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6일 일요일
일요일 오후 4시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 96가 지하철 역 근처 심포니 스페이스에서 특별 공연이 열렸다. 로컬이 무척 사랑하는 곳이고 주로 유료 공연과 이벤트가 많이 열리지만 가끔 무료 이벤트가 열린다.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했는데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긴 줄이 보여 깜짝 놀랐다. 일요일 오후에 공연을 보러 온 지팡이를 들고 온 노인들도 아주 많았다. 예약한 사람은 박스 오피스에서 표를 찾으면 되니 더 간편했다. 내 이름을 말하고 표를 달라고 하고 홀에 들어가 객석에 앉아 기다렸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20분이 막 지나서. 원래 빨리 도착하려는 계획이 없었는데 갑자기 비가 온다고 하니 서둘러 갔다. 3시 15분부터 5번가 성 패트릭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가 시작하니 조금 듣고 움직일 예정이었다. 늦게 도착했더라면 아마도 공연을 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일요일 오후 문화 행사에 참가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노인들을 보면 놀랍다는 말로 부족하다. 비단 공연만 보러 다닌 것도 아니다.
이 공연은 오래전 이스트 빌리지 쿠퍼 유니온 대학 홀에서 감상했고 카네기 홀에서도 연주를 한다.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모든 공연을 다 볼 형편이 아니라서 무료 공연만 본다. 라벨의 볼레로 곡을 무척 좋아하니까 볼레로 곡만 듣고 일찍 집에 돌아오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맨 마지막에 연주를 하니 어쩔 수 없이 머물렀다. 지난번 맨해튼 음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베토벤 황제 피아노 협주곡을 맨 마지막에 하니까 머물렀듯이.
라벨의 볼레로 곡을 무척 사랑한 가톨릭 의대생 이야기에 의하면 사랑을 나눌 때 볼레로 곡을 켜놓으면 좋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을까. 영화처럼 수 십 개의 티브이가 있는 집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켜놓고 사랑을 나눈 사람도 있겠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줄리아드 학교, 커티스 음악원, 브뤼셀 왕립 음악원, 상하이 음악학원 출신으로 이뤄졌다고. 바이올리니스트 인터뷰 가운데 2세 때 TV PBS 프로그램에서 13세 장영주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는 것에 놀랐다.
The Orchestra Now, Zachary Schwartzman, conductor
Program
Debussy (1862-1918) Prelude to the Afternoon of a Faun
Messiaen (1908-1992) The Forgotten Offerings
Ravel (1875-1937) Bolero
맨해튼은 보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다. 맨해튼에 가면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볼게 많으니까. 성당에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나와 록펠러 센터를 지났다.
낭만 가득한 하얀 빙상도 보면서 힘들고 고생 많았던 김연아 선수도 생각났다. 역경과 시련 가운데 올림픽 금메달을 받았으니 얼마나 위대한지 몰라.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를 지나면서 예쁜 케이크를 보면서 웃었다. 밸런타인데이 케이크를 얼마나 많이 주문했을까. 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상인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난 아프리카에 여행을 갔다. 거리 음악가가 열심히 북을 두드리며 연주를 하고 있었다. 신난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주말 7호선이 정상 운행 안 하니 상당히 불편하고 아직 감기가 낫지 않아서 집에서 쉬라고 말하는데도 맨해튼에 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름다운 석양을 만나 행복했다. 편도 4회 환승. 플러싱에 도착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하는데 4개의 세탁기에 이불과 외출복 등을 넣고 돌아왔는데 건조기에 옮기려고 지하에 내려가니 6개 가운데 2대는 고장이라고 적어져 있고 아주 많은 아파트 세대가 사는데 2대가 고장이면 어떡해. 할 수 없이 오래오래 기다렸다. 아파트 공동 세탁기가 34살이라고 2년 전에 들었던가. 그럼 올해는 36살. 참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공동 세탁기를 바꾸면 좋을 텐데... 맨해튼에 가서 공연 볼 때는 천국 집에 돌아오면 슬픈 현실이야. 그래도 무사히 세탁을 마쳤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사는 뉴욕.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뉴욕에서는 감사하지. 단 하나도 쉬운 게 없으니까. 맨해튼 보물섬은 수년 동안 매일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며 발견했으니까 공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열정과 노력으로 찾은 보물섬인가. 희망과 꿈이 없었다면 난 보물섬커녕 지옥의 현실을 피해 도망갔겠지. 천국과 지옥의 이중주를 하는 뉴욕 뉴욕. 맨해튼에 가면 다 있지만 딱 한 가지 없는 게 있더라. 비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