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서머타임 해제
11월 3일 일요일
11월이 되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거 같아.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야만 했다. 서머타임 시작되면 약간 긴장이 되고 해제되면 약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져 좋지만 금세 적응해 버린다. 그래도 첫날만큼은 넉넉함이 느껴진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일요일의 느긋함도 느꼈다. 모로코, 상트페테르부르크, 사하라 등에 대한 글을 읽으며 세계 여행도 떠났다. 세 곳은 한 번도 여행 간 적이 없어서 더 흥미로웠다. 모로코에서 살려면 외국인 거주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쉽게 만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마드리드, 파리, 밀라노로 여행을 갔다고 적혀 있었다. 외국인 거주증을 만들 수 없어서 여권 체류 기간(외국인은 3개월)이 임박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도 경험하니 밤이 그리웠다고 말하더라.
잠시 여행기를 읽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밀린 설거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끝낼 때는 행복함이 밀려오지. 중대한 시험이 끝난 것도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도 참 크다. 토요일 카네기 홀에서 로잔느 캐시 공연을 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으니 부엌은 사랑스러운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준비한 도시락통도 깨끗이 씻고 일요일 브런치 식사 준비도 하니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주말마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역 보수 공사로 정상 운행을 안 하니 정말이지 피곤한데 맨해튼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야 하는 입장. 편도 4회 환승하고 집에 돌아오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패잔병 같다. 그럼에도 일요일도 외출을 했다. 오랜만에 맨해튼 부촌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열린 이벤트를 보려고. 편도 4회 환승 시 지하철과 시내버스 연결이 좋고 덜 복잡하면 피로감이 줄어들 텐데 일요일은 승객들이 아주 많았다. 맨해튼 헌터 컬리지 지하철역에 도착 밖으로 나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앞을 지나가며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싶은 마음도 드나 일요일은 평소보다 빨리 집에 돌아가려고 길을 재촉했다.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고 국화꽃 향기 가득한 거리 화단도 무척 예뻤다.
일요일 오후 2시 Lenox Hill Neighborhood House에서 열린 고음악 공연도 보고 소더비 경매장에서 전시회도 보고 인형극도 보는 게 나의 목적.
1894년에 설립(125년 전 설립)된 Lenox Hill Neighborhood House은 교육, 법률, 건강, 주택, 정신 건강, 건강 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욕 최고 비영리 단체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소더비 가는 길 늘 지나치곤 하고 오래전 하모니카 부는 할아버지를 만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던 곳이다. 할아버지 연세를 말하고 나서 나의 나이를 물어서 "22세"라고 하니 할아버지가 웃으셨다. 안 믿는 눈치였다. 왜 안 믿을까. 내 마음은 영원한 청춘 스물둘이야. 고 음악 공연을 보기 전 소더비 경매장에 가려고 했는데 마라톤 행렬로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11월 첫 번째 일요일 뉴욕시에서 마라톤 축제가 열린다. 수년 전 마라톤으로 센트럴파크 출구를 막아버려 엄청 고생을 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베라자노 브리지에서 출발해 브루클린 -퀸즈-브롱스- 맨해튼까지 약 26마일을 달린다. 난 어퍼 이스트 사이드 도로도 통제한 것도 몰라서 당황했다. 거리에서 수많은 시민들은 환호를 하고 참가한 선수들은 달리고.
어쩔 수 없이 소더비 경매장은 포기하고 고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 돌아왔다. 입구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가 스트로베리 사탕을 주었다. 할머니는 먹을 수 없다고 하면서 내게 주니 웃었다. 빨간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뮤니티 홀 벽에는 수많은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125년의 역사 깊은 곳인데 얼마나 많은 행사가 열렸겠어. 맨 뒤 의자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다. 일요일 오후 공연을 보러 온 노인들이 아주 많아서 놀랐다.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들도 있고 빨간색 털모자를 쓴 할머니는 음악이 너무 좋다고 하시니 자주 공연을 보나보다 짐작을 했다.
오후 4시 맨해튼 체코 문화원 보헤미안 내셔널 홀 4층에서 인형극이 열려서 미리 예약을 했다. 인형극을 보러 가기 전 시간이 약간 남아 어퍼 이스트사이드 동네를 걸었다. 상당히 추워 따뜻한 카페가 그리워 나도 모르게 걷다 86가 반스 앤 노블 북카페까지 걸었다. 일요일 오후 손님들이 얼마나 많던지 빈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어린 꼬마부터 백발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찾은 북 카페. 홈리스의 악취가 나는 곳도 있어서 불편했다. 점점 홈리스가 무서워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내가 쉴 곳이 없어 다시 체코 문화원으로 돌아가 인형극을 보는데 메트에서 오페라 감상하다 어린아이들 인형극 보려니 좀 심심해서 홀을 나오고 말았다. 체코 문화원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방문했다.
늦은 오후 뉴욕시 마라톤 행사가 막이 내려 무사히 소더비 경매장에 갈 수 있었다. 멋쟁이 직원이 친절하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장면도 보았다. 갤러리에 손님들이 꽤 많았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한 두 개만 있으면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먹고살겠어. 하늘나라에 가서 작가들 만나 그림 그려 달라고 부탁을 해볼까. 그들이 지상에서 살 때는 고생 많이 했다고 하던데 하늘나라로 떠나면 작품값이 하늘처럼 올라가니 이상해. Willem de Kooning (빌럼 데 쿠닝)은 페인트 칠 하고 간판을 그리고 등 온갖 잡일을 했다고 하던데. 그의 작품값이 2500만 달러-3500만 달러. 그가 페인트칠한 집은 부자 되겠어. 이거 빌럼 데 쿠닝이 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하긴 페인트 칠은 자주 하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다.
잠깐 전시회를 보고 지하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지하철과 시내버스 연결이 좋지 않아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역에서 뉴욕시 마라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86가 반스 앤 노블 북 카페 옆 쉑쉑 버거가 있는데 파란색 뉴욕시 마라톤 비닐 옷 입고 쉑쉑 버거 먹는 젊은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이 그 청년에게 "축하해요."라고 말했다. 얼마나 좋을까. 26마일 마라톤을 완주할 건강이면 축복 아닌가. 마라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매일 달리기를 했을 거다. 갈수록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나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