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6일 수요일
파란 하늘이 눈부신 가을날 지하철을 타고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해 보헤미안들의 천국 그리니치 빌리지에 갔다. 마크 트웨인, 빌리 할러데이, 밥 딜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조운 바에즈, 잭슨 폴락, 지미 헨드릭스 등이 날 마중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 보이더라. 일부는 하늘나라로 먼 여행 떠나고 일부는 바쁜가 보다. 농담이야. 명성 높은 분들이 날 마중 나오겠어.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으니 그리니치 빌리지 동네도 몰랐다. 그러니까 보헤미안들이 산지도 몰랐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명성 높은 재즈 클럽도 있고 <섹스 앤 시티>에 나오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와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를 촬영한 곳도 있어서 늘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뉴욕이 잠들어 버려 조용하더라.
나와 그리니치 빌리지와의 첫 인연은 워싱턴 스퀘어 파크다. 아주 오래전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다리를 건너 맨해튼에 도착했으니 상당히 오래 걷던 날 우연히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도착했다. 그때는 명성 높은 공원이란 것도 몰랐다. 그 후로 <미녀와 야수>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는데 어린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 보러 왔더라. 그래서 웃고 말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그리니치 빌리지가 보헤미안들의 천국이었단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음의 열기 가득한 워싱턴 스퀘어 파크는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다. 거리 음악가들과 젊은 대학생들, 그림을 파는 사람,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초록 잔디밭에 앉아서 휴식하는 사람들, 체스를 두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올해는 코로나로 중지되었지만 매년 여름에는 탱고 이벤트도 열린다. 유니온 스퀘어와 가까워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그리니치 빌리지는 예술가들의 숨은 이야기가 아주 많은 곳이다. 휘트니 미술관을 처음 설립한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대공황 시절 고독을 주제로 그림을 담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가 살던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대공황 시절 렌트비 마련하기 위해 추상화가 잭슨 폴락이 도로에 그림을 팔았던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대학 시절 가끔씩 읽던 월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발행한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 오헨리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 배경도 그리니치 빌리지, 극작가 유진 오닐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락이 살던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이탈리아 작가 옴베르토 에코 단골 카페도 그리니치 빌리지. <거지와 왕자>를 집필한 마크 트웨인이 살던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은 곳이다.
노벨상을 받은 밥 딜런이 데뷔한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클럽.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뉴욕에 오니 시인도 교수도 밥 딜런을 좋아하더라. 난 대학 시절 밥 딜런과 잠시 교제했던 조운 바에즈 노래를 더 자주 듣고 좋아했다.
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인생을 바꾼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그녀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체리 래인 극장에서 일했고 Bon Soir에서 가수로 데뷔했단다. 그때 나이가 18세. 대학 시절 그녀 노래가 인기가 많아 자주 들었다.
빌리 할러데이가 데뷔했던 카페 소사이어티도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찰리 채플린과 피에 몬드리안도 방문했던 명성 높은 나이트클럽이었단다.
극작가 유진 오닐의 작품을 공연했던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바이올리니스트 마스터 클래스도 보았고 무더운 여름날 뉴욕대 학생들의 재즈 공연도 감상하고 좋아했는데 코로나로 중지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 마구간을 개조해 소극장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을 만들어 유진 오닐 등 유명 작가들이 활동했는데 지금은 뉴욕대 소속이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함께 자주 공연을 봤던 쉐릴 할머니는 이곳에서 열리는 스토리텔링 이벤트가 좋다고 내게 추천을 했다. 우연히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베트남 전쟁. 당시 강제 징병이었단 이야기를 들려준 이벤트였는데 왜 내게 오지 않았냐고 하니 아쉽기만 했다.
또 수년 전에는 가끔씩 문학 이벤트를 보러 가서 낯선 작가들도 보았다. 운 좋은 날에는 이벤트 끝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 좋았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있다. 3년 전인가 내 휴대폰을 분실해 한바탕 소동을 피운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가끔씩 찾아가는 뉴욕대 빌딩에서 열리는 특별 공연을 보러 가서 휴대폰을 분실하고 망연자실했다. 휴대폰이 1불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을 텐데 가난한 내게는 하늘처럼 비싸서 엉엉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아들에게 분실했다고 말하니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놀라서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Find My Phone 하라고. 그리 하니 내 휴대폰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지만 한밤중 달려갈 수는 없고 다음날 찾으러 가서 낯선 빌딩 문을 노크하니 닥터 오피스에서 일하는 중년 남자가 웃으며 우리를 반겼는데 휴대폰은 없다고 하셨다. 그분은 오래전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하고 닥터 오피스에서 일하는데 세상이 이리 변했나 하면서 놀라셨다. 그분도 나도 Find My Phone에 대해 몰랐다. 그날 브라운 스톤 빌딩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허탕을 치다 나중 뉴욕대 빌딩에 들어가 확인하니 분실한 휴대폰이 있었다. 전날 직원에게 물으니 없다고 했는데. 그 무렵 아들이 많이 아팠는데 엄마 휴대폰을 분실했다고 하니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에 갔다. 그 뉴욕대 빌딩에서 공연도 자주 보고 가끔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보았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었다.
플러싱에서 7호선을 타고 달리다 74 브로드웨이 역에서 F 지하철을 타고 W 4 St - Wash Sq 지하철역에 내려 골목길을 걷기 시작했다. 뉴욕에 오래 거주한 뉴요커도 길을 잃기 쉬운 그리니치 빌리지 동네지만 자주자주 방문하면 낯선 도로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다. 처음엔 헤매기 쉬운 동네니 실망하지 말기를.
수년 전 월가에서 일하는 시카고에서 온 젊은이를 만난 곳도 그리니치 빌리지. 시카고보다 급여가 더 많아서 처음에 좋다고 했는데 뉴욕 렌트비가 시카고보다 훨씬 더 비싸서 좋지 않다고 하니 웃었다. 1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하니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어서 몇 년 일하고 일찍 은퇴해 혼자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는 하버드 대학 출신이었다. 뉴욕 문화에 대해 잘 몰라 정보를 주니 아주 고마워했다.
그리니치 빌리지를 방문해 마지막 잎새를 즐겁게 읽던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올렸다. 또 늘 마음속에 그리던
Pier 45 at Hudson River Park (피어 45 앳 허드슨 리버 공원)에 방문해 아름다운 허드슨강 풍경을 바라봤다. 매년 여름에는 살사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중지되었지.
그리니치 빌리지에 방문하기 전 아침에는 딸과 함께 모닝커피 마시고 동네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장미꽃 향기도 맡고 코스모스 꽃과 노란 해바라기 꽃과 과꽃도 보면서 거닐었다. 오후 맨해튼에서 돌아와 오븐에 초코칩 쿠키도 구워 맛있게 먹고 석양이 질 무렵 운동도 했다.
저녁 식사할 무렵에는 낯선 사람이 아파트 문을 쾅쾅 두드려 놀라서 내려가니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아냐고 물으며 인구 조사를 하고 싶단다. 몇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간 이웃집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아침 일찍 출근해 밤늦게 돌아오곤 한다는 거 말고 아는 게 없으니 도움이 안 되었다. 난 몇 달 전 온라인으로 2020년 센서스 인구 조사를 마쳤다. 지난주에는 카네기 홀에서 서베이를 해 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라서 바쁜 가운데 설문조사에 응했다. 코로나로 카네기 홀도 고민이 많아서인지 자주 공연 보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눈치였다.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가을밤 기온이 뚝 떨어져 싸늘해졌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창문을 꼭꼭 닫고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