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이야기 듣고 전방에 살던 추억이 떠올랐어.
장미의 계절 6월에 맞는 첫 번째 금요일 이민자들이 사는 플러싱 동네도 장미향 가득하다. 금요일 오전 브루클린 식물원 장미 정원에 가려다 포기, 저녁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 보는 것도 포기, 허드슨 강 옆에서 열리는 댄스 축제 보는 것도 포기, 매달 첫 번째 금요일 저녁 무료입장하는 누 갤러리 방문도 포기... 뉴욕에서 열리는 수많은 행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유는 내 몸이 화산처럼 불타고 있어서. 달콤한 휴식이 필요한 시기인가 보다.
미국 동부보다 더 뜨거운 서부로 떠난 딸은 낯선 곳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 아픈데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다. 딸이 아마존에 미리 주문한 모든 짐들은 룸메이트가 아파트 주소를 정확히 주지 않아서 반환되고 말았으니 필요한 물품 구입도 어렵다고. 낯선 도시에서 낯선 지역에 익숙한 것도 역시 시간이 걸린다. 쌩쌩 달리는 도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반드시 버튼을 눌러야 사람이 건널 수 있다고 하니 낯선 곳에 가면 모든 게 새로워 고생 시작이다. 인간이 사는데 최소 필요한 것들만 준비해 잠시 지내야 할까. 어제는 딸이 서부에 도착해 Target에 필요한 물품 구입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걸어서 왕복 2시간이 걸렸다고.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상상으로 부족하지. 누구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세상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든 일.
딸의 힘든 정착 이야기를 듣노라니 오래전 한국에서 전방에 살 적 기억이 났다. 아이 아빠가 기초 군 훈련을 마치고 전방에서 근무하는데 당시 난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매일 버스를 타고 왕복 4-5시간 걸려 집에 돌아오던 시절. 집에 차가 있어서 내가 운전하면 편하게 지냈을 텐데 여자이니까 운전하면 안 된다는 아이 아빠의 명령에 복종하고 살던 시절. 아이 아빠는 전방에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고 하니 학교에 휴직계 제출하고 전방에 살 집을 구하러 갔다. 그때는 내게 운전하고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낯선 고속도로 달리며 전방을 찾아갔다. 낯선 지리를 세세히 알려주던 GPS가 있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당시 내 차에 부착되지 않은 지리 찾기 맵. 전방을 찾아가는 것도 얼마나 힘들던지. 새벽에 일어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전방 간다고 하니 직원이 깜짝 놀라더라. 전방 낯선 기차역에서 오전 11시 반 경 만나자고 약속 해 새벽에 출발해 서울과 경기도 근처에 도착했지만 낯선 지리라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헤매다 상황을 파악하니 그대로 직진하면 서울로 진입할 거 같아서 우회전해서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서울 시내버스가 달려와 난 재빨리 우회전 신호를 넣고 차선을 변경했지만 멀리서 달려오던 대형차가 내 소형차를 박아버렸다. 그날은 어린이날 5월 5일. 교통사고는 정말 순간이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사고였지. 얼마나 당황했을까. 당시 지방 자동차 번호판이고 젊은 여자가 교통사고를 냈으니 동물원 원숭이로 변했어. 지나가는 차들 전부 날 바라보는 눈빛이 태양처럼 뜨거웠지. 이를 어쩌나. 처음 당한 일이라 난감한 상황이지만 침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시간. 대형차가 소형차를 박고 멀리 떠났으니 내 차는 쭈글쭈글 해졌다. 하지만 시동을 걸어보니 작동해 얼른 차를 코너로 옮겼다. 다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 그때는 휴대폰도 없고 어디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상황. 생각하고 생각하다 시동이 걸리니 그냥 운전하고 약속 장소에 찾아가자고 결정을 하고 낯선 도로를 달렸다. 약속 장소에 약속 시간 즈음에 도착했다.
어디 그뿐이랴. 전방에 살 집을 구하란 특명이 떨어졌는데 나 혼자 하라고!! 아이 아빠는 언제나 특명을 내리는 신 같은 사람!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다음날부터 아파트를 구하러 움직였지만 전방에 있는 아파트 전세는 너무너무 비싸고 귀해서 내 차지가 아니었다. 호텔 비용도 비싸니 이튿날부터 서울에 사는 아이 큰아빠 집으로 출퇴근했다. 그럼 서울 지리를 내가 알았어. 물론 몰랐지. 그 복잡한 서울 도로를 운전하고 1주일 걸려서 찾은 집은 시장 옆에 있는 작은 월세방이었다. 피아노 학원이 있어서 좋았고 시장이 가까워 장 보기 편했다.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동굴 같은 집도 너무너무 많은데 겨우 잠잘 공간을 찾아서 다행인지도 몰라. 30평 아파트 짐은 전방에 가져올 수 없으니 침대와 소파와 책장 등 큰 가구는 전부 집에 그대로 두고 수저 몇 개, 접시 몇 개, 이불 등 인간이 사는데 꼭 필요한 최소 짐을 갖고 전방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 아빠는 손 하나 끄덕 안 했어. 언제나 일 처리는 아내의 몫! 내게 결혼은 특별한 트레이닝을 받는 시간들이었다.
전방은 탱크 소리 크게 들리고 가죽 공장에서 악취가 나서 몹시 힘들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전방 월세 방에서 사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가 놀러 온다고 하니 식사 준비도 해서 함께 먹었다. 친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랐을 거야. 요즘 세상에 이리 산 사람도 있을까, 하면서. 영어 교사 발령받아 지낸 친구는 독일로 유학 갔는데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몇 년 독일에서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지.
전방 시절도 평생 잊기 어려울 거 같아. 최소 짐에 바이올린과 바이올린 악보와 친정아버지가 미국 출장 가서 선물로 사 온 윌슨 테니스 라켓은 담았다. 아이 아빠 출근하기 전 새벽 시간에 테니스 레슨을 좀 받고 아이 아빠 출근하면 피아노 연습하고 레슨 받고 쉬는 시간에 책도 읽었지. 당시 어린 딸 키우며.
살다 보면 힘든 순간이 많다. 전방에서 살던 추억도 평생 잊을 수 없지. 친구가 있어. 카페에 갈 수 있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홀로 아이 키우며 지냈던 시절. 방 구하기부터 이사까지 모든 일은 언제나 나의 몫! 난 학교에 휴직계 내고 전방에 따라갔는데 아이 아빠 급여로 살아야 하는데 급여 가운데 용돈으로 3/4 가져가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라고. 얼마나 힘든 순간을 보냈는지 몰라. 피아노 레슨 해주고 레슨비 받아 내 피아노 레슨비와 테니스 레슨비 내고 살던 시절. 쇼핑이란 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는 것이니 불가능한 꿈이고 숨 쉬는데 필요한 기본 생필품만 사고 살았지.
딸에게 어제 힘들었던 전방 이야기하니 놀라면서 모두 어려운 시절도 있나 봐요,라고 말했지. 어렵고 힘든 시절 잘 견디고 참고 지내야지.
뉴욕에서 싱글맘으로 두 자녀 교육시키며 사는 것은 얼마나 무한 도전인지 몰라. 내가 침묵을 지키면 모두 신선처럼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웃지. 평생 내가 뿌린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 무에서 시작해 뉴욕까지 오는 게 눈물 아니고 뭐겠어. 모두가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지만 뉴욕에 와서 아름다운 뉴욕 문화를 보고 느끼고 살고 있지. 비록 삶은 견디기 힘들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힘내자. 참고 견디면 더 좋은 날 오겠지.
보스턴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호수에 산책하러 다녀왔다. 작은 오리 새끼들이 며칠 안 본 사이 많이 컸더라. 어제는 몇 주전인가 아마존에서 주문한 선풍기 꺼냈는데 얼마나 사이즈가 작던지 놀라고 말았어. 인기 제품이고 가격이 저렴해 구입했는데 세상에서 본 가장 작은 선풍기였네. 타이머도 없고 완전 수동식.
매일 쏟아지는 이메일. 메트 뮤지엄에서 쥬디 콜린스 공연 티켓 사라고 연락이 오고. 75불. 얼마나 비싸.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 보라고 연락 오고
American Ballet Theater에서도 소식이 오고, 이번 시즌 한 편의 발레 본 적이 없어.
뉴욕 도서관에서도 소식이 오고
America's Polo Match 경기 티켓 사라고 소식 오고
뉴욕 롱아일랜드에서는 미국 경마 축제(Belmont Stakes)가 열리고.
6월 중순 센트럴파크에서 뉴욕필과 메트 오페라 공연도 열리고
이미 서머 스테이지 축제가 시작되고
다음 주 화요일 뮤지엄 마일 축제가 열리고
뜨거운 여름 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뉴욕 축제들.
서부에서 고생하는 딸을 위해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6. 7 금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