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5일 토요일
미국 노동절 주말 아침 넉넉한 자유를 맛보았다. 발리섬에서 휴가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넉넉한 자유를 느꼈다. 매일 식사 준비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드는데 딸이 온라인으로 햄버거와 샐러드와 갈비구이를 주문했다. 평소와 달리 식사 준비를 안 하니 아침 시간이 얼마나 풍요롭던지.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음식이 도착하지 않아 다시 확인하니 주문이 취소되었다고. 분명 전날 한 밤중 주문했는데 주문을 하지 않았다니 다시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약 1시간 후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미국 루지애나 주 음식이었다. 루지애나 주 음식은 확실히 뉴욕과 맛이 달랐다. 한국도 서울과 지방 음식이 다르듯 미국도 지역별로 음식 맛이 다르다. 다인종이 사는 뉴욕이라서 태국, 베트남, 인도 음식 등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데 난 한국 음식을 사랑하고 강한 향신료 때문에 먹지 못한 음식도 많다. 루지애나 주에 있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도 여행 가고 싶은데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아들은 집에서 음식을 주문한 것은 처음인 거 같다고 말했다. 뉴욕은 식사비가 너무 비싸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한다. 매일 눈만 뜨면 반복되는 일인데도 가볍지 않다. 사실 맨해튼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식사 준비를 안 하고 사 먹는 사람도 많은 눈치다. 2012년 샌디가 뉴욕을 지옥의 불바다로 만들었을 때 아파트 지붕이 날아가 천정에서 물이 쏟아져 홍수가 나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는데 그때 연구소에 출근하니 맨해튼에 사는 교수님은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식사할 곳이 없다고 불평하더라. 같은 뉴욕에 살아도 삶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매년 노동절 주말에 맨해튼 그리니치 빌리지 도로에서 특별 전시회(Washington Square Outdoor Art Exhibit)가 열리는데 코로나로 취소되었다. 멀리 다른 주에서도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가져와 거리에서 파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으니까 좋다. 그림을 사랑하는 분은 그냥 구경만 해도 좋다. 대공황 시절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락이 렌트비를 마련하려고 거리에서 그림을 내다 판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노인 화가들도 무척 많다. 사랑하는 일을 하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나.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대공황과 코로나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귀족들이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 당장 렌트비와 생활비와 의료비 걱정하는 서민들이 문제다. 미국은 국민 의료 보험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부자 나라 가난한 사람의 설움을 어디에 비교할까. 원래도 없는데 실직자 되면 의료 보험을 상실하게 되니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간다.
뉴욕에 살면서 고통받는 이민자들을 많이 보았다. 한국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슬픔을 먹고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도 한국에서는 이민이 뭔지 몰랐다. 주위에서 이민 간 사람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으니 몰랐다. 다른 나라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댁과 친정 등 연고가 있으면 그래도 더 낫지만 아닌 경우 아무도 없는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고통의 시작에 불과하다. 물론 소수 능력자와 돈 많은 부자들은 예외가 되겠다.
코로나 사태로 뉴욕은 유령 도시로 변하고 있다. 맨해튼 파크 애비뉴와 5번가에 사는 귀족들은 롱아일랜드 햄튼에 별장이 있으니 굳이 맨해튼을 떠날 필요도 없지만 가게 운영도 어렵고 코로나가 무서워 조용한 외곽으로 떠난 뉴요커들이 많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하늘 같은 렌트비임에도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맨해튼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뉴욕이 잠들어 버려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 하루하루 불안하니까 멀리 떠난 거 같다.
뉴욕은 9.11과 2008년 경제 위기와 허리케인 샌디 같은 위기를 겪었는데 무사히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지 모르겠다. 내가 오기 전 9.11이 일어나 잘 모르지만 2008년 경제 위기는 경험을 했다. 롱아일랜드 제리코 아파트에 살 때 아래층에 사는 주인은 실직자가 되어 매일 아파트 뜰에 가서 담배를 피우더라. 뉴욕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그때 실직자 된 사람들이 참 많다. 그 후로 물가와 렌트비도 엄청 올랐다. 뉴욕시는 90년 만에 재정 위기를 맞는다고 하니 얼마나 특별한 상황인가. 대공황 시절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뉴욕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듣고 책에서도 읽었다.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외국에서 사는 것은 멀리서 보면 그림 같은데 어려움이 셀 수도 없이 많다. 20대 30대는 내 인생이 복잡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폭풍보다 더 무서운 운명의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트렁크 하나 들고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등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잠시 꿈인가 생시인가 했는데 그 후로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눈물로 하루가 시작하고 눈물로 하루가 끝났다. 고통과 한숨 속에서 숨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나비가 되어 훨훨 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한쪽 날개가 부서져 버렸으니 삶의 균형도 잡을 수가 없고 아무도 없는 다른 나라에 오니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다. 사람이 태어나 자리잡기 위해서는 최소 30년 정도 걸린다. 고국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후 자리 잡기까지 그 정도 세월이 걸린다. 이민도 마찬가지다. 30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 안정되기도 한다. 능력 많고 운 좋은 사람은 예외가 되겠다. 우리 가정도 폭퐁 속에서 숨쉬기 하려는데 쉼 없이 폭탄이 날아온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면 좋겠는데 하늘 아래 우리 가정을 도와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산다.
집에서 지내면 스트레스에 숨쉬기도 어려워 나들이를 하고 있다. 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들이를 한지도 모르겠다. 화창한 가을 날씨라서 센트럴파크가 그리웠는데 에너지가 없어서 가지 못하고 대신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차이나타운에 가서 뉴욕 한인 화가 강익중 단골집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구경하다 이웃 동네 리틀 이태리와 소호와 놀리타에서 산책했다.
나도 참 많이 변했다. 20대 같으면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차이나타운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뉴욕에서 이민자로 살다 보니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이 간다. 주말이라 평일과 달리 레스토랑에서 젊은이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더라. 수 십 년 전 봤던 영화 < 9½ Weeks (나인 하프 위크)>가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과 소호에서 촬영했다고 하니 조금 놀랐다. 오래전이라 줄거리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제목이 참 특별해 제목은 확실히 기억하는 영화다.
쉼 없이 부는 폭풍을 막을 샌드백 하나 있으면 좋겠다. 폭풍도 잠잠해지면 좋겠다.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버틸만한 샌드백이 있다면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숨 쉴 수 있을 거 같다. 샌드백이 있는 사람과 아닌 경우는 삶의 무게가 하늘과 땅처럼 크다. 어려운 시기 흔들리지 않으면 행복한 사람이겠지.
9월 5일 유에스 오픈에서 세레나 윌리엄스가 승리를 했다.
맨해튼 외출하고 저녁 식사 무렵 돌아와 세탁도 했다. 쓰레기를 버려도 기분이 좋고 세탁을 해도 기분이 좋다. 날 행복하게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아파트 지하에 있는 낡은 세탁기에서 세탁하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건조기 2대는 고장이 났더라.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니 마음속에서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지옥 같은 환경에도 감사 감사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환경에도 적응하고 살아야 하는 눈물 같은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