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주말
링컨 센터, 카네기 홀, 줄리어드

카네기 홀, 링컨 센터 어린이 핼로윈, 북카페, 아트 스튜던츠 리그

by 김지수


토요일 아침 다닐 프리포노프 공연 티켓을 사러 카네기 홀에 도착했다. 전날과 다르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맨해튼에 살지 않고 플러싱 집에서 카네기 홀까지 수차례 환승을 해야 한다. 환승할 적 바로 지하철이 연결이 되지 않아 퀸즈보로 플라자 역에서 오래 기다렸다. 9시가 지나 도착하니 지난봄 시즌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난 할아버지가 왜 늦었니?라고 말씀하셨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는 브루클린에 살고 음악을 아주 사랑하고 자주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본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렸고 평소와 달리 젊은 청년이 내게 번호표를 주었다. 내 번호표는 20번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번호를 보며 "다행이야, 그 번호표는 괜찮아" 하시며 러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획득했다고 말씀하셨다. 평범한 의복을 입고 카네기 홀에서 자주 공연을 보셔 음악에 대한 사랑이 아주 깊은 줄 알았으나 박사학위에 대해서 처음 들었다. 얼마 후 중국인 남자가 왔다. 그분 역시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났다. 러시아에서 온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자 가족을 만난 것 같다고 하며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으셨다. 내 뒤에 선 중국인 남자와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했다.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 아세요?
- 예, 알지요. 작년에 카네기 홀에서 그녀 공연 봤어요.
-훌륭하죠?
-예,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죠. 언니는 첼리스트고 남동생은 피아니스트예요.
-알고 있어요. 참 피아니스트 랑랑 알아요?
- 예, 지난번 카네기 홀 갈라에 랑랑 연주했죠? 프로그램에서 랑랑 연주 봤어요.
-랑랑 손 부상에 대해 알아요?
-아뇨.
-공연 취소는 안 하고 그날 젊은 피아니스트와 함께 연주를 했어요. 랑랑은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고 젊은 피아니스트는 왼손으로 연주를 했어요.
-어머 그래요? 전 몰랐어요.
-다음 카네기 홀 공연은 취소했어요. 중국 예술단 "션윈"과 협연하기로 했는데 손 부상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해요.
- 랑랑 몇 세죠?
- 35세예요.
-사라 장 아세요?
- 예, 장영주 바이올리니스트죠.
-15년 전 뉴욕에서 활동 많이 했어요. 정말 연주가 좋았지요.
-전 그녀 라이브 공연을 본 적은 없어요. 2년 전인가 하와이에서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 열었다고 지인으로부터 들었는데 최근 소식은 잘 몰라요.
-그렇군요. 저도 녹음된 것으로 자주 듣지요. 참 한국 성형 수술이 저렴하고 좋다고 들었어요. 그런가요?
-중국에서 서울에 여행 와서 성형 수술한다는 말을 듣긴 했어요. 수술 가격은 잘 몰라요.

아직 젊은 나이라서 랑랑 손 부상 소식은 충격이었다. 오래전 랑랑 자서전을 읽으며 어릴 적 아버지와 갈등이 많아서 무척 힘들었단 것도 알고 음악가의 길이 순탄하지 않은 것을 두 자녀 특별 레슨을 하면서 느껴서 마음이 아팠다. 음악을 사랑하는 중국인과 이야기를 하다 그만두고 그도 나도 책을 읽으며 카네기 홀 박스 오피스 문 열기를 기다렸다. 토요일 오전 11시가 되어서 문을 열었고 중국인 뒤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다렸다. 중국인은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심이 되고 앞 줄을 보면 조금 불안하다고 했고 내 차례가 되어 박스 오피스 직원에게 러시 티켓을 달라고 하자 "없다"라고 하니 충격을 받았다. 번호표가 20번이라 분명 받을 거라 예상을 했고 링컨 센터와 카네기 홀에서 암표상을 하는 아저씨도 표를 구입해 떠났는데 하필 내 앞에서 끊어져 가슴이 답답했다. 아들과 함께 저녁 러시아 피아니스트 포리노포프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전날 뉴욕 팝스 공연을 카네기 홀에서 아들과 함께 봤지만 내가 더 무게를 둔 공연은 다닐 공연이었다. 중국인 남자는 옆 박스 오피스에서 티켓을 구입한 눈치라 물었다.

-어떤 공연 티켓 구입했어요?
-오르페우스 공연이에요. 당신 시니어 아니죠? 시니어는 1장에 10불 주고 살 수 있어요. 대개 50불 이상해요.

러시아 할아버지는 러시 티켓을 구입해 떠나고 중국인 남자는 다닐 공연 대신 오르페우스 공연 표를 구입해 떠나고 난 허탈한 감정으로 아들에게 러시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고 연락을 하고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으로 갔다. 토요일 오전 어린이 프로그램이 열려서 들러보았다. 그런데 하필 이미 프로그램이 끝났다. 카네기 홀 공연 티켓 구하지 못한 것도 속이 상한데 두 번째 바람을 맞았다. 토요일 오전 11시 콜롬비아 대학 근처에 있는 북 컬처에서 뉴요커가 사랑하는 앱설루트 베이글과 커피와 티를 무료로 제공하니 방문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에서 두 차례 바람을 맞으니 서점에 갈 기운도 없고 어쩌면 거기도 이미 이벤트가 막이 내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분수대가 있는 링컨 센터에 갔다. 핼러윈 어린이 이벤트를 열고 있었다. 이벤트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진행될 예정. 링컨 센터에서 어린이 핼러윈 행사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프랭켄스탸인, 마귀, 드라큘라와 예쁜 복장을 입고 온 부모와 어린이들로 가득한 링컨 센터에서 누가 오페라 표를 나눠주고 있어서 나도 달라고 하니 안 줬다. 핼로윈 축제가 크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해마다 10월 말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열리는 핼로윈 축제만 가끔 보곤 했다. 링컨 센터 초록색 헨리 무어의 조각이 세워진 근처 이태리 레스토랑을 지나다 우연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멋진 테이블 보와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1호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서 환승해 유니언 스퀘어 역에 도착했다. 근처에 있는 스트랜드 서점에 갔다.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과 미국의 3번째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여인들에 대한 책과 미술서적을 보다 우연히 젊은 뉴요커가 나이 든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내용도 조금 읽었다. "만나고 있는 여자는 늙었어. 하지만 아주 섬세해. 그녀를 만나면 특별한 느낌이 들어.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한 번도 이런 느낌이 없었어. 그녀와 사랑은 환상적이야.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거 같아"라는 내용이었다. 역시 뉴욕이야. 뉴요커가 사랑하는 스트랜드에 가서 서점 밖에 비치해 둔 중고책을 보면 새로운 나라로 여행을 한다. 한국에서 전혀 읽지 않은 세상이 종이에 펼쳐져. 이런저런 책을 가끔 구입하는데 젊은 뉴요커가 나이 든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내용은 처음으로 읽고 웃었다. 뉴욕 재미있는 게 많아. 난 약간 고민하다 안톤 체호프 희곡 책을 구입해 이스트 빌리지 아스토르 플레이스에 가는 중 핼러윈 의상을 파는 가게와 핼러윈 분장을 하는 곳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핼로윈 축제가 상당히 특별함을 느꼈다. 저녁에 열리는 파티에 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 상상을 해보았다. 이스트 빌리지에 축제를 보러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나의 착오란 것을 깨달았다. 세 번째 유령을 만난 셈이다. 순간 멍했다. 아침부터 연거푸 예상하지 않은 일만 일어났다.

근처에 있는 이스트 빌리지 분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 식사 비가 아까워 그냥 걸었다. 저렴한 메뉴를 고른다 해도 팁과 세금을 줘야 하는 뉴욕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은 서민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오랜만에 뉴욕대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에서 이벤트가 열리고 뉴욕대 교수가 참석하기도 하고 코미디언이 참석하기도 하고 가끔 방문했다. 천천히 서점을 둘러보다 마음에 든 책 한 권이 100불 가까이해 그냥 구입 안 하고 1권에 99센트 하는 책 3권을 골라 계산대에서 신용카드를 주고 영수증을 받았다. 서점에서 나와 한 달 전 예약을 한 갤러리를 찾았다. 이상하게 길을 잘못 들어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이벤트가 시작하는데 난 그리니치 빌리지를 서성거렸다. 그러다 100년이 더 지난 커피숍도 지나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이 노래를 부른 카페 화도 지나고 유진 오닐의 희곡을 올린 프로빈스 타운도 지나고 근처를 돌고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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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10월 초 오픈 하우스 행사에 방문한 갤러리에서 열린 이벤트에 늦고 말았다. 낯선 화가가 대형 스크린에 작품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는 시간. 토요일 오후 꽤 많은 뉴요커들이 와서 행사를 봐서 놀랐다. 생각보다 덜 흥미로워 난 옆에 있는 조각품 표정을 천천히 봤다. 하나하나 조각품 표정이 다 달랐다. 인상을 찌푸린 것도, 웃고 있는 것도, 사색을 하고 있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알 수 없는 표정도 보였고 조각의 실제 인물은 누굴까 생각에 잠겼다. 갤러리 벽에는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고 조각품도 꽤 많이 전시된 곳이며 내게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내 얼굴 표정은 뭘까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맨해튼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다 플러싱에 돌아가서 시내버스를 타는데 백인 할머니들이 인종 차별을 하는 것을 느낀다.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어느 추운 겨울날 머리에 스카프를 쓴 할머니는 내 앞에 서 있다 너무 춥다고 다른 곳으로 가며 짐을 내려두고 뒤에 서 있는 날 보더니 "저리 가" 라 했다. 그러다 내 손에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 프로그램이 보이면 그때부터 태도가 약간 달라진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카네기 홀, 링컨 센터, 스트랜드, 이스트 빌리지, 뉴욕대 서점을 거쳐 그리니치 빌리지를 헤매다 늦게 갤러리에 도착해 피곤하기도 하고 기운이 없고 낯선 화가 작품이 그다지 날 흥분하게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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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서 나와 근처 워싱턴 스퀘어 파크 안으로 들어갔다. 색소폰과 트럼펫과 피아노 선율도 들려오고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두 명의 음악가도 보았다. 장미꽃이 핀 공원 근처 벤치에는 사람들이 앉아 뉴욕 타임지를 읽거나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뉴요커도 보이고 난 천천히 공원을 빠져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로 갔다. 유니언 스퀘어는 토요일이라 파머스 마켓이 열리고 간디 동상이 세워진 곳에는 두 송이 장미꽃이 피어 있었다. 뉴요커가 사랑하는 파머스 마켓은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맨해튼의 명성 높은 셰프들이 장을 보는 마켓이고 아들 고등학교 동창도 생각나게 한다. 롱아일랜드 제리코 고등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뉴욕대에 진학했는데 지금 맨해튼 5번가 아이 피오리 레스토랑에서 제빵사로 일한다고 페이스북에 올려져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고. 이유는 간단해.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한 친구라서. 작년에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엄마 따러 가서 아들도 책을 읽었는데 그 친구가 전화를 해서 "너 맞아? 북 카페에서 책 읽고 있어?"라 물었다고. 아이 피오리 레스토랑은 맨해튼에서 명성이 높고 아들과 몇 차례 가서 식사를 했다. 명성 높은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하니 고등학교 친구들이 놀랐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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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에 도착하니 평소 자주 만나는 중년 아저씨가 1층 역사책 코너에서 책을 넘기고 있었다. 그분은 대개 오후 2시 반이면 서점을 나가곤 하는데 토요일 오후 3시가 지나 1층에서 서 계셨고 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잠시 책을 읽었다. 그 순간 괴테 인스티튜트 열리는 인공 지능에 대한 이벤트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곳에 갈 에너지가 없어 그대로 책을 읽었다. 언젠가 한바탕 눈빛을 교환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북 카페에 놓인 진녹색 테이블은 사이즈가 작고 대개 혼자 앉기를 선호하나 친구라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전 그 할아버지 앞에 놓인 의자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앉을 것이라 착각하고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날 난 의자만 가져갔다. 그 후 언젠가 내가 북 카페를 떠나면서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종일 이상하게 일이 꼬여 기운이 더 없었고 저녁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려 서점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탔다. 오전 마음을 쓸쓸하게 한 카네기 홀 앞에서 내려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링컨 센터로 걸어가는 중 매일매일 구걸하는 중국인 할머니 홈리스를 봤다. 콜럼버스 서클 지하철역 스타벅스 앞에 가면 만난다. 늘 같은 자리에서 구걸을 하나 집이 없는 홈리스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맨해튼 거리거리를 돌면 홈리스가 보인다. 자주 가는 유니언 스퀘어 쓰레기통을 열어 빈 캔을 찾는 홈리스도 자주 보고 거리 바닥 침낭 속에 누워 괜찮으니 깨우지 말라고 메모를 한 홈리스도 있고 가족과 집이 없고 직장을 잃었다는 홈리스도 자주 보고 배가 고파요 하면서 도와 달라고 하는 홈리스도 보고 내가 사는 플러싱 지하철역 앞에서 홈리스를 본다. "1달러 1달러 주세요"라 외치는 할머니 홈리스가 언젠가 단테 '인페르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아들이 봤다고 해 과거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도 하다. 어느 날 어린아이가 할머니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1달러 1달러 주세요". 내게는 마치 메아리처럼 들렸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가 홈리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가끔 궁금해.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가면 할머니 홈리스가 보인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뉴욕 타임지와 소설을 읽고 있다. 언젠가 댄 브라운의 "오리진"을 읽고 있었다. 두 개의 수레에 짐이 담겨 있고 "만지지 마세요"라 적힌 종이가 보인다. 몇 년 전보다 갈수록 홈리스는 더 많아 보이고 보통 사람들 형편이 어려운지 과거에는 홈리스 앞에 놓인 통에 1달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었으나 요즘은 1센트 구릿빛 동전이 보인다. 반대로 부자들 잔치를 하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면 스탠드 하나에 60억- 80억이라 가격표가 붙여져 있다. 유명한 화가 작품은 수 백억 한다. 30년 전보다 가격이 100배 이상 치솟은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낯선 할아버지도 만났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갤러리에서 멋진 작품을 본 것은 좋으나 가격표를 보면 가슴이 썰렁해진다. 자본주의 꽃이 피는 뉴욕을 새삼 확인하는 공간이다. 경매하는 곳에 가면 단 하나의 작품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카탈로그 넘기면 수 십 개 작품을 구입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단 한 개의 작품이 있다면 평생 먹고 살 거 같은데.

단테 파크를 지나 분수대가 있는 링컨 센터에 도착 자작나무 숲을 지나 헨리 무어 조각이 보인 근처 이태리 레스토랑 앞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 핼러윈 어린이 이벤트 연 낮에 레스토랑은 꽃과 멋진 식탁보로 장식을 해 둬 잠시 환상적인 분위기에 젖었는데 늦은 오후 레스토랑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멋진 정장을 입은 신사들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얼마 후 줄리아드 학교에 도착해 수위에게 가방 검사를 맡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리와 런던 테러 후 검사는 갈수록 심해지고 줄리아드 학교는 더 까다롭다. 클래식 기타 공연을 보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예비학교 학생 공연이 열리고 폴 홀에서는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 곡 연주를 하고 난 밖에서 공연이 끝나길 기다렸다. 좀 더 빨리 와서 피아노 공연을 볼 걸 그랬나 조금 후회도 되었다. 저녁 6시 클래식 기타 공연이 시작하고 나 보다 좀 늦게 중년 여자가 도착해 물었다.

-여기 빈자리 앉아도 되나요?
-예, 그러세요. 빈자리랍니다.
-감사해요.
-천만에요.

잠시 후 클래식 기타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함께 연주를 했다. 옆 자리에 앉은 중년 여자는 가방에서 메트 오페라 공연 티켓을 꺼내 세어보고 있었다. 한두 장이 아니라 수 십장이었다. 뉴욕에 와서 오페라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가끔 링컨 센터 메트에 가서 오페라를 보곤 하고 누군가 매일 오페라를 보겠지 상상도 했으나 실제 인물을 가까이서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번 시즌 아직 링컨 센터에 가서 한 편의 오페라를 감상하지 않은 난 놀라고 말았다. 매일 오페라를 보고 싶어도 오페라 공연이 열리지 않으면 공연 보는 게 불가능할 텐데 뉴욕은 생활의 여유가 있다면 오페라 시즌 매일 가서 오페라를 볼 수 있는 도시다. 오페라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내게도 자주 링컨 센터에서 멤버십에 가입하라고 전화가 걸려오고 아직 복잡한 사정이라고 하면 전화를 끊는다. 조명이 비춘 폴 홀 무대에서 음악가들이 파가니니, 알베니스, 브람스, 아스토르 피아졸라, 로드리고 곡 등을 연주했다. 대학시절 클래식 기타 동아리 반에서 활동했고 선배들과 동창들 얼굴이 떠올랐다. 어느 날 내가 뉴욕에 오게 될 줄 몰랐고 대학 졸업 후 우린 뿔뿔이 흩어졌고 소식이 끊겨 어찌 지낸 줄 서로 모른다. 대학 시절 기타반 동아리 활동으로 무척 바빴다. 매주 연습하고 레슨 받고 봄가을 공연 준비하면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왔다. 여름방학과 겨울 방학에 수련회를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도 상기시켰다. 피아졸라 곡 연주 시 비올라 음색이 정말 죽여줬다. 아, 비올라 음색이 저리 아름다워하면서 곡을 들었다. 대학 시절은 오로지 기타만 연습하고 지내도 행복할 거 같았고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공연이 막을 내리자 서둘러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타임 스퀘어 역에 가서 환승했다. 토요일 밤 지하철은 만 원이었다.. 내겐 전부 낯선 사람들인데 모두 어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했다. 책과 신문을 읽는 사람도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도 보이고 눈을 감거나 잠들어 있는 사람도 보인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종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배가 고프니 더 피곤하다. 플러싱에 도착하니 1달러 달라고 외치는 홈리스가 보이고 메아리처럼 어린아이가 1달러 주세요, 라 응답을 하고 난 웃고 말았다. 플러싱에 도착해 다시 오래오래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집에서 맨해튼에 가려면 수차례 환승하고 바로바로 연결이 되면 그래도 더 나으나 대개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밤늦게 도착해 고등어조림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랑랑 손부상 기사를 찾다 우연히 조성진 피아니스트 글을 읽었다. 11월 19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2017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의 협연자가 랑랑 대신 조성진으로 변경되었다고. 랑랑에게는 비극적인 소식이고 반대로 조성진에게 기쁜 소식이 될 거 같다. 제 17회 쇼팽 피아노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최초로 우승을 한 조성진을 살인적인 공연 스케줄로 힘들 거 같고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훌륭한 스승이 없다면 피나는 노력과 정열과 운이 없다면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룬 조성진. 매일매일 그는 피아노 건반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눌 거 같아.

어제도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 카네기 홀에 도착했다. 가을 시즌 공연이 시작된 후로 첫 방문. 9시 즈음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아침 6시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청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고 플러싱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수차례 환승해 맨해튼에 갔다. 누가 도착하면 근처 마켓에 커피를 사 마시러 갈 텐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전 11시경 박스 오피스가 문을 열고 11시 5분 전 즈음 몇몇 사람들이 왔다. 갑자기 추워져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었으나 두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게 고역이었다. 가장 먼저 러시 티켓 2장을 구입해 기분이 좋았으나 얼른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근처에 있는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 갔다. 입구에 저녁 핼러윈 의상 콘테스트가 열린다고 적힌 메모가 보였다. 엘리베이터 옆 코너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그 후 어디로 갈지 망설이다 부자들 잔치를 여는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갔다. 19세기 유럽 미술과 거장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비교적 조용한 공간이나 그날 방문객이 꽤 많았다. 연인처럼 보이는 두 명의 남녀는 손을 꼭 잡고 갤러리를 천천히 둘러보고 작품을 구입하려는지 손전등을 비춰 작품을 아주 자세히 보는 사람도 보이고 제복을 입은 직원들은 누가 무얼 하는지 눈치를 보고 갤러리 공간에 멋진 조명이 비추고 난 잠시 갤러리를 서성거렸다. 낙엽이 수북이 떨어진 곳에서 젊은 남자가 사랑을 고백한 풍경으로 보인 작품을 보고 여자는 수줍을 표정을 짓고 뭐라 답할지 고민하게 보였다. 붉은색 머리띠를 한 젊은 아가씨는 늙은 부자 남자와 젊은 연인 사이에 있다. 돈 많은 늙은이가 결혼을 하자고 속삭인 듯 짐작이 된다. 젊은 연인은 나랑 결혼해줘, 라 말하는 눈치고 사랑이냐 돈이냐, 로 고민을 하는 아가씨는 과연 누굴 선택할까.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돈 많고 주름살 가득한 노인 오른손에 보석함을 들고 왼손에 진주 목걸이가 보여. 돈과 사랑 모두를 선택하면 좋을 텐데 하나만 고르라면 고민이 되겠지. 돈을 좋아한 사람은 돈을 고를 테고 사랑이 전부다, 라 생각한 사람은 사랑을 고를 테고. 사랑이 평생 밥 먹여주니?라고 한 사람도 있을 테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말대로 결혼은 어느 쪽은 선택하든 후회할지 모르나 인간은 고민을 한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는 내용의 프랑스 그림도 보고 한국 영화감독 홍 상수가 떠올랐다. 유부남 영화감독(문성근)을 사랑하게 된 여배우 영희(김민희)의 이야기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게 된 김민희. 홍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거라고 세상에 소문이 파다하고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연인 관계임을 밝혔다. 지난번 제 55회 뉴욕 영화제에서 홍 감독 토크쇼를 봤다. 한국에서 명성 높은 영화감독이나 난 그날 처음으로 홍 감독 얼굴을 보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으면서 홍 감독 사생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말 힘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고 영화 강의도 하고 저 예산 영화감독이라 하고. 오십 대 중반 홍 감독은 대학생 딸에게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 그 여자가 내게 용기를 줘. 이제 그 사람과 함께 할 거야"라고 했다고. 사랑 좋지. 안 그래? 좋지? 사랑을 위해 아내와 딸을 떠나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만약 여배우 김민희가 홍 감독 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만약 김민희가 홍 감독 부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만약 홍 감독과 부인 입장이 거꾸로 바뀐다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할까. 무슨 말이야? 홍 감독이 이렇게 말할까. 우디 알렌도 어린 딸과 함께 살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왜 세상이 이래라저래라 해. 얼마 남지 않았어. 오십 대 중반이야.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사랑도 사랑 나름일까. 어쩌면 홍 감독도 유부남 감독과 젊은 여배우 사랑이 과연 불륜인지 사랑인지 너무 고민하다 그래 영화를 만들어 보자 그랬는지 몰라. 그래서 작품을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상까지 받았으니 그래 봐라 할까. 인간이라 고민도 했을 거라 짐작해. 김민희는 홍 감독 뮤즈라 알려졌고 그럼 홍 감독 뮤즈는 지금껏 단 한 명 김민희였단 말인가. 홍 감독 뮤즈가 많다고 소문이 났지. 홍 감독도 피카소 좋아하나. 피카소 뮤즈 많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물론 난 홍 감독이 어느 쪽을 선택하든 관심이 없지. 홍 감독 부인이 이혼을 안 한다고 하니 그 부인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 본거지. 난 김소월처럼 살 거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소월이 '진달래꽃'에 그랬잖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라
...

갈 테면 가라지. 저 멀리 우주라도 보내줘야지. 가라, 가라, 가라 저 멀리 저 우주로. 하하

얼마 전 링컨 센터에서 베를린에서 온 가수 공연을 봤는데 '사랑은 담배 같아',라고 하더군. 뜨겁게 불꽃이 피다가 지면 바로 재만 남고 끝나지. 베를린에서 온 가수는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했다. 목소리가 예술이야. 라흐마니노프 음악 같은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연기도 정말 훌륭하고 노래도 좋고 그날 밤 황홀했어.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이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게 이슈야. 결혼할 때 맹세 하지. 백 년 동안 하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동고동락한다고 약속하지만 그건 말 뿐이고 한낮 약속에 불과하지. 결혼이란 것도 어느 작가의 말처럼 한낮 무대에서 연극을 한지도 모르고. 그 연극은 어느 날 진실이 밝혀지면 막을 내리지. 막이 내린 후 부부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도 제각각. 싫어도 그냥 사는 경우도 있고 사랑 없는 무늬만 부부도 얼마나 많아. 이혼하면 사회적 편견과 가난에 시달리니 그냥 사는 거지. 반대로 지상의 행복이 넘치니 저 세상에 가서 다시 만나자고 한 부부도 있으니 그건 특별한 운을 타고난 거지. 70억 인구 가운데 몇 명이나 있겠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고 살아가면 좋을 거 같으나 결혼의 현실은 많이 다르지. 반면 아름다운 노부부도 가끔씩 만나는 뉴욕. 지난번 첼시에서 오페라 보러 갔다 아름다운 노부부를 봤지.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차림의 복장이고 할머니 몸매도 평범해. 나이가 들어도 친구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서로 존중하고 살아가는 게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지. 독신율 높고 이혼율 높은 뉴욕에도 아름다운 노부부를 가끔 보곤 한다. 함께 전시회와 오페라 보는 노부부.

맨해튼 메트 뮤지엄 유럽 전시관에 걸린 마네의 작품 '스페인 가수'도 생각나게 한 작품도 보여. 마네는 그 그림으로 1861년 좋은 평가를 받아 파리 살롱에 데뷔하게 된다. 진녹색 나무 의자에 앉은 스페인 가수는 남루한 복장을 입고 낡고 오래된 구멍 난 신발을 세밀하게 묘사가 된 작품이다. 캔버스에 곱디 고운 얼굴을 담은 그림도 보이고 다시 한번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게 해. 크리스티 경매장 입구 코너에 빈센트 반 고흐와 프란시스 베이컨 그림도 보여. 인간의 고통을 담은 베이컨 초상화 값은 어마어마해. 자본주의 세상에 이름 없는 보통 사람 삶의 무게는 저 한 장의 그림으로 대변을 할까. 지금 베이컨 작품은 어마한 금액으로 거래되지만 살아생전 그렇게 비싼 값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미드타운 어느 갤러리에서는 법정 소송도 있었으나 베이컨이 갑자기 죽은 바람에 소송이 끝났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멋진 바리스타가 만들어준 하트 모양의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진한 초콜릿색 가죽 소파에 앉아 휴식을 했다.


라커 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나와 걸어서 줄리어드 학교에 첼로 파이널 대회를 보러 갔다. 예선을 통과한 여섯 명의 학생들이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늦가을 느낌을 주는 엘가의 첼로 곡 가을비 내리는 거리 수북이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기분이 들어. 같은 곡을 다섯 번 들었지. 피아니스트 반주도 정말 멋지고 한인 학생 첼로 연주도 좋았다.


나도 한때 첼로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두 자녀 어린 시절 바이올린 레슨 하다 나도 배우고 싶은 마음에 교사 시절 배웠던 바이올린을 그대로 할까 아니면 첼로 레슨을 받을까 고민하다 첼로를 선택했다. 두 자녀 바이올린 특별 레슨 시키면서 매일 함께 연습하면서 나도 첼로 연습을 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어느 날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레슨 받게 되었다.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음반을 들으며 행복했는데 어느 날 내가 그 곡을 레슨 받게 되리라 미처 상상을 못 하였으나 현실로 이뤄져 꿈이 현실로 나타났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첼로 레슨은 얼마 가지 않아 중단이 되었다. 어느 해 여름날 내 첼로는 거실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으아 고통 소리 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첼로 장례식은 운명의 서주 곡이었나 몰라. 그 후 알 수 없는 운명이 노크하는 것을 들었다.


마지막 학생 연주까지 듣고 누가 상을 받는지 알고 싶었으나 그날 저녁 아트 스튜던츠 리그 2층 갤러리에서 핼러윈 의상 대회가 열려 마지막 학생 첼로 공연은 안 보고 떠났다.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핼러윈 의상 대회가 열리는 미술 학교에 도착. 대공황시 뉴욕에 와서 살던 잭슨 폴락도 렌트비 걱정을 했다고 해. 그래서 거리에 그림을 내다 팔았다고. 잭슨 폴락도 공부하고 근처에 가면 꼭 들려보는 갤러리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어떤 의상을 입고 오는지 궁금했는데 기대만큼 만족을 주지는 않았다. 1등에게 한 달 수업료를 면제해준다고 해서 더 기대를 했지. 화이트 와인 한 잔 마시며 화가들 핼러윈 의상을 보고 난 카네기 홀에 공연을 보러 갔다. 저녁 8시 뉴욕 팝스 공연이 열렸고 카네기 홀 앞에서 아들을 만나 함께 들어갔다. 올가을 처음으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봤고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 나온 곡도 오페라 유령에 나온 곡도 듣고 조지 거신의 곡도 듣고 몇몇 곡은 아는 곡 나머지 곡은 낯선 곡.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했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한밤중이지. 정말 맨해튼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만 번도 더 생각을 해.

지난 목요일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매네스 음악학교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 보러 갔다. 세 명의 학생이 바이올린 곡을 연주했고 첫 번째 학생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빨간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검은색 그래드 피아노가 반주를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매일매일 연습했던 바로 그 곡. 매일매일 눈만 뜨면 그 곡을 들었다. 줄리어드 예비 음악학교 오디션 볼 때 준비한 곡이고 몇 차례 오디션 치렀는데 눈물을 흘렸다. 뉴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 와서 세계적인 천재들이 모인 학교에서 오디션 치른 것만으로 쉽지 않지. 미리 서류를 보내고 1차 서류 통과를 해야 2차 오디션을 치를 수 있었다. 1차 서류는 항상 통과했고 2차 오디션에 합격할 거라 생각했지만 힘든 도전이었고 나중 생각을 바꿔 맨해튼 예비 음악학교 오디션을 치러 합격을 했고 거기서 수년 동안 음악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학생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롱아일랜드에서 줄리어드 학교에 매주 레슨 받으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갔다. 펜스테이션 역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음악 학교에 가는 것을 반복했고 매주 토요일 음악 학교에서 수업받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미국 고등학교 과정이 많이 힘들고 어렵고 음악 학교는 따로 준비해야 하고 매주 오케스트라 곡도 연습해야 하고 동시 개인 레슨을 위해 연습해야 할 분량이 상당했다. 맨해튼에 산다면 훨씬 덜 피로했을 텐데 맨해튼에서 집까지 왕복 교통 시간도 꽤 되고 돌아봐도 역시 힘든 일을 해냈다. 맨해튼 예비 음악 학교에서 열리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다 맨해튼 곳곳에서 많은 이벤트가 열리는 것도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맨해튼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맨해튼은 두 가지 색채가 있지만 문화예술면에서 천국이지. 천국을 발견하는데 오래 걸렸지. 매일매일 맨해튼에 지하철로 가서 여기저기 노크하고 문을 열고 그래서 알게 된 거지. 오랜 세월이 걸렸어. 아직도 맨해튼은 내가 잘 모른 게 많을 거라 짐작하지만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교육받고 자란 뉴요커보다 더 많은 문화 정보를 알고 있지. 암튼 아들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저녁 6시 줄리어드 학교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보기 위해 지하철역에 갔다.

저녁 6시 줄리어드 학교 폴 홀에서 줄리어드 학교 총장님과 학장과 지휘자 세 분이 모여서 대담을 하나 내게는 좀 무리다 싶어 매주 목요일 무료 공연이 열리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 갔다. 저녁 7시 반에 시작하나 좀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했다는 가수. 밴드 멤버는 이태리, 독일, 네덜란드라고 하고. 세계적인 가수 공연을 보게 되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에 반했다. 라흐마니노프 음악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는 남자 가수. 아 아 아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면서 가을밤이 깊어갔다.


2017년 10월 29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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