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7일 일요일_프레지던트 데이 휴일
줄리어드 학교에서 저녁 8시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공연이 열렸다. 학교 웹사이트에 올려진 피아니스트 이름을 보자 꼭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대개 메트 오페라와 카네기 홀 공연이 아닌 경우 저녁 8시 공연은 안 보는 편이다. 왜냐면 맨해튼에 살기 않기 때문에. 늦은 공연 보고 집에 가면 무척 피곤하기 때문에.
학교에 도착하자 공연을 보려고 로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교 웹페이지에 피아니스트 이름만 올려져 누가 슈베르트 곡을 부르는지 알 수 없는데 프로그램을 받으니 박사 과정 바리톤 리사이틀. 어느 분야든 박사 과정 졸업이 어렵고 힘들다. 박사 과정 입학도 어렵고 공부도 어려운데 얼마나 기쁜 공연이었을까. 그동안 연습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 박사 과정 학생은 리사이틀 후 편하게 잠들었을 거 같아.
슬픈 슈베르트 곡 들으며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독일어가 들린다면 공연 보는 즐거움이 훨씬 컸을 텐데 왜 고등학교 시절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거야 후회가 밀려왔다. 서울대 졸업한 독일어 선생님 목소리의 톤이 항상 같아서 졸음이 쏟아진 수업. 여성, 남성, 중성 등 암기해야 할 것도 무척 많으니 게으른 내게는 상당히 힘든 수업이었다. 만약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면 정말이지 외국어 공부는 열심히 할 거 같아. 외국어를 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알면 알 수록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본 피아니스트가 몇 년 전 갑자기 할아버지 모습으로 변해 충격을 받았다. 피아니스트 건강은 아주 좋아 보여 내가 기뻤다. 힘든 음악가의 길을 가다 어느 날 건강이 악화되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플러싱에서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이 2월 주말 내내 정상 운행을 안 하니 편도 4회 환승을 하니 상당히 불편하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했던 소동까지 일어났다. 플러싱에서 무료 셔틀버스에 탑승하는데 앞 버스가 떠나 뒤편에 있는 버스에 탔는데 이미 만원. 빈자리가 없고 복잡했다. 111가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가는데 자리에 앉아서 편히 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고 복잡하면 아무래도 더 피곤하다. 111가 역에서 내려 7호선에 환승했는데 7호선이 아주 천천히 달리다 멈췄다. 곧 출발하겠지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오래오래 기다렸다. 오래오래 기다렸는데 모두 내려 달라고 방송이 울렸다. 맨해튼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고 편도 5회 환승했다. 자주 환승할 경우 지하철과 버스 연결이 좋으면 피곤이 덜 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엄청 피곤하다. 서민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주말 공사로 불편한데도 슈베르트 공연을 보기 위해서 맨해튼에 갔다. 참 어렵고 힘들게 귀한 공연을 감상했다.
지하철 소동으로 너무 피곤하니 커피 한 잔 마시러 아지트에 갔다. 우연히 미술 비평가이자 시인을 만났다. 카네기 홀에서 2월 말 필립 글래스가 출연하는 특별 공연이 열리는데 내게 볼 거냐고 물었다. 필립 글래스는 뉴욕에 와서 알게 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난 그의 음악을 잘 모른다. 2월 보고 싶은 공연도 무척 많고 내 예산 안에서 결정하는데 그의 공연은 보려고 계획하지 않았다. 형편이 넉넉하다면 필립 글래스 공연도 보고 싶은데 내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친구 따라 강남 갈 수도 없는 뉴욕 상황. 뉴욕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비평가와 내 처지는 너무나 다르다.
모처럼 메트 뮤지엄에 방문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노란 개나리꽃이 날 반겨 주었다. 티켓 한 장 받고 천천히 전시회를 관람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뮤지엄에 온 엄마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실감했다. 한국에서 두 자녀 키울 때 뮤지엄에 간다는 것은 상상 조차 불가능했던 일.
메트에서 나와 뮤지엄 마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5번가 록펠러 센터 근처에 내렸다. 5번가 성 패트릭 성당에 방문해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리고 나오다 우연히 줄리아드 학교에서 자주 본 남자를 봤다.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분 같은데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면 만나는 분이 몇몇 있는데 성당에서 만난 분은 처음이었다.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프레지던트 데이! 모든 대통령을 기리는 날이고 휴일이다. 그래서 지하철은 훨씬 더 복잡했을까. 빨간색 넥타이를 사랑하는 대통령은 무얼 했을까. 대통령들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주말 지하철 소동으로 무척 피곤했지만 슈베르트 공연도 감상하고 뮤지엄에도 방문하고 성당에도 가서 기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