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 특별전 CAMP
8월 17일 토요일
주말 플러싱 공원 문이 닫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초록 나무 아래서 운동을 했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운동을 하니 더 좋았다. 전공 시험공부할 때 듣는 매미 소리는 지옥 같은데 산책하거나 운동하면서 듣는 소리는 좋기만 하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동네 주민도 만났다. 무더운 여름날에서 공원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왜 트랙 하는 공원은 닫고 테니스장은 열어둔 것인지. 매일매일 테니스를 치는 팬들이 아주 많다. 운동을 하고 나서 장을 보러 걸어갔다. 하얀 냉장고는 어느새 텅텅 비어가니 먹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매일 외식하는 뉴요커들도 많은데 서민들은 외식하기도 겁난다. 마트에 도착해 우리가 사랑하는 복숭아, 아보카도, 토마토, 사과 약간과 바게트 한 개의 베이글 3개와 통닭 한 마리를 샀다. 젊은 직원은 우리를 기억하고 미소를 지었다. 마트 주인이 음악을 사랑하는지 음악을 들으며 장을 보니 더 좋아. 아들과 둘이서 나눠 터벅터벅 매미 소리 들으며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식사를 했다.
8월 17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 사이 'Summer Streets' 축제가 열리고 올해 마지막 날이었는데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매년 8월 토요일에 열리는 축제. 올해 8월 3일, 10일, 17일 열렸다. 행사가 열린 곳은 차량 통제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요가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뉴욕에서 여름 동안 참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서머스트리트 축제 또한 사랑을 받는다. 2018년 30만 명이 참가했다고. 아들은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맨해튼을 달리니 기분이 좋았다고.
토요일 오후 식사를 하고 늦게 시내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눈앞에서 달리는 시내버스를 놓치고 터벅터벅 걸어서 몇 정거장 더 가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탑승했는데 주말 승객들이 아주 많아 혼잡했다. 겨우 파란색 시내버스에 탑승했는데 옆에 서 있던 흑인이 내 발을 밟았다. 실수로 그런 거니 화를 낼 수도 없고 기사는 몇몇 승객들에게 내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승객들이 운전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였으니 할 수 없이 내린 승객들도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모두 행복을 찾으러 떠났을까.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에서 7호선을 탑승했는데 역시나 승객들이 많아서 복잡했다. 갑자기 인구가 폭발했나. 상당히 무더운 여름날 모두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었다.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복잡하지 않으면 탈만 한데 지옥철이면 기분이 다운이 된다. 그런다고 다시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토요일 오후 6-9시 사이 할렘에서 재즈 모빌 축제가 열리는데 배터리 댄스 축제 보느라 한동안 가지 않아서 꼭 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내 발길은 다름 아닌 메트 뮤지엄으로 향했다. 잠시 뮤지엄에서 쉬고 재즈 축제를 보러 가도 되지 하면서 뮤지엄 입구에서 가방 검사를 맡고 안에 들어가 티켓을 받고 느릿느릿 걸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밤 9시까지 오픈하니 주중 바쁜 사람들은 주말에 전시회를 보러 간다.
5천 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메트 뮤지엄. 방대한 전시회를 하루에 다 볼 수 없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전시회는 메트 특별전. 9월 8일 막이 내린다는 CAMP전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번 두 자녀랑 함께 방문했는데 방문자가 아주 많아서 복잡했는데 토요일 오후는 전 보다 덜 복잡하니 좋았다. 아무리 좋은 전시회라 하더라고 복잡하면 피곤해지니 괜히 갔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디 갈랜드의 '오버 더 레인보우'음악도 흐르니 더 좋았다. 왜 카바라지오 작품을 그곳에 걸어두었을까 생각도 했다.
다시 봐도 좋았던 캠프 특별전. 내 몸과 영혼이 따뜻해졌다. 죽어있는 감각들이 꿈틀 하며 열린 듯하다. 장미꽃 잎들이 서서히 열리듯이 특별한 전시회를 보면 색의 마술에 내 몸의 감각들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며 환호성을 지른다. 내 감각이 열려있어야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감각이 죽어 있거나 잠들어 있다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은 감각이다. 감각이 마비된다면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뉴욕 공연과 전시회가 좋은 점이 바로 그런 점이다. 자주자주 더 많은 공연과 전시회를 보면 더 많은 감각들이 열린다. 블로그에서 인연이 된 패션 디자이너도 생각났다. 그분은 서울에서 어떻게 지낼까 생각에 잠겼다.
계단을 올라가 로댕 조각전 가는 길 우연히 니콜로 파가니니를 담은 드로잉을 보았다. 파가니니 젊은 시절 미남이었어. 파가니니 드로잉을 보니 바이올린 음악이 생각났다. 파가니니 카프리스에 조예 깊은 알렉산더 마르코프도 생각나고. 아들 교수님 Albert Markov 생신 잔치에 초대받아 가면 교수님 제자들과 아드님과 사모님도 만나 함께 뒤뜰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는 얼마나 검소하게 사는지 정말 특별한 분을 알게 되어서 영광이다. 교수님 댁은 마치 영혼 박물관 같다. 식사 후 함께 바닷가로 산책을 하러 갔다. 코네티컷 주에 있는 교수님 댁 찾아가는 길은 운전을 사랑하지 않은 내게는 고역이었지만 코네티컷주는 뉴욕주 보다 훨씬 더 공기가 좋아서 몸이 날아갈 듯 좋다.
젊은 시절 파가니니 모습을 보며 잠시 추억에 젖다 1927년 뉴욕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던 National Horse Show를 담은 작품을 보며 놀랐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록 공연과 닉스 프로야구 경기나 아이스하키 경기 등이 열린 줄 알았는데 별별 이벤트가 다 열린 곳이야. 뮤지엄에 가면 새로운 문화에 노출되며 하나씩 배우게 된다.
자주 방문하는 2층 유럽전 갤러리에도 가서 기웃기웃하다 밀짚모자 쓴 고흐의 자화상도 다시 보았지. 파란색 고흐 눈동자, 황톳빛 수염과 파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약간 수척한 고흐의 모습. 고흐가 하늘나라로 떠나기 3년 전 작품인가. 말하자면 고흐 30대 초상화다. 고흐 초상화 보며 나의 30대도 생각났다. 교직에 종사하다 어린 두 자녀 키우기 위해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두 자녀 교육에 힘쓰던 시기. 하루가 24시간인데 얼마나 바쁘던지. 혼자의 힘으로 두 자녀를 키우기가 정말 힘들더라. 교사 시절이 훨씬 더 쉬웠다. 학교에 가면 내 삶이 있고 내 시간이 있었다. 두 자녀 육아 시절은 송두리째 내 삶을 다 바쳐야만 했다. 두 자녀가 특별 레슨을 받아서 더 힘들기만 했다. 두 자녀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습을 도와주고 모든 스케줄 관리를 하니 엄마는 특별한 매니저 역할을 했다. 그때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가 정말 어려웠다. 분위기 좋은 카페는 하늘나라에 있었다. 혼자 분위기 좋은 카페 가서 휴식할 시간이 어디 있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살림, 아이 아빠 뒷바라지, 그리고 두 자녀 특별 매니저 역할을 했다. 두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먼 훗날 내가 뉴욕에 살게 될 거라 미처 생각도 못했다. 하루하루 두 자녀 교육에 애를 쓰며 정신없이 살던 시절. 너무너무 바쁘니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친구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꼭 필요한 일 아니면 할 수없던 시절. 사실 전화받는 것도 싫어했다. 이상한 광고 전화든 수화기를 받으면 끊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 대화를 계속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모임에 가면 고액 과외 이야기, 쇼핑 이야기, 여행 이야기, 시댁 이야기 등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나 두 자녀 모두 특별 레슨을 시키는 내 입장과 그들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메트에서 전시회를 보고 재즈 모빌 축제를 보러 가려고 메디슨 애비뉴로 걸어가 시내버스를 기다렸는데 해는 떨어져 점점 어두워가고 바로 시내버스는 오지 않고 순간에 나의 마음은 갈대처럼 변해서 렉싱턴 애비뉴 86번가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59번가에 내려 퀸즈보로플라자 지하철역에 가려고 기다리는데 주말 얼마마 복잡하던지. 지하철은 바로 오지 않고. 지하철역은 사우나장처럼 덥고. 퀸즈보로플라자 역에 도착하니 또 얼마나 복잡하던지. 아,.. 겨우 7호선에 탑승하고 플러싱에 도착하니 시내버스가 막 떠나버려 할 수 없이 터벅터벅 밤 길을 걸었다. 맨해튼에 산다면 더 좋을 텐데 플러싱에 사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지옥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다녀왔어. 재즈 축제를 보지 못해서 아쉽기만 하다.
매미는 종일 쉬지 않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