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드 학교 공연은 애피타이저, 메트 오페라는 앙트레
메트에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보고
눈부신 겨울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는 수요일 아침 노란 유자차 마시며 유튜브에서 '수요일엔 빨간 장미' 노래도 들으며 새로운 날을 연다. 아침 기온 영하 1도. 삶은 뭐가 복잡한지 이 생각 저 생각. 너무 복잡하니 쉽게 결론도 나지 않으며 1시간이 금세 흘러간다. 신의 뜻을 미리 알면 좋겠다. 사방은 나의 한계로 막혀있고 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위기 위기 위기 속을 달려왔지만 삶은 언제나 불덩이가 춤을 춘다. 어느새 연말. 복잡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뭔가 풀릴 줄 알았던 문제는 아직도 안갯속이다. 새해 난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제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 사려고 시도를 했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인기 많다고 자주 들었지만 러시 티켓은 살 수 없었다. 아들에게도 부탁을 했지만 역시 불가능. 메트 로그인하고 1초가 되지 않았는데 매진이라고 떴다. 다시 시도, 다시 시도, 다시 시도했지만 불가능. 괜히 시간만 흘러갔다.
아들과 식사를 하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몇 차례 환승해 맨해튼에 갔다. 화요일 도착한 곳은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 요즘 밤 11시까지 영업하는 서점. 연말 서점 장사가 아주 잘 된 모양이야. 기억에 20-23일에 자정까지 문을 연다고. 북 카페도 언제나 손님이 많고 잠시 기다리다 빈자리에 앉아 핫 커피 주문하고 책을 펴는데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북 카페에 왔으니 최소 몇 페이지라도 읽고 싶었지만 평소와 달리 집중할 수 없었다. 책의 활자가 전부 오페라로 보였다. 나의 마음은 이미 오페라에게 갔다.
순간 책 보다 오페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러시 티켓은 살 수 없었지만 혹시 스탠딩 티켓 구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메트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아직 팔리지 않은 티켓이 남아있었다. 이번 시즌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공연이 몇 차례 남지 않았고 이미 저렴한 티켓은 다 팔려 러시 티켓 사서 볼 생각이었지만 인기가 많아 러시 티켓 사기 어려우니 아무래도 스탠딩 티켓 사서 봐야 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어제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점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링컨 센터에 갔다.
링컨 센터 박스 오피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직원에게 패밀리 서클 스탠딩 티켓 한 장(22.5불) 달라고 말하며 라 트라비아타 러시 티켓 무척 사기 힘들다고 하니 직원이 웃으며 오페라마다 러시 티켓 판매 숫자가 다르고 어제 공연은 러시 티켓을 많이 팔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지 않아서 몇 장인지 모른다.
수년 전 러시 티켓 사려면 메트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고 아침 5시부터 온 사람도 있다고 하고, 여행객들도 많았고, 운이 안 좋으면 몇 시간 기다려도 러시 티켓 사지 못하고 돌아섰다. 바로 내 앞사람까지 러시 티켓 살 기회가 주어지만 마음이 더 쓸쓸해졌다. 그런데 요즘은 메트 웹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으로만 러시 티켓을 구입하니 전보다 편리하지만 여전히 인기 많은 오페라 러시 티켓 사기 어렵다. 3-4시간 걸리는 오페라 러시 티켓이 1장 25불. 그럼 1시간에 8.33불. 뉴욕에서 그보다 더 좋은 거 찾기는 힘들지. 스타벅스 카페에 가도 비싼 커피 사 먹는 사람들이 더 많고 커피 한 잔과 오페라와 비교가 안돼. 메트 뮤지엄과 모마 뮤지엄 등 뉴욕 평균 뮤지엄 입장료 20- 25불 정도. 오페라 팬에게 25불 러시 티켓은 환상적이다.
러시 티켓 사서 오페라 보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니 차선책으로 가장 저렴한 패밀리 서클 스탠딩 티켓 가서 가방에 담고 근처에 있는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재즈 알토 색소폰과 프렌치 호른 연주를 감상했다. 뉴욕은 재즈 공연이 발달되고 맨해튼 음대, 줄리아드 학교와 메네스 음대 모두 재즈 공연이 좋다. 벤저민 브리튼 곡은 프렌치 호른 반주로 테너가 노래를 불러 더 좋았어. 줄리아드 학교 공연이 나의 애피타이저. 메트 오페라는 나의 앙트레 메뉴가 되어버린 어제.
링컨 센터 메트
어제저녁 7시 반에 오페라가 시작하니 줄리아드 학교에서 7시 10분경 나와 메트에 갔다. 입구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박스 오피스 줄도 아주 길어 복잡했다. 가방 검사를 맡고 표를 보여주고 레드 카펫을 밟고 올라갈 때 행복이 밀려오고 드디어 오페라 보러 왔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해한다. 삶이 너무 복잡하니 매일 오페라 보고 싶지만 마음과 다른 현실에 굴복할 때가 더 많다.
패밀리 서클 스탠딩 티켓이니 메트 오페라 무대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 무대가 잘 안 보이지만 감사함으로 봐야지. 어제는 스탠딩 티켓 사서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 홀이 복잡했다. 스탠딩 티켓도 번호표가 있는데 하필 내 옆자리에 악취 나는 남자가 와서 너무 불편해 고민하다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트 오페라 보러 가서 악취 나는 남자를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어제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19세기 파리 사교계 여왕 비올레타와 귀족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실은 어제 알프레도 역을 맡은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테너 목소리 들으러 갔는데 비올레타 역을 맡은 독일 출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목소리와 연기에 반해버렸다. 페루 출신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공연을 지난번 카네기 홀에서 봤고 그동안 봤던 공연 가운데 최고의 목소리와 연기라 이번 시즌 그가 연기하는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꼭 보려고 하다 시간이 흘러가고 이제 몇 차례 남지 않아서 어제 갔는데 알프레도 목소리도 아름답지만 어제는 목소리가 작고 연기가 조금 부족했다. 그런다고 형편없는 테너였다는 말은 전혀 아니고 세계 최고 테너로 자리 잡아서 나의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 거지. 하지만 어제 소프라노는 그동안 메트에서 봤던 오페라 주인공 가운데 최고 최고였어. 아들이 창녀와 사랑에 빠지니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 역을 맡은 바리톤 목소리와 연기도 좋았다.
한국에서 오페라 볼 기회는 없었지만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흐르는 '축배의 노래'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어제 오페라 소프라노와 테너와 바리톤 목소리 훌륭했고, 무대 세트도 너무 멋지고, 오케스트라 연주 역시 좋고, 조명도 아름답고, 합창도 좋고, 댄스도 너무 좋고 비록 3시간 이상 서서 오페라 봤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만약 오페라가 형편없었다면 3시간 서서 오페라 볼 수도 없을 거다. 이번 시즌 막 내리기 전 다시 메트에 가서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보고 싶다. 너무너무 좋아 추천하고 싶은 오페라.
뉴욕 문화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민자들이 모인 뉴요커 삶이 강하다. 힘든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세상 어디든 좋은 거가 좋은 거. 좋은 좌석에 앉아 오페라 보고 싶은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좋은 좌석 티켓이 너무 비싸니 형편이 안되면 힘들지만 서서 오페라 보기 위해 스탠딩 티켓을 구입해서 본다. 오페라 사랑하지 않고 열정 없이 3시간 이상 걸리는 오페라 보기는 무척 힘들다. 오페라 사랑해야지 가능한 이야기다. 오페라 사랑하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오페라 보니?라고 말할 것이다. 오페라 정말 멋져. 한국에서 오페라 볼 기회가 없어서 볼 수 없었지만 메트 오페라 너무 멋져.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초연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고. 창녀와 사랑에 빠진 귀족 청년 이야기가 당시 보수적인 사람들 취향에 맞지 않았나 짐작이 된다. 중학교 시절 읽은 프랑스 작가 뒤마의 <춘희>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 어린 시절 그 소설을 재미 읽게 읽으며 펑펑 울었다. 그때 창녀란 직업도 잘 몰라고 청춘 남녀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니 더 슬퍼서 펑펑 울었나. 어제도 비올레타 창녀 역을 맡은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목소리와 연기가 너무 훌륭해 객석에서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훌륭해 오로지 오페라에 집중했다. 백발노인들도 많고 젊은 청춘들도 많이 오페라 보러 온 어제.
중학교 시절과 달리 대학 시절 창녀와 사랑에 빠져 함께 동거하고 힘든 의예과 시절 시험에 실패해 결국 학교를 떠나는 K도 가까이서 봤고 나중 다시 수능 시험을 치르고 대학 입시를 거쳐 다시 의대에 진학해 그의 친구들보다 늦게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닥터 오피스를 운영하는 것도 보았다. 나 역시 결혼 후 주위 상당히 많은 가정들이 창녀와 사랑에 빠져 집안이 붕괴되는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창녀와 사랑은 그리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베르디 오페라 주인공 귀족 청년은 결혼한 몸이 아니고 미혼이라 입장이 다를 것이다. 귀족 청년 알프레도 아버지가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에게 찾아가 아들이 너와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딸 결혼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며 아들과 헤어질 것을 강요한다. 충분히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는 입장이다. 또한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가 순수한 마음으로 귀족 청년과 사랑에 빠진 것도 역시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어제는 오페라 줄거리에 상관없이 그냥 베르디 오페라의 음악에 빠졌다. 지금도 잊지 못할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가 그립다. 오페라를 보면 복잡하고 무거운 현실을 잠시 잊는다.
메트에서 오페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젊은 연인들이 메트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 달라고 부탁을 해서 사진도 찍어주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지하철을 타고 자정 무렵 집에 돌아왔다. 밤하늘에 노란 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고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었다. 집에 돌아오면 현실로 돌아온다. 말로 할 수 없이 복잡한 삶. 누가 인간 삶이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까.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12. 19 수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