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겹다, 세상에 하나뿐인 브런치북 발간

by 김지수

8월 28일 수요일





내 생에 처음으로 브런치북 <뉴요커의 보물지도>를 발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숨겨진 보물을 찾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뉴욕 메트로 카드 하나만 들고도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 뉴욕이 보물섬이란 것을 늦게 알았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올 적 뉴욕 문화 예술에 대한 정보 가득한 책이 있었다면 조금 덜 고독했을까.


뉴욕에 올 적 정보를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구할 수 없었다. 맨해튼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음악가를 소개받으려 했지만 서울에서 지낸 그는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매일 레슨 하는 입장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맨해튼 렌트비와 물가는 살인적이고 음대생은 너무너무 바쁘게 지내니 많이들 뉴욕 문화를 모르고 즐길 시간조차 없다. 대개 유학생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다 고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더 많다. 공부하고 레슨 준비하고 공연 준비하니 뮤지엄과 첼시 갤러리에 갈 시간도 없다고 한다.


삶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만약 직장에서 계속 일을 했더라면 결코 맨해튼이 보물섬이란 것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잃고 말았다. 연구소에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게 되었다. 위기와 절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정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뉴욕에 올 때 딸 선생님으로부터 "롱아일랜드가 제리코에 있어요."란 말을 듣고 왔다. 아무것도 모르니 맨해튼에 오려고 했는데 아들 친구 엄마가 맨해튼 보다는 롱아일랜드 학군이 더 좋다고 해서 롱아일랜드 딕스 힐(Dix Hills)에 집을 구했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올 때는 뉴욕에 대한 정보가 귀했다. 무얼 하든 물어볼 사람도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구글에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적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인 학생 한 명 없으니 얼마나 힘들어했던가. 교정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을 가질 듯 행복할 거 같은데 인도에서 온 2명의 학생들과 필리핀에서 의사 생활하다 미국에 이민 온 중년 남자를 제외하고 아시아 출신 학생은 없었다. 인도 억양은 강해서 알아듣기도 힘들고 멀리 뉴저지에서 온 필리핀 출신 의사는 직장 생활하니 늘 바쁘고. 의사란 신분이라서 쉽게 영주권을 받았지만 미국에서 의사 과정을 다시 받아야 하니 그는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병원에서 의료계 계통의 일을 한다고. 필리핀 출신 의사는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해서 반기문 총장을 만나러 가자고. 반기문 총장에게 도움을 청하면 도와줄 것이라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반기문 총장이 낯선 내게 도움을 주었을까. 세상에는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


40대 중반 유학 와서 이름 없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수도승이 되는 길이었다. 두 자녀는 중고교생이고 매일 학교에 픽업해야 하고 살림하면서 전공 서적과 몸부림치면서 낯선 외국어와 컴퓨터와 전쟁을 하던 시절. 친구 한 명 만나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디었다. 카페가 뭐냐. 영화가 뭐냐. 40대 중반 한국에서 지낸 친구들은 생활의 기반을 잡고 도자기를 굽거나 수영을 하거나 재즈바를 가거나 골프를 치거나 등 취미 생활을 하는데 낯선 나라에 와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은 무에서 시작하니 말로 할 수 없는 고생의 시작이었다. 누가 조금만 도움을 줘도 덜 힘들었을 텐데 우리 가족을 도와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원은 최소 B학점을 받아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대학 과정을 졸업했더라면 석사 과정이 덜 도전이었을 텐데 대학시절 전공과 전혀 다른 전공을 시작하니 모든 게 다 새롭기만 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전공서적을 펼치고 눈물로 읽어갔다. 누구라도 낯선 나라에 가서 외국어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 그때는 매미 소리도 소음이었다. 오로지 전공 책을 읽고 수업 준비를 했다. 아들 연주회랑 겹치면 얼마나 힘들던지. 아들 연주회를 안 갈 수도 없고 연주회 가고 다음날 시험도 치렀다. 하나하나 과정이 눈물로 이어졌다.


아주 오래전 서울대와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했던 M의 가족은 남편만 서울에서 일하고 두 자녀와 부인은 뉴질랜드에서 살았다. 뉴질랜드에 이민 갈 때 남편이 정착하는 것을 도와주고 서울로 돌아갔다고. 남편이든 누가 도와줘도 초기 이민 생활은 적응하기 쉽지가 않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정착하는 것은 하루하루가 눈물겹다.


남편이 한국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이탈리아 사람이든 고독하고 외롭고 삶이 힘들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소수나 보다. 싱글맘으로 두 자녀를 데리고 사는 내 입장과 하늘과 땅 차이로 큰 거 같은데도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다.


책 하나 집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고독과 외로움에서 파묻혀 지내는 유학생들과 한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한 뉴욕 여행객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연구소 시절 학자들이 책 한 권 집필하는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것을 알았다. 먼저 프로포절을 써서 연구 기금을 마련하고 대학원생과 박사 과정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료를 모으고 그 후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내가 집필한 책은 학자들의 연구서적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경제적 보조받지 않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반복적인 세월을 수년 동안 하면서 모은 보물 같은 정보라서 내게는 눈물겹다.


두 자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 사 먹은 것도 아니다. 두 자녀가 대학 졸업 후 북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마시곤 했다. 맨해튼 거리에서 가장 저렴한 노란 바나나를 사 먹으며 낯선 곳을 걸었다. 하루 평균 1만 보 이상을 걸었다. 가끔은 2만 보 이상을 걸었다. 축제와 특별 이벤트 사진은 항상 열리는 것도 아니니 더 귀한 사진이다. 사진과 글과 책 구상 아이디어 등 모든 것을 나 혼자의 힘으로 해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이 1500편 이상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뉴욕 문화 예술 가이드가 가장 도움이 될 거 같아서 가장 먼저 정리를 마쳤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가이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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