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찬란한 저녁노을, 텅텅 비어 가는 소호, 북 카페

조코비치 승리하다(9월 4일)

by 김지수

2020년 9월 4일 금요일


IMG_9196.jpg?type=w966
IMG_9198.jpg?type=w966 찬란한 저녁노을은 마법 같다. 아주 잠깐 비치고 사라진다.


작은 트렁크 하나 들고 세계 여행하던 때가 그립다. 대학 시절 해외여행하고 싶다고 말하니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88 올림픽 후 한국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고 어느 날 나의 꿈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만약 해외여행 가려는 생각이 없었다면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무에서 시작한 우리 삶이 안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은커녕 매일 숨쉬기도 힘든 나날이 이어졌고 참고 견디고 살아야 했는데 어느 날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등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하얀 눈 내린 알프스 산을 바라보며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딱 한번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봤으니 잊히지 않는다. 돌아보면 꿈같은 순간이다.


기회는 항상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회가 오면 붙잡아야 한다. 잠시 머뭇거리면 기회는 멀리멀리 날아가버린다.


IMG_9145.jpg?type=w966
IMG_9148.jpg?type=w966
IMG_9149.jpg?type=w966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다시 비포장 길을 오래도록 가고 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이 앞을 가로막는다. 사랑하는 나의 아지트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반스 앤 노블 3층 북 카페에 올라가서 여행 코너 서적을 보며 지난 추억에 젖었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늦은 나이 새로운 시작은 무한 도전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험난한 시련이 우리 앞에 주어졌다. 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서 살다 하늘나라로 떠난 한국 작가 김환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의 사회적 지위 모두 버리고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가난과 투쟁을 했단다. 한국에서의 명성은 뉴욕에 오면 사라지고 만다.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로 지내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맡기도 했던 김환기 작가도 정말 대단하다. 다 버리고 새로운 시작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운 출발은 역경과 시련의 길이다. 그가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가난 속에서 희망을 품고 견디었을 것이다. 희망 참 소중하다.


IMG_9144.jpg?type=w966
IMG_9143.jpg?type=w966
IMG_9159.jpg?type=w966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그린 마켓(매주 월수 금토 열린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책을 읽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북카페는 오픈하지 않으니 오래 머물 수도 없어서 잠시 서성 거리다 서점을 나와 유니온 스퀘어 그린 마켓에서 꽃 향기 맡으며 거리 음악가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선율에 내 몸을 맡겼다. 모든 공연이 취소되어버린 지금 맨해튼 거리 음악가가 들려주는 선율에 감사하다. 맨해튼은 역시 플러싱과 분위기가 다르다. 조금씩 분위기가 살아나는 뉴욕. 다시 유니온 스퀘어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도 있고 거리에 상인들도 많아서 어릴 적 한국에서 봤던 한국 장터가 생각났다. 활기찬 분위기가 좋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서점이 천국이다. 유니온 스퀘어에서 스트랜드를 향해 걸었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카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실내 영업을 안 하니 참 불편하다. 스트랜드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지하철을 타고 소호에 갔다.


맨해튼 소호 텅텅 비어 간다.
IMG_9193.jpg?type=w966
IMG_9172.jpg?type=w966
IMG_9163.jpg?type=w966
IMG_9164.jpg?type=w966
IMG_9182.jpg?type=w966
IMG_9183.jpg?type=w966
IMG_9185.jpg?type=w966 텅텅 비어 가는 소호, 아직 몇몇 갤러리가 있어서 전시회를 볼 수 있다.



과거 텅텅 빈 소호에 예술가들이 몰려와 살고 가로등 불빛도 없을 때 소호에 갤러리를 오픈하기 시작했는데 차츰 더 많은 갤러리가 오픈했고 나중 명품숍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했는데 코로나로 텅텅 빈 가게가 눈에 띈다. 내가 사랑하는 하우징 웍스 북 카페도 역시나 문을 닫으니 쉴 곳이 없다. 잠시 텅 비어 가는 소호를 구경하며 뉴욕의 미래가 소호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5번가 역시 마찬가지다. 렌트비 비싼 맨해튼에 여행객 발길이 뚝 끊어지니 가게 운영이 어렵겠지. 양극화 현상이 심한 뉴욕. 부자들은 코로나로 위험하니 뉴욕시를 떠나고 뉴욕 시장과 주지사와 가난한 서민들 모두의 고민이 깊어만 가는데 코로나 전쟁 중 돈방석에 앉은 제약회사들도 있다. 코로나 백신이 나온 것도 아닌데 돈방석에 앉으니 정말 괴이한 일이다.


소호에서 몇몇 갤러리를 구경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석양이 지는 무렵 운동을 하러 갔다. 찬란한 노을 보며 잠시 위로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유에스 오픈 테니스 경기를 잠시 보았다. 조코비치가 승리를 했다. 올해 챔피언은 누가 될까.


IMG_9152.jpg?type=w966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거리 음악가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선율이 좋더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맨해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와 나의 추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