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역시 오페라! 아들은 요리사!

by 김지수

2020년 9월 9일 수요일


가을엔 역시 오페라! 파른 하늘이 눈부시게 예쁜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고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랑은 너무나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라서 내게 가을은 풍성한 공연과 전시회의 계절이다. 메트 러시 티켓 한 장 구하면 하늘을 날 듯 기뻐하며 오페라를 감상하러 갔다. 귀족도 아닌데 오케스트라 석에 앉아서 아름다운 아리아를 들으며 세상을 잊었다. 우연히 아는 사람 만나면 기뻤다. 링컨 센터 근처에 사는 일본 모자 디자이너도 가끔 만나고 콜럼비아 대학원생도 만나고 줄리아드 학교에서 함께 공연 보던 할아버지도 만났다. 메트 오페라 성악가와 지휘자 등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벽을 보면 내가 아는 음악가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그만큼 오페라는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다. 코로나 전 가끔 오페라를 보러 갔지만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본 마리아 칼라스 초상화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직 찾지 못했다. 아리아도 오케스트라 공연도 무대도 조명도 모두 아름다운 종합 예술 오페라도 뉴욕에 와서 알게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다 코로나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의 존재는 먼지만큼도 안되는데 매일 코로나 뉴스를 읽으며 나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다. 읽는다고 해결된 것도 아닌데... 다 함께 읽으면 좋겠단 생각에 브런치에도 기사를 올리는데 역시 시간이 든다. 시간 없이 저절로 이뤄진 것은 없다.


Screen Shot 2020-09-09 at 8.49.10 PM.png


독일 문호 괴테가 집필한 파우스트 내용을 담은 것.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1846년에 발표한 <파우스트의 겁벌 La damnation de Faust>이다. 한독수교 10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파우스트> 연극을 공연했는데 그때 혼자서 연극을 보러 갔다. 파우스트 박사에 장민호 연극배우가 출연했던가. 참 오래오래전이라 기억도 흐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공연 예술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변함없다. 젊은 시절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지만 결혼 후 두 자녀를 출산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역할이 하늘 같아서 나를 잊고 지내야만 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던 문화생활을 할 수도 없었다. 한국과 뉴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특히 문화가 달라서 뉴요커의 삶이 낯설게 보일 것이다.


대학 시절 유럽에 관심이 많았는데 두 자녀가 바이올린 특별 레슨을 받아 줄리어드 학교가 뉴욕에 있으니 우리 가족이 뉴욕에 오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운명이 날 뉴욕에 데리고 왔다. 운명이 뭘까. 맨해튼에 가려고 플러싱 지하철역을 향해 걷다 거리에서 점성술사에게 찾아오란 종이를 받았다. 경력 30년이란다. 평소 10불이던데 5불이라고 적혀 있었다.


운명이 날 찾아와 흔들어 버릴 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내 운명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뉴욕에 와서도 가끔 듣던 말이다. 오래전 추운 겨울날 특별 전시회를 보려고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와 "당신의 운명이 바뀌고 있어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찾아오세요."라고 말했지만 찾아가지는 않았다. 콜럼버스 서클을 지날 때도 거리에서 들었던 말이다.


내 운명의 바늘은 어디만큼 가고 있을까. 운명이 아니라면 낯선 땅 뉴욕에서 두 자녀와 내가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받지 않을 텐데 무에서 시작한 우리 삶이 안정되어 세상 사람이 부러워할 즈음 난 수천 마일 멀리 떠나오고 말았다. 무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중대한 결심이었다. 평생 편히 지냈다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겠노라고 마음먹지 못했을 것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은 장밋빛이 아니다. 희망과 꿈을 씨를 뿌리고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남과 비교해선 안 된다. 뒤를 돌아봐도 안 된다. 고개를 돌리면 사형이다. 오로지 내 일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내 책임이다. 눈을 감고 집중하고 천천히 내 길을 걷는다. 이 생의 마지막은 묘지에 들어가는 것이 힘든 날 위로한다. 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한없이 슬프고 힘들지만 운다고 해결된 것도 아니니 울지도 않는다. 마음속에 슬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한동안 오페라를 잊고 지냈다. 갑자기 오페라를 감상하게 된 것은 오페라 지휘자 덕분이다. 가끔씩 카네기 홀에서 만난 지휘자가 전화를 했는데 놓치고 말아서 저녁 식사하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전화를 하니 실수였단다. 웃고 말았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니 매일 오페라 보면서 세월을 보낸단다. 역시 오페라 지휘자! 오페라를 사랑한 사람은 세상이 온통 오페라. 내게도 오페라를 보냐고 물어서 한동안 바빠 잊고 지냈다고 말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이 열리면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이 내게 보낸 선물이나. 코로나 잊고 오페라나 보란 신의 뜻이었나. 어쩌다 지휘자 휴대폰이 내 전화번호를 눌렀을까.



IMG_9770.jpg?type=w966


IMG_9771.jpg?type=w966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늘 평소처럼 브런치 먹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수요일은 그린 마켓이 열리는 유니온 스퀘어가 좋다. 사람들 온기가 느껴지는 곳. 꽃향기도 맡으니 좋고 거리 음악가의 공연도 좋다. 그린 마켓이 열리지 않은 날은 죽은 시체 같다.


IMG_9778.jpg?type=w966
IMG_9777.jpg?type=w966




사랑하는 반스 앤 노블 서점에도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올라가 잠시 책을 펴고 읽었다. 매일 북 카페에 가던 나의 루틴은 코로나로 멈추고 말았는데 지금은 북카페가 오픈하지 않아서 예전과 다르지만 역시 책의 향기는 좋다. 집중이 안 되면 서점을 떠난다.


IMG_9783.jpg?type=w966 뉴욕 오큘러스 지하철역은 예술품이야.


지하철을 타고 사랑하는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를 찾아갔다. 빈부차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뉴욕. 지하철역도 다르다. 뉴욕 맨해튼 세계무역센터 교통허브 hub 오큘러스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예술작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지하철역이 아닌가 모르겠다. 9/11 참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WTC 메모리얼 옆에 있다. 명품숍이 즐비한 오큘러스 지하철역이 너무나 싸늘해 기분이 이상했다. 8월 중순이 지나자 센트럴파크와 덤보도 조금씩 생기를 찾고 있는데 오큘러스 역 분위기는 달랐다.



IMG_9789.jpg?type=w966



오큘러스 역을 지나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썰렁한 분위기. 명품숍도 많고 맛집도 많고 산책하기도 좋은 뉴욕 명소. 가끔씩 특별 공연이 열려서 보러 가곤 했다. 여름에 열리는 River to River 축제도 너무나 좋고 가끔씩 점심시간에 특별 댄스 공연도 열리고 기타 페스티벌도 열려서 쉐릴 할머니 데리고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코로나 대재앙으로 뉴욕이 봉쇄되기 전 두 자녀와 함께 탱고 공연을 보러 갔던 곳이다. 그날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공부하는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은 딸. 특별한 상황이라서 하버드 대학 기숙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과 함께 상당히 위험하단 말을 전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린 탱고 공연을 보다 전화 통화를 하고 일찍 집에 돌아왔다. 그 후로 뉴욕이 봉쇄가 되었다.


브룩필드 플레이스(Brookfield Place)
IMG_9791.jpg?type=w966


IMG_9792.jpg?type=w966
IMG_9794.jpg?type=w966


IMG_9795.jpg?type=w966
IMG_9797.jpg?type=w966
IMG_9796.jpg?type=w966



허드슨 강을 보며 잠시 머물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맨해튼은 텅텅 비어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빨리 집에 돌아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하철은 가다 멈추고 다시 멈추고 반복하니 시간이 멈췄다. 타임 스퀘어 역을 지나 카네기 홀 근처에 가니 승객들이 더 많아졌지만 역시나 거북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운행했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집에 늦게 도착할 거란 메시지를 보내니 아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고. 퀸즈보로 플라지 지하철역에서 7호선에 환승했다. 코로나로 맨해튼 귀족들은 뉴욕을 떠나니 텅텅 비어 가고 맨해튼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한 듯싶다. 말하자면 승객들 가운데 노동자 클래스가 많을 거 같다는 생각이다.


집에 도착하니 아들이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석양이 질 무렵 운동도 했다. US Open 축제도 며칠 남지 않았다. 8월 31일 시작 9월 13일 막을 내린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경기장에 가서 함성소리 들으며 세계적인 선수들 경기를 관람할 텐데 지구촌이 멈춰버렸다. 러시아 출신 다닐 메드베데프가 승리를 했다. 90년생 러시아 테니스 선수가 올해 챔피언이 될까. 플러싱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유에스 오픈 테니스 축제가 열리는 경기장이 있다는 것. 집에서 가까우니 참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다_ 북 카페와 브루클린 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