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7일 목요일
만약 타이타닉호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지금 미국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타이타닉호의 최종 목적지 첼시 피어는 1910-1960년대까지 뉴욕 최고의 항구였단다. 타이타닉호가 뉴욕 첼시 피어에 도착하기로 했던 바로 그곳에 첼시 피어 종합 스포츠 센터가 있다. 수영장, 골프장, 아이스하키장과 볼링장 등의 시설을 갖춘 곳이며 이용료가 꽤 비싸다고 하더라.
1912년 4월에 발생한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으로 1천 오백여명이 숨졌고 그 가운데 미국 연방 준비은행 설립에 반대했던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도 뉴욕에 와서 알게 되었다.
타이타닉호 침몰 1년 후 미국 연방 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이 설립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미국 화폐를 발행한다. 그러니까 미국은 정부 기관에서 돈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미국 연방 준비은행이 정부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을지도 모른다.
타이타닉호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영화로 제작되어 수 백만의 관중의 가슴을 뜨겁게 했지만 그런다고 미스터리가 풀린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음모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랑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이끌어 갔다. 셀린 디온이 부른 곡이 잔잔하게 흐르던 영화의 수입은 어마어마하다고 하더라.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알게 된 것도 아마도 그 영화 같다.
비극적인 타이타닉호의 주인이 미국의 금융재벌 JP 모건이란 것도 뉴욕에 와서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The Morgan Library & Museum)에 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후 뉴욕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금융재벌 JP 모건이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줄 정도로 돈이 많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운명의 회오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난 유가족들은 얼마나 한이 맺힐까. 미리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우린 잘 모르지만 타이타닉호 티켓을 구입했지만 일부는 탑승하지 않아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니 하늘이 도운 걸까. 허시 초콜릿을 판매해 성공한 밀턴 허시도 타이타닉호 1등석을 예약했는데 타지 않았단다. 타이타닉호 주인 모건도 원래 타이타닉호에 탈 예정이었는데 건강이 안 좋다고 탑승하지 않아 살아남았단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술품 수집가로 명성 높은 페기 구겐하임 아버지도 타이타닉호 침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뉴욕에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장님처럼 살다 시간이 흐르니 하나씩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게 된다. 9.11 테러 사건과 더불어 타이타닉호의 침몰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고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았는데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 의문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코로나 역시 실험실에서 만들었다고 주장한 과학자도 있다.
첼시 스포츠센터 맞은편에는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예술적인 작품 IAC 빌딩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뉴욕 맨해튼에는 멋진 빌딩도 많다.
첼시 피어에 방문하기 전 딸과 함께 첼시 마켓에 가서 랍스터 스시롤과 크램 차우더와 참치 포케를 먹었다. 뉴욕 맛집으로 알려진 첼시 마켓도 코로나로 빌딩 안에 들어갈 수 없고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가격은 비싼데 기대와 달리 랍스터 스시롤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크램 차우더 수프와 랍스터 차우더 수프 맛은 일품이었다.
첼시는 수 백개의 갤러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서 그림 애호가들에게 인기 많은 곳이다. 허드슨 야드 7호선 종점역이 개통하기 전에는 지하철역이 떨어져 불편했는데 요즘은 교통도 더 편리해 좋기도 하는데 코로나로 한동안 뉴욕이 잠들다 조금씩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명성 높은 하이라인은 코로나로 미리 예약제로 변해 방문하지 않고 우린 갤러리에서 잠시 전시회를 보고 지하철역을 향해 가는 중 Bottino (보티노)에서 오렌지 주스 마시고 일찍 집에 돌아왔고 딸은 오후 온라인으로 미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