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내셔널 아트 클럽, 콜럼비아 대학 밀러 시어터, 교회 공연
폭풍우가 그쳤다. 심하게 불던 폭풍우가 영원히 그치지 않을 거 같았다. 어제 그랬다. 아파트 뜰 거대한 고목나무가 폭풍우에 흔들렸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떠올라. 용비어천가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 도 떠올라. 끝없이 흔들리는 삶. 이민이 그런다. 뿌리가 깊지 않아. 30년 40년 세월이 지나면 그래도 더 낫다. 혼자 힘으로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가꾸는 것은 눈물을 뿌리며 살아가는 삶이다.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워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고목나무가 흔들리니 잠시 내 생을 돌아보았다. 저 거대한 뿌리가 있는 나무도 흔들리는데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우리 가족은 늘 고민하고 갈등하고 살아갈 수밖에. 아무도 없는 땅이니 마치 고아 같아. 물어볼 사람 한 명 없고 도움 청할 사람 한 명 없지. 모든 걸 스스로 다 해결해야 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게 숙제다.
폭풍우가 불던 어제 파랑새로 변신을 했다. 파란색 옷을 입고 등에 날개는 달지 않았으나 잠시 등에 파란색 날개가 달려 있다고 상상을 했다. 언젠가 카네기 홀에서 센트럴파크 가는 길 등에 커다란 날개를 달고 가는 사람도 만났다. 파랑새로 변신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 꿀꿀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단순 작업만큼 좋은 게 없다. 어제 파랑새로 변신 해 아파트 지하에 내려가 세탁을 했다. 하얀 거품을 내며 세탁기가 돌아갔다. 복잡한 내 마음도 복잡한 삶도 세탁물처럼 깨끗하게 되길 기도했다. 두 시간 정도 걸려 세탁을 마치니 기분이 좋아져.
어제 종일 하늘은 우울한 멜로디를 부르고 늦은 오후 지하철로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오랜만에 방문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작업하는 분도 오랜만에 뵈고 빈 테이블이 보여 가방을 내려두고 테이블 청소부터 했다. 청소를 마칠 무렵 젊은 여자가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내가 더러운 테이블 닦느라 수고를 한 줄도 모르고. 유모차에 어린아이 태우고 북 카페에 와서 피자 한 조각과 라아지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난 커피 주문하러 가고 손님이 많아 20분 이상 기다렸다. 레귤러커피 들고 테이블로 돌아오는데 옆자리 테이블이 비어 그곳으로 옮겼다. 하얀색 정장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마크 트웨인도 보고 카프카와 조이스 얼굴도 보고.
북 카페에서 잠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서점을 나와 근처에 있는 내서 날 아트 클럽 갤러리에 갔다. 빌딩 벽에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얼굴 조각이 새겨져 있고 갤러리에서 수많은 전시회와 이벤트가 열리고 예술가와 후원자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다. 일부 공간은 멤버들에게 공개되나 갤러리는 주중 일반인에게 오픈한다. 영화 "순수의 시대" "크레이머 크레이머" "맨해튼 살인사건" 등을 촬영한 장소며 2층 코너 벽에 젊을 적 레너드 번스타인과 플라시도 도밍고와 이작 펄만과 앨리스 툴리 등 초상화가 보여.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와 가까워 가끔씩 전시회를 보러 그곳에 간다. 어제도 전시회를 보러 갔다. 희망을 노래하는 봄에 관한 작품 전시회를 보았다. 아름다운 꽃 세상 잔치였다. 하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라일락 꽃향기와 매그놀리아 꽃향기와 수선화 꽃향기 맡으러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에 가곤 해. 문득 지난봄도 생각나.
지하 갤러리로 가니 사진전이 보여. 앤디 워홀의 나이 든 사진도 보여. 젊을 적 앤디 워홀의 사진도 가끔 보나 나이 든 사진은 어제가 처음. 1977년 사진이었다.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사진도 보고 모두 뉴욕 나이트클럽 "스튜디오 54"에서 담은 거. 스튜디오 54는 전설적인 나이트클럽이고 1977년에 문을 열고 1980년에 문을 닫았다. 스티비 원더, 도너 서머, 제임스 브라운 등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무대에 올랐고 앤디 워홀, 엘리자베스 테일러, 믹 재거, 트루먼 카포티, 미하일 바리니시코프, 살바도르 달리, 알 파치노 등이 고객이었다.
전시회를 보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업타운 콜롬비아 대학 밀러 시어터에 갔다. 콜롬비아 대학 지하철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밀러 시어터가 있고 약 한 달에 한 번 정도 무료 Pop Up 공연이 열린다. 입장 시 뉴욕 아이디를 보여주면 초록색 띠를 손목에 채워주고 무료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미국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만 21세. 그래서 뉴욕 신분증을 확인한다.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특별한 공간. 커다란 파란색 스크린이 비치고 낯선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컨템퍼러리 음악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번도 듣지 않은 낯선 음악. 어제 난 블루문 맥주를 골랐고 시원한 맥주가 몸 안으로 들어가니 술에 취하고 잠시 백 년 후 음악은 어찌 될지 생각도 하고 백 년 후 세상은 어찌 될지 상상도 해 보고. 세상의 변화가 갈수록 더 심하고 개인차가 커져만 가는 세상. 갈수록 개인의 삶은 다양해. 잠시 태어나기 전 100년과 100년 후로 여행을 떠났다.
폭풍우가 휘몰라 치던 어제 오전 파랑새로 변신해 세탁을 하고 오후 맨해튼에 가서 책과 그림과 사진의 향기에 취하다 술에 취해 컨템퍼러리 음악 공연을 보니 대학 시절 사랑하던 샤를 보들레르의 "취하라" 시도 떠올라. 늦은 오후 대학 교정에 음악이 울려 퍼지면 잔디밭에 앉아 책을 읽으며 행복했던 시절.
항상 취하라.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것은 없다.
시간의 끔찍한 중압이 네 어깨를 짓누르며
너를 이 지상으로 궤멸시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끊임없이 취하라
...
취하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이건, 시건, 미덕이든 당신 좋을 대로
공연이 막을 내린 후 지하철을 타고 달렸다. 어제저녁 8시 하프와 바이올린을 들을 수 있는 뉴욕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링컨 센터에서 가까운 작은 교회에서 가끔 열리는 공연. 주위에 사는 뉴요커들이 와서 공연을 보고 공연 수준이 정말 높아. 어제 무대에 오른 두 명의 음악가는 그래미상을 받고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한 명성 높은 음악가. 맨해튼에 살지 않으니 약간 고민을 하다 하프와 바이올린 공연을 보러 갔지. 가을밤은 아름다운 하프와 바이올린 선율로 물들어가. 생상의 "백조"와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등 외 내가 알지 못하는 작곡가 곡도 잠시 들으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지. 아래 요요 마와 이작 펄만의 선율로 들어보자.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 가서 7호선에 환승하고 플러싱에 도착해 가을밤 오래오래 버스를 기다렸지. 마법의 성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에 오면 마법이 풀려. 가을밤 깊도록 바람이 불고. 어제는 종일 바람이 심하게 불었지.
2017년 10월 25일 가을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