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다른 나라에 정착할 때 언어와 신분 문제가 따른다. 언어 문제는 하루아침에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차가 아주 크다. 그래서 조기 유학을 보낸 경우도 있다. 조기 유학 비용은 보통 클래스 상상하기 힘든 많은 돈이 들지만 성공 케이스는 극소수다. 또 하나 신분 문제다. 영주권이 있는 경우 이민생활은 더 쉬운 편이다. 그런데 요즘 취업 비자받기도 정말 어렵다. 자국민 취업도 심각하므로 이민을 장려하지 않는 나라로 변했다. 지구촌 어디나 마찬가지다. 항상 소수 예외는 있다. 능력 많고 운 좋고 돈 많은 분들.
오래전 미국도 이민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미국 초기 시절 철도 만들기 등 힘든 육체노동은 이민자들의 몫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경우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다. 일단 스폰서 해 주는 직장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스폰서 비용도 많이 들고 프로세스가 복잡하다. 그래서 거의 안 해주는 추세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해도 미국에 남고 싶어도 남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간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한국도 유학생이 넘쳐 과거처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고. 미국 비자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그러나 만약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받는다면 다르다. 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받은 경우는 비자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
비자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도시이고 신분 문제로 열악한 환경에서 최소 임금을 받고 지낸 경우가 아주 많다고 들었다. '앞으로 몇 년 일하면 영주권 스폰서를 해 줄 테니 열심히 일해라'라고 미끼를 던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흘러도 영주권 스폰서를 해주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영주권 얻기가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과거에 서류 미비자(구불법체류자)로 지내면서 불법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세금 신고를 하면 나중 영주권을 신청하고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요즘 이런 경우도 불가능하다. 왜? 세금보고를 인터넷에서 한다. 서류 미비자의 경우 인터넷에 투명인간이라서 세금 보고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다음 프로세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불가능하다.
언어 적응력은 개인차가 크고 언어 능력에 따라 이민자 삶도 각각 다르다. 내가 뉴욕에서 만난 의사 경우를 보자. 서울대 의대 졸업 후 미국에서 다시 의대 공부 시작해 전문의 획득 후 뉴욕에서 닥터 오피스 운영한 분도 있고, 전문의 과정이 힘들어 포기하고 일반 가정의로 지낸 분도 있고, 정말 능력 뛰어난 분은 전문의가 두 개인 경우도 있고( 그 경우는 젊은 의사, 뉴욕에서 태어난 분인지 이민 온 분인지 자세히 모른다) 반대로 한국에서 전문의로 지내다 뉴욕에 와서 노동을 하고 지낸 분도 있다. 의사가 그런 노동 한다면 믿지 않은 사람 많을 것이다. 비단 한국 의사만 그런 것 아니다. 전에 대학원에서 만난 필리핀 출신 의사도 마찬가지다. 멀리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공부를 하러 왔다. 의사직을 포기하고 뉴저지 어느 병원에서 의료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의사 되는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라 더 쉬운 일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또, 중국인 의사도 마찬가지다. 닥터 오피스에서 일하나 일반 사무직을 한다. 도저히 다시 의대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뉴욕이 중국보다 더 좋으므로 그냥 지낸다고. 문화적인 면과 자녀 교육 등을 말한 것이라 추측해 본다. 언어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사례다
미국 특히 뉴욕은 자본주의 꽃이 피는 도시다. 돈이 많은 경우와 아닌 경우로 확실히 나눠진다.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인 의사 예를 든다. 아버지가 이민 1세 의사. 자녀도 컬럼비아 대학 출신 의사. 닥터 오피스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말하자면 닥터 오피스 주인이 의사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한 다른 의사와 간호사와 안내 데스크 직원은 시간제 일을 한다. 미리 환자 예약을 받고 스케줄을 만들고 의사는 스케줄에 맞춰 닥터 오피스를 방문하고 수 시간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환자를 진료한다. 이 경우 실제 내가 본 케이스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노동 현장이었다.
주인 컬럼비아 대학 출신 의사는 1주일에 몇 시간 일한다. 자본이 무얼 말하는지 느끼게 된다. 의사라고 모두 다 같은 처지가 아니다. 닥터 오피스가 있는 경우와 페이 닥터와 경우는 너무나 다르다. 한국에서도 페이 닥터와 원장과 입장은 다르지만 페이 닥터가 1초도 쉬지 않고 일하지 않는다.
또한 뉴욕 플러싱에서 닥터 오피스 운영한 분은 한국처럼 규모가 큰 것이 아니고 아주 작다. 환자 10명 정도가 기다릴 공간이 보통이다. 오래오래 전 한국 병원을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뉴욕에 이민을 와서 다시 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라도 한국보다는 훨씬 더 열악하다.
그럼 변호사는 어떤가? 변호사 역시 한국과 다르다. 한국에서 변호사와 계약하면 계약금을 지불하고 성공 보수를 준다. 뉴욕 한인 변호사는 대개 처음 한꺼번에 계약금과 성공보수를 받는다. 일이 성사되는 안되든. 일이 안되면 다시 계약을 하라고 성화다. 다시 계약해도 일이 진행이 안되면 변호사 비용만 든다. 일이 되든 안되든 변호사는 수입 올리는데 바쁘다.
변호사 오피스는 어떤가. 맨해튼에 대형 로펌도 있겠지만 플러싱 경우 조그만 오피스에 직원도 없이 변호사 둘이 운영하기도 한다. 복사든 뭐든 기본적인 일 처리도 전부 변호사가 처리한다. 인건비 지출을 안 하려고 직원 채용도 안 한 오피스가 있다. 한국 변호사 사무실과 많이 다르다. 한국은 사무장과 직원이 있고 사무장이 많은 일을 처리한다.
여전히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한인업체나 식당 등 서비스 직종에서 일한다. 최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뉴욕에 이민 온 경우라도 서울에서 스카이 대학을 졸업한 경우라도 이민자 삶은 힘들다. 어떤 분은 미국인 회사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은 영어권과 거리가 멀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일하고 영어 기사를 읽지 않고 매일 직장과 집을 다닌 것 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시간도 없는 분도 있다. 스카이 대학 출신임에도. 그분 부인은 식당에서 일을 한다.
시간당 급여는 작고, 렌트비와 물가는 비싸고, 의료비와 교육비는 비싸다. 뉴욕에 올 때 퍼블릭 스쿨에 다니면 학비가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뉴욕에 도착하니 사정이 달랐다. 긴긴 여름 방학 동안 캠프를 간다. 7주 정도의 캠프 비용은 최소 수 천불에서 1만 불 가까이 든다.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 프로그램부터 음악 캠프와 축구 캠프 등 캠프 비용이 유료다. 한국에서 캠프에 가면 몇 십만 원 경비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오니 한국과 실정이 다르다. 고등학교 활동은 대학 입시에 반영이 된다. 수능 성적만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다. 예상외로 교육비가 많이 들고 천차만별이다.
의료비도 마찬가지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닥터 오피스에 갈 수 없다. 이민 초기 두 자녀 예방 접종을 다 마치지 못해 뉴욕 닥터 오피스에서 접종하는데 1인 1회 주사비 용인 의료 보험 없는 경우 100불. 2명이니 200백 불이 들었다.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을 접했다. 직장에 근무해도 의료보험비가 비싸 가입하지 않은 분도 있다고 자주 들었다. 어떤 이민자의 경우는 어느 날 발목이 아파 참고 참다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MRI 사진 한번 촬영하고 3일 병원에 입원했는데 며칠 후 병원에서 날아온 고지서 보니 3만 불이 넘었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었다고 한다. 의료비 비싼 현실이 정말 힘들다. 이 경우는 의료보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요즘 뉴욕에 관광 온 분들이 많고 그런 분이 뉴욕에서 오래 거주한 자 보다 더 뉴욕을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뉴욕은 문화 예술의 도시이므로 이민자 모두 뉴욕에서 문화생활을 할 거라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경우가 더 많고 문화생활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수 십 년 전 미국에 이민을 와서 성공한 경우도 맨해튼 문화를 잘 모른 분이 더 많다. 대개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하고 한인 커뮤니티에서만 어울리고 지낸 분이 더 많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우린 다른 나라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대개 화려한 삶을 보여준 자가 많다. 어렵고 힘든 이민에 대한 글을 별로 읽은 적이 없다. 극소수 성공한 이민자 삶을 보고 이민의 실정을 모르고 이민을 꿈꾼다면 이민을 와서 적응하지 못하고 더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꿈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 난 믿는다.
부자 나라에서 이민이 장밋빛 환상이라고 생각하거나 위의 글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분은 한국에서 지낸 외국인 노동자 삶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지낸 한인은 소수 민족이다. 한국에서 지낸 베트남 이민자나 중국에서 건너온 이민자와 비슷하다. 그들 삶이 얼마나 무너진 지 본 적이 있는가. 이민생활은 천차만별이다. 성공한 케이스는 소수다. 힘들고 어렵지만 이민 1세는 2세를 위해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 능력 뛰어나고, 문화 적응력 뛰어나고, 이민 적응력 뛰어나고, 능력 뛰어나고, 스폰서 해주는 좋은 직장 구하거나 결혼으로 신분 문제 해결한 경우 이민생활이 한국보다 더 좋을 수 있다.
이민은 반드시 장밋빛 생을 말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른다. 잘 적응 못한 경우 한국보다 백만 배 더 고통스러운 삶을 유지한 경우도 많다. 또한 나이 들면 자녀 교육 마친 경우 고향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싶은 한인들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 수준이 높아져 물가나 주택값이 비싸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헬조선의 탈출구는 이민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미국도 뉴욕도 빈부 차이가 크다. 아메리칸드림은 오래전 사라졌다는 말이 들린다. 하물며 언어와 신분 장애가 따른 이민이 쉽게 아메리칸드림으로 이루어질까. 준비된 자에게는 유학과 이민이 더 좋을 수 있다.
윗글은 뉴욕 한인 이민자들을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했지만 비단 뉴욕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 삶만 힘든 게 아니다. 뉴욕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지구촌 현상으로 이민이 보편화되어가지만 여전히 이민 1세의 삶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민은 그냥 장밋빛 환상이 아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꿈은 만들어 간다. 아무리 현실이 열악해도 불타는 정열로 노력하면 언젠가 꿈이 이뤄질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