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