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수요일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가고 시간은 멈추지도 않고 잘도 흘러간다. 흐린 하늘도 쳐다보았다. 아파트 뜰 고목나무는 아직 예쁘게 물들지도 않았다. 가을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마음이야 어디를 못 가겠냐만 복잡한 현실에 마음만 갈팡질팡 하면서 시간은 흘러가고 '브런치'에 올려진 유럽 여행기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프랑스 아비뇽과 니스와 마르세유,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융프라우 등. 20대 직장 생활하면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유럽 여행한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세상 많이도 변했다. 한국에서 88 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다. 그러니 나의 20대 해외여행은 꿈만 꾸었다. 대학 시절 유럽에 열광했다. 언제 파리와 런던은 꼭 가봐야지 하다 결혼 후 가난과 육아에 지쳐가며 세월이 흐르다 30대 후반에 이르러 유럽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트렁크에 짐을 담고 설렘 가득한 유럽 여행을 떠났지. 그때는 뉴욕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없고 뉴욕에 여행 오지도 않았다. 그 후로 세월이 흘러가고 어느 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생. 어디로 흘러갈까. 미래는 어디서 멈출까.
Violin Master Class with Glenn Dicterow
Wednesday, November 6, 2019
4:00 PM - 6:00 PM
Greenfield Hall
오후 4시 맨해튼 음대에서 Glenn Dicterow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전 악장이었던 글렌 딕테로의 바이올린 마스터 클래스를 가끔 보곤 한다. 세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강사는 정장을 입고 오셔 학생들의 연주를 듣고 지도를 하셨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린필드 홀. 나의 추억이 새록새록 쌓아가는 멋진 홀. 죽기 전에 떠오를 거 같은 많은 추억이 머무는 곳이다. 아들이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던 곳이고 홍혜경 및 수많은 마스터 클래스와 공연을 감상했던 곳. 황홀한 오페라 아리아와 바로크 음악 등을 감상했던 홀.
세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는 평소 귀에 익은 차이콥스크키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등을 연주했다.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매일매일 연습하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언제 들어도 좋아.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은 두 자녀 어릴 적 모두 레슨 받았고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폴란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해서 특별한 추억이 감도는 곡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이올린 레슨을 받은 딸이 5학년 때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으니 참 힘든 세월을 보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특별 의상도 준비해야 하고 오케스트라와 호흡도 맞춰야 하고 딸도 엄마도 무척 바쁘고 힘든 시절이었다. 1초도 딴 곳에 신경조차 쓸 시간도 없었다. 대학 시절 음반을 통해 듣던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리니스트는 카네기 홀에서 매년 보곤 하니 놀랍다.
아파트에 살던 무렵 매일매일 악기 연습을 하니 위층 아래층 이웃에게 매우 미안했는데 딸이 협연을 하던 날 우연히 아래층에 사는 이웃분이 오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감상하고 그 후로 소음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으셨다.
맨해튼에 가면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며 에너지 충전해야 하는데 시간에 쫓겨 커피를 마시지 않고 마스터 클래스 청강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사랑하는 바이올린곡을 감상하며 잠이 쏟아지다니 믿을 수 없었다. 잠든 영혼을 깨우는 음악을 들으며 잠이 쏟아지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맨해튼 음대에 방문하기 전 라커펠러 센터(한국에서는 록펠러로 알려짐)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서 전시회를 봤다. 멋진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고 아마도 그림을 구매할 손님들도 짐작되고 가끔씩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에서 만난 백발 할머니도 봤다. 그분도 그림과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지 맨해튼에서 자주 본다.
백장미 향기 가득한 갤러리에서 멋진 작품을 보다 우연히 김환기 화백의 작품도 보았다. 김화백이 뉴욕에 살던 시절 아주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하던데 그가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그의 작품값은 하늘처럼 높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1963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뉴욕에서 1963-74년까지 활동하다 뉴욕에서 눈을 감은 한인 화가다. 전남 출신이고 일본과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라커 펠러 재단이 설립한 아시아 하우스에서 작품 전시회를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뉴욕에 남아 활동을 했다고 한다.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73가 콜럼버스 애비뉴와 앰스터댐 애비뉴 사이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고. 김환기 화백 작품뿐 아니라 피카소, 모네, 앤디 워홀 등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