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오기 전 난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음악 학교로 명성 높은 줄리어드 음대와 뉴욕에 오면 뮤지컬 <오페라 유령>을 봐야지 할 정도로 뉴욕에 대한 정보는 없었고 아무도 내게 뉴욕에 대해 자세히 말해준 자도 없었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준비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유학한 자들은 한결같이 뉴욕은 '비싼 도시'라 말함에 공통점이 있었고 숨 막히게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슬픈 도시라고 아우성이었다. 또한 뉴욕은 위험한 도시라고 단언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 방문 중인 빈 대학교 바이올린 교수님도 뉴욕은 위험한 도시니 빈에서 음악 공부하면 좋지 않으냐고 말씀하셨고 뉴욕에 갈 거란 말을 듣고 섭섭해하셨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 대한 특별한 환상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문화의 매력에 점점 더 깊게 빠졌다. 그 무엇보다 뉴요커의 열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여름이면 센트럴 파크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나 공연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주 이른 시각 센트럴파크에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어떤 자는 새벽 6시에 도착해 줄을 서서 기다린 경우도 있고 개인별로 다르고 운이 좋으면 오전 9-10시경 도착해 2-3시간 정도 기다려 표를 받을 수도 있으나 그날 그날 사정이 다르므로 꼭 연극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주 이른 시각 도착해 기다린다. 잔디밭에 천이나 헝겊 등을 깔고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어떤 자는 애완견을 데리고 오고 접이식 의자를 가져온 자도 있고 먹을 것도 가방에 담고 와 각자 원하는 것을 하며 정오가 되길 기다린다. 정오가 되면 1인당 2매씩 받을 수 있지만 늦게 도착할 경우 확률은 낮아진다. 몇 시간 동안 기다려도 무료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수도 있고 정오에 표를 받지만 공연은 밤 8시에 시작한다.
공연표는 정오에 셰익스피어 연극이 열리는 야외극장 델라 코르트 극장 앞이며 기다리는 동안 거리 악사들이 아름다운 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수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것을 보며 그들의 '열정'에 대해 감동을 받게 된다
다른 예를 들자면 링컨 센터 메트에서 오페라를 서서 감상하는 뉴요커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스탠딩 오페라 표는 가장 저렴하나 대개 오페라는 7시 반 또는 8시경 시작해 밤 11시 가까울 무렵 막을 내린다. 중간 한 두 번 정도 휴식 시간을 갖지만 거의 3시간에 가까운 동안 서서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열정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나의 경우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을 3시간 정도 서서 본 적이 있었으나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근사한 정장을 입고 오페라를 3시간 동안 서서 보는 것을 바라보면 그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오페라는 비싸다는 편견이 있고 비싸므로 나와 너무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 형편에 맞게 스탠딩 표를 구해서 라도 오페라를 보는 뉴요커.
브로드웨이 뮤지컬 러시 티켓의 경우도 마찬가지. 모든 뮤지컬이 러시 티켓을 판매하지 않지만 일부 극장은 러시 티켓을 팔고 그 경우 극장 앞에 도착해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인기 많은 뮤지컬의 경우 러시 티켓 구할 확률은 더 낮고 이른 새벽 6시에 도착해도 운이 안 좋은 경우 러시 티켓은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른 시각에 도착하면 러시 티켓을 구할 수 있다. 여름 시즌이면 관광객도 많이 몰려오고 연극이나 뮤지컬 전공하는 학생들도 러시 티켓 구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종종 보곤 했다.
오페라나 뮤지컬이나 연극을 사랑하는 뉴요커의 열정.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에 열정을 쏟아붓는 뉴요커의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열정은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아무리 아름다운 꿈을 갖고 있고 아름다운 계획을 갖고 있어도 열정 없이 노력 없이 꿈을 이루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정열을 갖는 사람은 더 좋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 스티브 잡스도 생각이 나. 하늘에서 그는 또 무얼 하고 지낼까.