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8월이 찾아오는 7월의 마지막 날 아침. 세월은 정말 빠르다. 여름이 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미뤄지고 말았다. 하루하루는 선물이고 시간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아서 낭비하지 않으려고 매일 스케줄을 만들어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삶이 항상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하얀 냉장고에 수박이 떨어진 지 오래다. 무더위 수박이 참 좋은데. 얼마 전 메트로카드 30일 정액제가 끝나 20불어치 충전을 하니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탈 때 아주 조심스럽다. 1회 교통비는 2.75불. 결코 저렴하지 않다. 뉴욕 서민에게는 렌트비와 교통비가 부담스럽다.
얼른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30일 무한 메트로카드를 구입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실수를 한 거 같다. 뉴욕시에 살면 쇼핑은 안 하더라도 최소 메트로카드는 있어야 하는데. 차도 없고 맨해튼에 살지도 않은데 메트로카드 없이 지내기 너무 불편하지.
맛있는 수박을 먹지 않아서 실수를 했을까. 어제는 잊지 못할 실수를 했다. 아이폰 카메라 문제로 지난 월요일 플라자 호텔 맞은편 애플 스토어에 아들과 함께 미슐랭 스타 아이 피오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방문했는데 손님은 많아 복잡하고 인터넷 속도가 아주 느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아이 클라우드에 옮기는 작업을 끝내지 못했다. 그날 꼭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는데 오후 6시가 되어가자 포기를 하고 다음날 오후 3시에 약속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어제 아침 세탁을 하고 글쓰기를 하고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애플 스토어에 방문했다. 맨해튼 플라자 호텔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약간 넉넉해 플라자 호텔 푸드 홀에 들어가 커피 한 잔 주문해 마시고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 영화를 상영하는 The Paris Theatre를 지나 귀족들의 사랑을 받는 럭셔리 백화점 Bergdorf Goodman 5th Avenue Store 쇼윈도를 보며 애플 스토어에 도착했다. 2층 Genius Bar에 올라가 직원에게 내 이름과 약속 시간을 말하자 2시 55분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해서 빈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2시 55분 다시 입구 쪽으로 가서 직원에게 말했다.
-2시 55분이에요. 조금 전 당신을 봤어요. 어떻게 해요?
- 너 처음이야.
-조금 전 봤는데. 네가 2시 55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널 본 적이 없어.
애플 스토어 직원들은 짙은 청색 셔츠를 유니폼처럼 입고 어제 입구에서 만난 직원은 20대처럼 보이는 흑인이었다. 그는 날 처음 봤다고 난 그를 봤다고 말하고. 덧붙이자면 2시 45분경 도착해 직원과 말하고 약 10분 정도 기다린 후 2시 55분 다시 찾아갔는데 난 처음 본 흑인과 나중 본 흑인과 동일 인물이라고 착각을 했다.
2시 55분에 만난 흑인 말에 의하면 내가 본 두 흑인은 달랐다. 같은 피부색이고 같은 20대, 비슷한 헤어스타일, 같은 셔츠를 입은 흑인을 내가 착각할 수도 있었겠다. 암튼 그의 주장과 내 생각은 달랐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두 번째 만난 흑인은 날 처음 만났다고 하면서 아들과 날 2층 코너 테이블로 안내하더니 다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새로 앉은 곳은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았다. 분명 2층 같은 공간인데 부분별로 에어컨 시원함이 달랐다. 손님은 많아 복잡하고 소란하고 우린 직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직원은 오지 않았다. 에어컨이라도 시원하면 괜찮을 텐데 날씨도 덥고, 휴대폰이 고장으로 내 마음도 덥고, 에어컨은 잘 가동되지 않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이상해 2층 입구 직원에게 찾아가 말했다. 시간별로 다른 직원이 손님을 받았다. 새로운 직원과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약속이 취소되었다고.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날 처음 봤다고 말하는 흑인 청년에게 난 두 번 봤다고 딱 두 마디 했는데 우리 약속을 취소해버렸다. 한마디로 골탕을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듯.
어쩔 수 없이 다시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만 했다. 오후 3시 약속이 쭉 미뤄졌다. 빨리 끝내고 다른 일을 보려고 했는데 흑인 직원과 한바탕 소동으로 시간만 죽였다.
어제 분명 내가 먼저 실수를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 실수는 나의 고의가 아니었다. 아직도 난 흑인 두 사람이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대개 백인과 흑인은 아시아인이 비슷비슷하다고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시아인 역시 마찬가지다. 두 명의 흑인은 체격이 비슷하고, 헤어스타일도 비슷하고, 같은 셔츠를 입은 20대 청년이라 내 눈에는 동일 인물로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기업 애플 스토어에서 서비스 직에 종사하는 흑인은 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어제는 나의 실수였지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새로운 직원이 우리 테이블에 왔다. 내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이것저것 시도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해야 하고 비용은 약 86불이었다. 휴대폰 카메라 수선하면서 흑인과 트러블이 생겨 시간은 시간대로 죽이고 예상하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하지만 손님에게 서비스를 하는 직원이 나의 착각에 꼭 그래야만 했을까. 만약 내가 애플 스토어 사장이라면 그런 직원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 할인 매장 센추리 21에 가면 고객 서비스를 평가해달라고 말한다. 어제 애플에서는 고객 서비스를 평가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휴대폰 수선하러 간 김에 노트북도 가져갔다. 휴대폰 카메라를 수리하는 동안 노트북 서비스를 받고 싶었는데 휴대폰과 카메라 수리하는 직원은 달라 새로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 오래오래 기다린 후 직원이 우리에게 와서 무슨 내용인지 물었다. 노트북에 사진 업로더가 잘 안된다고 말하니 내 휴대폰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휴대폰 카메라 수선 중이라고 하니 그가 웃었다. 그러고 나서 혹시 내 노트북 사진을 봐도 되냐고. 괜찮다고 말하니 그가 웃으며 내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혹시 프라이빗 사진들이 있을까 봐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물은 눈치였다. 그는 몇 마디 하고서 내 노트북 문제가 아니라 아이 클라우드 저장 공간이 부족해 생긴 문제라고. 매일 맨해튼에 가서 많은 사진을 찍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어제 아들과 나의 오후는 애플 스토어에 반납했다. 그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고 그 많은 비용이 들지도 몰랐다. 흑인 직원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의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아들은 엄마가 먼저 실수를 했으니 잊어야 한다고.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 다시는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아야겠다. 한마디 말을 할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해야겠다.
어제저녁 7시 어퍼 이스트 사이드 Temple Emanu-El에서 나움버그 콘서트가 열렸다. 어제는 Orchestra of St. Luke's 공연이었다. 애플 스토어에서 나와 어디서 저녁 식사를 할지 고민하다 콜럼버스 서클 홀 푸드 매장에 가서 아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근처 메종 카이저에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빵을 먹고 공연을 보러 갔다. 노트북과 책 2권이 담긴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걸으니 아들은 땀이 줄줄 흘렀겠지. 콜럼버스 서클을 지나 메트로폴리탄 클럽을 지나서 걸었다. 어제 쉐릴 할머니도 만났다. 매년 여름 열리는 무료 공연을 보러 온 청중들이 아주 많았다. 시원한 에어컨이 켜지면 좋을 거 같은데 덥기만 했다. 아들은 어제 처음으로 맨해튼 부촌 Temple Emanu-El에서 공연을 감상했다.
어제는 가고 새로운 날이 밝았다. 얼른 운동하러 다녀오고 밀린 작업을 해야겠다. 평생 열심히 살아왔다. CEO도 아니면서 왜 항상 바쁜지 몰라.
7. 31 수요일 아침 8시가 지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