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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Jan 06. 2019

뉴욕 한인사회_
보통 사람들_간호조무사, 회사원 (1)


뉴욕 퀸즈 플러싱

  

미국에 가면 뉴욕에 가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는가. 멀리서 보면 이민은 아름다울 수도 있다. 문화와 자연환경이 다르니 뭐든 신기해 보이고 멀리서 보면 더 매력 넘치지 않은가.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속담처럼. 이민은 추상적인 단어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플러싱 지하철에서 만난 아들 친구 엄마 표현이 생각난다. "뉴욕은 위를 바라봐도 끝이 없고 아래를 바라봐도 끝이 없어요"란 말이. 이민자들은 대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아들은 이민을 '홀로코스트'라 표현했다. 


이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민이 뭔지 안다. 뉴욕 사는 한인들은 극과 극으로 나뉘고 가난한 이민자들 삶은 눈물겹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 같아. 그런데 이상하게 뉴욕에만 오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거라 환상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라곤 한다. 


미국에 오는 방법도 다양하다. 시민권 갖는 교포랑 결혼해 영주권 받아서 온 케이스, 목사 신분으로 종교비자로 온 케이스 등. 두 가지 경우는 비자 문제가 쉽게 해결된 경우다. 일단 미국 비자받기도 어렵다. 유학생 비자도 얼마나 어렵다. 토플과 GRE 시험 봐서 대학/대학원에서 합격 레터 받고 대사관에서 인터뷰하고 유학생 비자받아본 사람은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뉴욕 뉴저지 한인 인구가 약 25만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민 생활이 어려우니 한인 교회 숫자가 많다. 미주 한국일보(2018.1) 기사에  의하면 뉴욕(461) 뉴저지(263)에 약 700개가 넘는 한인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민을 와서 당장 필요한 정보 구하기도 어려워 한인들은 교회를 통해서 얻고, 외국 생활이 고독하고 힘드니 교회에 가서 친구도 만나기도 하고, 이민생활이 힘드니 날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순수한 마음으로 종교생활을 하는 분도 계실 거라 짐작한다. 25만 한인 숫자에 비해 한인 교회 숫자는 분명 많은 숫자 아닌가. 


우리 가족도 이민과 유학에 대해 모르고 뉴욕에 왔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은 그냥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낯선 도시로 이사만 해도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는데 언어와 문화와 지리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이 어찌 쉬울까. 단 한 사람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한국어 문화권도 아닌데. 미국은 낯선 사람과 이야기도 안 하는 편이다.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제리코로 이사할 때 제리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가서 전화 한 통화만 하자고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한국과 문화가 너무 달라. 


아직 한국은 이민 생활을 잘 모른 거 같다. 세계의 중심지 뉴욕은 빈부차가 극과 극으로 나뉜 도시고 뉴욕에 사는 한인들 역시 빈부차가 극과 극으로 나뉜 듯 짐작한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서울에 대해 호기심 가득해 물으면 "서울도 빈부차가 심하다."라고 하면 요즘은 "지구촌 모두 빈부차가 심해요"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2001.9.11 후로 이민자 삶이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미국 정책도 변하고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Social Security Number 받기도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한국이라면 주민등록 번호에 해당한다. 주민번호 없이 사회생활이 가능한가. 무엇을 하든 소셜 번호를 요구한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다. 


아래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1. 뉴욕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만난 한인 간호조무사_미국 교포랑 결혼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 시민권이 있는 한인 교포랑 결혼해 뉴욕에 왔다. 맨해튼 델리 가게를 운영해 장사가 잘 되었다고. 그런데 매일 집과 맨해튼만 왕래하니 다른 것은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일하고 돈을 벌었는데 어느 날 사업이 망해버려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 무얼 할까 고민하다 간호조무사 시험을 봐서 양로원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간호조무사 일이 쉽지 않다. 환자 대소변을 받아내고, 샤워시키고, 침실 정리를 하고 등. 체구가 아주 큰 환자 샤워시키기도 너무 힘들다고. 잘못하면 환자 돌보다 허리 다치기도 한다고 한다. 뉴욕에 산지 수 십 년이 지났다고 하니 그분에게 뉴저지 프린스턴 대학에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 번도 간 적도 없어서 모른다고 했다. 집과 가게와 양로원만 다닌 분은 뉴욕 문화에 관심 조차 없으니 문화생활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일만 하고 사는 한인이다. 그분 사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그분은 신분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시민권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영주권 쉽게 나오니. 


2. 롱아일랜드 딕스 힐에서 만난 K네 가족_ 회사원 & 네일 살롱_1998년 외환위기 삼성에서 해고 후 뉴욕에 옴


K 부인 말에 의하면 남편이 삼성에서 해고당해 뉴욕에 왔다고. 어학연수한다고 유학생 비자를 받아 뉴욕에 왔는데 공부가 힘들어 얼마 안 가서 수업을 중단하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직장을 구해 일하기 시작해 뉴욕에 온 지 13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다고. 물론 수업을 중단하니 체류 신분이 유학생에서 서류 미비자(구 불법체류자)로 변했다. 하지만 그 무렵은 일하고 돈을 벌어 세금 보고를 하면 영주권 수속할 수도 있었다. 물론 세월이 아주 올래 걸렸다(13년). 그런데 지금은 법이 변했다. 세금 보고를 온라인으로 하니 서류 미비자는 보고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류 미비자는 영주권 수속 자체가 불가능!! 원래 영주권 수속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  그래도 과거는 세금 보고 하면 어렵게 영주권 받기도 했다. K 부인은 네일 살롱에 가서 일한다. 한 달 수입이 약 2500-3000불 정도. 수입은 고정적이 아니고 네일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니 알레르기가 생겨 너무 힘들고 돈을 벌기 위해서 그냥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데 참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네일 살롱이 괜찮았다. 지금은 네일 살롱 비즈니스 운영도 어려워 한인들 가운데 빚에 시달려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무엇보다 렌트비가 인상되면 사업 운영이 정말 어려운 듯. 어렵게 사는 한인들이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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