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 Jensen, cello Master Class
11월 4일 월요일
상당히 추운 월요일 오후 맨해튼에 갔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휴식을 하다 콜럼버스 서클 메종 카이저에서 아들이 사랑하는 빵 한 개 사고 1호선을 타고 콜럼비아 대학 지하철역에 내려 맨해튼 음대를 향해 걸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콜럼비아대학 교정도 거닐고 싶은데 오후 4시 반까지 도착해야 하니 길을 재촉했다. 도로에는 노란 은행잎들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바람 부는 늦가을 내 가슴에도 노란 은행잎이 나부꼈다.
Monday, November 4, 2019
4:30 PM - 7:30 PM
Miller Recital Hall
오후 4시 반 맨해튼 음대 밀러 리사이틀 홀에서 첼로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내게는 낯선 첼리스트였는데 홀에 들어가니 빈자리가 드물어 어쩌면 명성 높은 분이나 짐작을 했다. 하이든, 드뷔시, 쇼스타코브치, 라흐마니노프, 브람스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아름다운 첼로 선율에 행복한 마스터 클래스. 학생들은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고 백발 노교수님은 맨 뒤편 의자에 앉아 첼로 연주를 감상하시는데 하필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램에서 첼리스트 경력을 보니 메도우마운트(Meadowmount School of Music) 음악 캠프에 참가하는 분이라고 하니 놀랐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참가한 음악 캠프. 미국 고등학생들은 여름 방학 동안 캠프에 가기도 한다. 운동과 음악 등 다양한 캠프가 열린다. 캠프 참가비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꽤 비싸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이작 펄만, 조슈아 벨과 첼리스트 요요마도 참가한 캠프라 명성이 높다. 미리 원서와 녹음된 음악 CD를 보내고 합격을 해야만 참가할 수 있으니 돈과 재능이 겸비해야 한다. 음악과 운동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다. 아주 재능 많은 학생은 장학금을 받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보고 배우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먼 훗날 교직에 종사하며 첫 급여를 받아 연습용 바이올린을 사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지만 첫아이 만삭이 될 무렵 레슨을 중지하게 되고 그 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활을 잡지 않았다. 여자에게 결혼이 주는 선물이 참 특별했다. 직장에 출근하면서 임신하고 출산하면 삶의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하루 왕복 4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근하면서도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해 방과 후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하고 그 후 프라이빗 레슨을 받게 되면서 나도 다시 레슨을 받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중고 악기점에 가서 낡고 오래된 첼로를 구입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가정 형편이 나아져 나도 개인 레슨을 받게 되고 바흐 무반주 첼로곡을 레슨 받을 무렵 사랑하는 내 첼로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 후로 난 첼로 활을 잡은 적은 없다. 안개 가득했던 결혼 생활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던 첼로의 죽음. 아마도 첼로의 죽음은 내 운명의 전주곡이었나 몰라. 슬픈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차마 말로 할 수 없지. 저음의 첼로 선율을 들으며 내 슬픈 운명을 돌아보았다.
대학 시절 사랑하던 바흐 무반주 첼로 곡을 먼 훗날 레슨 받게 될 거라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있고 배우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어느 날 이뤄질지 모른다. 생은 알 수 없는 부분도 참 많지만 스스로 만들어 가는 부분도 있다.
삶은 뜻대로 되지도 않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참 많지만 신비롭다. 만약 두 자녀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지 않았다면 어쩌면 뉴욕에 오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온 것은 줄리아드 학교가 있어서다. 특별 레슨을 받다 보니 비엔나 대학 바이올린 교수님도 만나고 재능 많다고 유학을 권하셨지만 독일어 권이라 유학 결정이 쉽지 않았다. 불어와 독일어가 부담스럽지 않다면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유럽에서 대학 교육은 미국에서 시키고 싶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도시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한도전인지 몰라. 삶은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하다. 언제 모험이 막이 내릴까.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와서 사는데 책과 음악을 통해 접했던 수많은 것들이 뉴욕과 인연이 깊어서 놀란다. 두 자녀가 독일에서 유학했던 분에게 레슨 받을 때 어느 날 바이올린 악보를 구입하라고 하셨는데 그때 지방에 사니 서울로 주문을 해야 하는데 어느 출판사를 고를까 하다 뉴욕에서 출판된 악보를 골랐다. 그때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뉴욕과 우리 가족의 첫 인연은 파란색 표지의 바이올린 악보였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대부분 학생들은 학점에 몸 바쳤다. 난 대학 시절 나의 미래에 대해 늘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도 시간이 되면 자주 전시회를 보고 연극도 보고 공연도 보았다. 한독 100주년 기념 파우스트 특별 공연도 보았다. 대학 시절 생각한 대로 내 삶을 만들어 오고 있다. 한 번도 세상에 흔들리지 않았다. 뉴욕은 대학 시절 내가 상상한 곳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첼로 마스터 클래스 강사가 메도우 마운트에 참가했다고 하니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놀랍게 아들도 기억하는 첼로 교수님이었다. 미국에서 명성 높은 첼리스트라고. 어쩐지 강의실에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마스터 클래스는 일반인에게 무료로 오픈하고 음대생과 교수님과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11월은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열리는 학생들 공연만 봐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전부 무료다. 명성 높은 백발 노교수님 옆에서 아름다운 첼로 선율을 들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내 주위는 온통 재능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뿐이니 얼마나 놀라워. 음악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 돈 한 푼 들지 않고 최고로 명성 높은 첼리스트와 재능 많은 학생들 연주를 감상하니 맨해튼이 보물섬 아닌가. 보물섬 맞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라. 그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