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휴식이 필요해_줄리아드 학교 베토벤 슈베르트

by 김지수

12월 16일 월요일


흐린 겨울 하늘 보며 텅 비어 가는 겨울나무 가지 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침에 아파트 지하에 세탁을 하러 갔다. 세탁 가방 4개를 들고 아파트 지하로 내려가는 마음은 상당히 무겁기만 하다. 수 십 년 된 낡은 세탁기가 날 위해 비어있을지 몰라서. 다행스럽게 내가 사용할 빈 세탁기를 발견해 세탁물을 넣고 집에 돌아와 30분 후 다시 지하에 가서 건조기에 세탁물을 넣고 집에 돌아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1.5불 정도의 동전이 더 들어가고 약간 덜 마른 세탁물을 집에 가져와 약간 속이 상했지만 무사히 세탁을 마쳤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탁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집에 세탁기가 없으니 세탁을 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넘치면 감사한 마음을 모를 수도 있을 텐데 외국 삶이 쉽지 않으니 한국에서 몰랐던 감사의 마음을 더 진하게 느끼며 사는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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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식사하기 전 우체부가 매일 열심히 넣어준 우편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일 얼마나 많은 우편물이 도착하는지 몰라. 모마, 파크 애비뉴, 메트 뮤지엄, 메트 오페라, 은행 등에서 온 우편물을 정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다. 할러데이 시즌 쇼핑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눈감고 사는 현실.


그러고 나서 브런치 식사 준비를 하고 늦은 오후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집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막 시내버스가 떠나고 그 후로도 계속 지하철 연결이 좋지 않아 피로가 더해갔다.


곧 크리스마스 방학이 시작되니 학교는 평소에 비해 조용하고 좋다. 6시 비올라 공연을 감상하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며 저녁 8시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 집에는 편한 소파 하나 없으니 줄리아드 학교 소파가 더 좋아. 한국에서 소파 없이 지낸 적이 없는데 뉴욕에 오니 하얀 성으로 변했다. 뉴욕에 오니 한국에서 누리던 그 모든 게 다 사라지고 없더라. 아무것도 없는 텅텅 빈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라. 뉴욕 여행객과 뉴욕에서 생존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돈 많고 능력 많은 사람들은 예외가 되겠다. 보통 사람이 다른 나라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은 무한도전이다. 특히 뉴욕은 세계에서 몰려오니 어려운 점이 많다. 반대로 문화 면은 좋다.


종일 집에서 쉬지 않고 일했으니 휴식이 필요해. 건강처럼 소중한 게 없다. 그러니 휴식이 참 소중하다.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은 내게는 휴식 시간. 책과 커피와 음악이 주는 행복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뉴욕에서는 한국과 달리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모두 모두 바쁘니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약속하기도 쉽지 않다. 또 사람들 만나면 식사도 해야 하고 식사비는 또 얼마나 비싼 도시인가. 그런다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식사비 저렴한 곳에서 만나자고 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혼자 노는 게 가장 편하고 좋다. 뉴욕 맨해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 천재들의 공연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저녁 8시 10분 전 폴 홀에 들어가 빈자리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확인하니 음악 박사 과정(DMA) 연주였다. 그리스 아테네 출신 피아니스트는 파리에서 공부하고 뉴욕 줄리아드 학교에서 박사 과정 밟으니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공부를 하고 연주회를 준비할지 상상만으로 부족할 것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박사 학위 그냥 쉽게 받지 않는다. 박사 과정 합격도 어렵고, 공부는 더 어렵고, 그래서 졸업은 무척이나 어려운 박사 과정. 피아니스트 얼굴은 지쳐 보였지만 연주는 꽤 좋았다. 테너가 부른 슈베르트 곡도 아름답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도 즐겁게 감상했다. 소파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린 보람이 있는 공연이었다.


지인 가운데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와서 석사 과정 마치고 박사 과정 공부하다 너무 어려워 서울로 돌아가 음악의 길 포기하고 변호사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유럽 여행객도 수 십 년 동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컴퓨터 사이언스 과정 박사 학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재능과 열정과 재정적인 뒷받침이 없이 어려운 음악의 길이지만 졸업 후에도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니 도중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 대해 잘 모른 사람은 미국에만 가면 뭐든 쉽게 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보면 하나하나 과정이 쉬운 게 없다는 것을 안다. 고국도 어려우면 다른 나라에서 삶이 어찌 쉬울까. 삶은 끝없는 길이다. 미국의 탑 대학은 세계에서 인재들이 몰려오니 훨씬 더 어렵다. 글로벌 경쟁시대. 참 어마어마한 세상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안 되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게 좋다. 박사 과정 대학원 과정에 지원하는 모든 이에게 축복 가득하길 바란다! 꿈꾸는 이에게 행복 가득한 새해가 되길. 노력하는 이에게 행복 가득한 새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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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lis Boliakis, Collaborative Piano

Monday, Dec 16, 2019, 8:00 PM


FRANZ SCHUBERT Frühlingsglaube D. 686

FRANZ SCHUBERT Geheimes D. 719

FRANZ SCHUBERT Nachtstück D. 672

FRANZ SCHUBERT Der Musensohn D. 764

JOHN HARBISON Simple Daylight

LUDWIG VAN BEETHOVEN Sonata Op. 30 No. 1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PAUL HINDEMITH Sonata for Viola and Piano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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