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방인
11월 2일 토요일
카네기 홀에서 저녁 8시 로잔느 캐시(Rosanne Cash) 공연이 열린 날. 수년 전 뉴욕대 이벤트 보러 가서 알게 된 가수인데 노래를 잘 불러서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려고 티켓을 구입했다. 기대를 했는데 아들과 내가 아는 곡이 없으니 이방인임을 실감했다. 다른 나라에 와서 하루아침에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기는 상당히 힘들다. 평소와 달리 카네기 홀에 온 음악팬들은 백인 중년층과 노년층이 아주 많았다. 로잔느 캐시랑 함께 노래를 부른 가수 Ry Cooder, Guitar and Vocals도 훌륭했다. 아들은 엄마랑 컨트리풍의 노래를 감상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전설적인 음악가 집안이라는 것도 뉴욕대에서 들었다. 한국에서는 로잔느 캐시 가수 이름도 몰랐다.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환자들이 다 함께 행복하게 부른 노래 Johnny Cash - You are my Sunshine은 오래전부터 자주 들었다. 로잔느 캐시는 조니 캐시의 첫 번째 부인의 딸이다. 언제 하늘나라로 떠날지 모른 치매와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노래를 부를 때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추억에 젖는 것을 보곤 했는데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던 때 오이스터 베이 양로원에 매주 일요일 발런티어 하러 가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원래 노인 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양로원에서 발런티어를 하면서 다양한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들은 토요일은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에서 종일 수업받고 일요일은 발런티어 하니 무척 힘들었지만 노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배운 게 무척 많았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를 무척 반기던 장미처럼 곱디 고운 Rose 할머니는 아직도 생존하실까. 이름도 예쁜 로즈. 젊을 적 모든 기억이 하얗게 변해버려 참 놀라웠다. 우리가 펭귄이라 별명을 지은 할아버지가 정신과 전문의란 것도 늦게 알았다. 한 번도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신사 같아서 아들이 펭귄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영화배우처럼 미인 여자 변호사도 영어 단어를 거의 다 잊어버려 처음에 믿을 수 없었다. 전문 분야 지식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은 간직하고 계셔 역시 놀라웠다. 함께 영화 보고 여행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등. 변호사, 의사, 검사, 교장 등 전문직에 종사했던 노인들이 꽤 많은 양로원이었고 행복했던 추억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 행복하게 살고 싶구나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로잔느 캐시 공연을 보러 가서 비엔나 사립 대학 총장이 준 허브티도 마셔서 좋았다. 할머니랑 함께 오셨는데 총장인 줄도 몰랐다. 뉴욕이 참 특별하다. 특히 카네기 홀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릴 때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2000년도에 방문했지.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 음악가들 묘지에 방문했던 기억도 난다.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미술관도 방문하지 못하고 오페라도 관람하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초보 여행자였다. 요즘은 인터넷도 발달하고 다양한 정보를 모아서 여행도 가더라.
총장 할아버지 외에도 77세 유대인 할머니와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 등도 만났다. 77세 할머니는 얼마나 에너지 넘쳤는지 몰라. 마라톤 대회에 자주 참가한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워. 뉴욕시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마라톤에도 참석한다고. 빨간색을 좋아하는지 안경테도 빨간색 머리카락도 빨간색으로 물들였더라. 예쁜 파스텔톤이라 할머니에게 머리 염색이 예쁘다고 하니 좋아하셨다. 대학 연구원은 미국 전역에서 이동하며 살았다고 하니 놀라웠다. 텍사스 휴스턴, 노스 캐롤라이나, 인디애나, 일리노이 등에서 살고 지금은 뉴욕에서 살고 있다고. 어느 곳이 가장 좋은 곳인가 물으니 휴스턴이라고.
아주 오래전 대학 동창 남편이 교환교수로 휴스턴에서 지내게 되니 친구 가족이 잠시 머물렀다. 내가 뉴욕으로 떠나 오기 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내게 중고차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친구. 미국에서 차 없이 살기 어려워 두 대의 차를 구입했고 하나는 새 차, 다른 하나는 중고차를 구입했는데 하필 고속도로에서 중고차를 타고 달리다 엔진에 불이 붙어 대소동을 피운 일이 있다고 하면서 뉴욕에 가면 새 차를 사라고 했다. 또, 뉴욕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돈을 좋아하니 유대인 남자 만나면 조심하라고 해서 웃었다. 힘든 이민 생활하니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겨버렸다. 초기 휴대폰을 구입했더라면 연락이 이어졌을 텐데 휴대폰 구입도 아주 늦게 했다.
주말 갑자기 날씨가 겨울처럼 추워졌다. 손이 꽁꽁 얼어버릴 거 같은데 오랜만에 센트럴파크에 가서 가을의 노래를 들었다. 파란 하늘도 보고 거리 음악가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소리도 들으며 산책하는 행복이 얼마나 좋아. 노란 낙엽들이 떨어진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마차는 달리고 연인들도 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휴식을 하고 호수에서 보트를 타더라. 바이올린과 기타 소리 울려 퍼지는 센트럴파크에 웨딩 사진 촬영하는 커플도 보았는데 신부는 파란색 장미꽃 부케를 들고 신랑은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또, 비눗방울로 커다란 풍선을 만든 재주꾼도 보았다. 작은 비눗방울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방문한 공원에 있는 셰익스피어 동상에게 "가을이 좋아요?"라고 물으니 고개를 숙이며 침묵을 지키더라. 셰익스피어에게 하루 몇 시간씩 글쓰기를 했냐고 묻고 싶었는데 묻지도 않았다. 겨울날처럼 추운데 아이스크림 먹는 젊은이도 있고 공원 일부는 출입 금지인데 낙엽들 수북이 쌓인 곳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연인들은 포옹을 하면서 키스도 하고 벤치에 앉은 연인을 카메라로 담기도 하니 영화 같은 풍경이야. 센트럴파크는 1년 내내 아름답지만 만추 풍경도 참 예쁘다. 노랗게 물든 숲 속을 걸으면 행복이 밀려오지. 베토벤도 산책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을 책에서 봤다. 아름다운 숲 속에서 산책하면서 악상을 떠올렸나 봐.
토요일 오후 5시 줄리아드 음악 예비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인 피아니스트 Harmony Zhu 공연도 보았다. 수년 전 우연히 그 학생 공연을 봤는데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다. 예비학교 학생들 전부 음악가로 활동도 안 하지만 이 학생은 프로 음악가의 길을 걸을 거라 믿음이 간다. 살아있는 천재 피아니스트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도 궁금하다. 베토벤과 쇼팽 곡이 아주 좋았다. 주홍빛 드레스를 입은 중국인 소녀 어린 나이인데 피아노 연주가 예술이야. 유튜브에 작년에 11살이라고 나오니 올해는 12살이네.
하모니 피아노 공연 보러 가서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파크 근처에 사는 백발 할머니도 만났다. 매주 토요일이면 시내버스를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와서 공연을 보신다고. 뉴욕에 사는 노인들은 축복을 받았지. 천재들의 무료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아.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수요일 오후 1시-2시 사이 가끔 무료 공연이 열린다. 지난주 수요일에도 퍼커션 공연이 열렸는데 난 그날 늦게 외출해 놓치고 말았는데 할머니는 퍼커션 공연이 좋았다고 하셨다. 뉴욕 문화가 약간 특별함이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노인들에게 천국이야.
왜 갑자기 추워진 거야. 너무너무 추워 노트북에서 글쓰기 하는데 손이 시러워. 가을이 떠나버릴 거 같아 꼭 붙잡고 싶은 계절이다. 하프시코드 음색 느끼게 하는 11월이 가면 어떡하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노래도 떠오른다.
주말 플러싱 메인스트리트에 지하철이 정상 운행을 안 하니 편도 4회 환승해 맨해튼에 갔다.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